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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탐방 2] 구현고등학교, 대학식 특색 교육 '시선집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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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현장 탐방 2] 구현고등학교, 대학식 특색 교육 '시선집중'
  • 신승헌 기자
  • 승인 2014.06.16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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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목을 골라 학생 스스로 시간표를 짠다. 복도에 설치되어 있는 장롱만한 개인사물함에서 교재를 챙겨 강의실을 찾아간다. 자기교실이 없다. 이번엔 100분짜리 수업이다. 대부분의 수업은 강의 위주가 아니라 발표위주로 진행된다.

대학이 아니다. 지역 내 자율형 공립고등학교인 구현고등학교(구로동 620-30) 이야기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지양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전인교육을 시도한다'는 학교 설립목적에 맞게 지난 2008년 개교한 구현고등학교는 특색 있는 교육으로 지역주민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학교 예산을 들여 '탁구교실', '퀼트교실', '노래교실' 등의 무료강좌를 개설해 지역 주민들에게 개방해온 구현고등학교. 주민들의 '이웃'이 되고 싶어 하는 구현고를 둘러본다.
 

■ 개 교: 2008년

■ 형 태 : 자율현 공립고등학교

주 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인로53가길 17

■ 교 훈: 敬天愛人(경천애인)

교목, 교화, 교조:
      소나무, 장미, 독수리

■ 교직원 : 76명
학급 및 학생수:
      30학급. 학생 932명
     (남 467명, 여 465명)
 
  LT시간
"따뜻하게 내리쬐는 빛을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온화한 느낌을 더 잘 표현하고 싶어 부드러운 붓 터치를 시도했고요. 주안점을 둔 것은 바로 이 사과입니다. 알이 굵은데다 참 탐스럽게 익지 않았습니까?"

예전처럼 아침조회를 여는 학교를 찾아보기 힘든 요즘이지만 구현고등학교는 매주 월요일 오전 7시 30분부터 약 30분 간 전교생이 강당에 모인다.

'LT(Leadership Training)시간'이라 불리는 구현고의 아침조회는 '시상'과 '교장선생님 훈화' 등으로 채워지던 예전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여러 사람 앞에서 PPT 등을 사용해 발표(개인당 5~8분)하는 시간이 주를 이룬다.

가능한 한 많은 학생들을 이 시간의 주인공으로 만든다는 게 구현고의 방침이다. 발표자에게는 군중들 앞에서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훈련의 기회를 주고, 듣는 학생들에게는 다른 학우들의 다양한 생각을 들으며 자신을 점검해 볼 시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구현고 이강호 교장은 "산만할 것 같지만 학생들이 박수까지 쳐가면서 잘 듣는다"며 "LT시간은 학생과 학생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자치법정
법복을 입은 판사가 입장하자 재판이 시작된다. "김지각(가명) 학우는 최근 두 달 동안 총 7회 지각을 했습니다. 맞습니까? 지각의 빈도로 봤을 때 게으름이 원인이라 판단됩니다." 검사의 심문이 진행되자 변호사가 적극 변론에 나선다. "김지각 학우의 경우 통학거리가 상당합니다. 그런데 지각을 한 시간은 많아야 10분 내외입니다. 고의성이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지난달 26일 열린 2014학년도 제1회 '구현고 학생자치법정'의 풍경이다. 구현고는 지난 2011년부터 학생자치법정을 운영하며 교칙을 위반한 학생에 대한 생활지도방법을 학생들 스스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직업별로 6명씩 총 18명(1,2학년)으로 구성된 판·검사와 변호사는 필기시험과 면접까지 거쳐 선발된다. 신임 판·검사 및 변호사에 대한 교육은 지난 2012년까지는 학교가 초청한 변호사 및 법무사가, 이후부터는 선배들이 도맡았다.

판사의 선고가 내려진다. "김지각 학우에게는 '아침 7시까지 등교해 교문캠페인 10회 진행'을 선고합니다." 수업태도불량으로 재판에 회부된 박시끌(가명) 학생에게는 "가장 많은 주의를 주신 선생님의 수업준비(노트북 설치 등) 5회 돕기"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모두 '지도적 형벌'이다.

구현고 이강호 교장은 "우리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얼굴을 붉히며 생활지도를 할 일이 없다"며 "학생이 재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스스로 찾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것이 바로 자치법정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이 교장은 또 "딱딱해지기 쉬운 법 교육을 자치법정을 통해 자연스레 진행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공약 설명회

구현고 학생회장단은 한 학기마다 한 번씩 전교생이 모인 자리에서 공약실천여부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을 가진다. 때문에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는 일은 드물다"고 학교 측은 전한다.

하지만 학생회장단에 대한 학교 측의 지원은 '최소한'이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학생 스스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지난달 27일에는 총학생회장이 자신이 공약으로 내걸었던 '우산대여제도'를 추진하기 위해 "100개의 우산을 지원해 달라"고 학교 측에 요구했다가 거절당했다. "준비과정을 설명하고 학우들이나 선생님들에게 기부를 받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면 지원을 고려해보겠다"는 게 학교 측의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학부모들은 "학교가 왜 학생회를 도와주지 않느냐"며 "공약을 지키려고 애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안쓰럽다"고 항의(?) 하지만 학교 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이강호 교장은 "지금은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조사하고 설득하며 노력했던 경험이 가깝게는 대학입시 면접 때부터 빛을 발할 것"이라며 "지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구현고는 "소수의 아이들 때문에 1,200만 원이나 들일 필요가 있느냐"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평생 간직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을 만들어줄 수 있는 일이라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며 밴드연습실을 만들어 줄 만큼 학생들에 대한 지원에 인색하지 않다.

올해만도 18개 동아리 '출범'
학생들의 '자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구현고에는 공강(空講, 강의와 강의 사이에 강의 빈 시간)시간에 활동하는 학습 및 운동 동아리가 30여 개에 이른다.

이들 중 각 학습동아리들이 제출하는 연간 연구보고서는 하나로 묶여 책으로 발간되기도 한다.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이 구분 되지 않을 만큼 학생들은 동아리활동에 열의를 보인다.

그런 구현고등학교에 올해 '다칼연구동아리'라는 이름의 동아리 18개가 새롭게 구성됐다.

'니들이 한옥을 알아?'는 '한옥의 비밀'을, '제네틱크루'는 '멘델의 유전법칙', '어벤져스'는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며 기르는 리더십' 등에 대해 한 해 동안 연구하게 된다.

멘토교사 섭외부터 연구주제설정, 활동계획수립 등 모든 과정은 학생들의 힘으로 진행된다. 학교는 학기 초에 동국대교수를 초청해 연구방법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 줬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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