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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WITH 박홍순 작가_1] 혹시 나도 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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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WITH 박홍순 작가_1] 혹시 나도 꼰대?
  • 박홍순 작가
  • 승인 2022.06.17 13: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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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떼는 말이야

몇 해 전에 편의점에서 신기한 과자를 발견했다. 이름이 특이하게도 <라떼는 말이야>였다. 진열대의 다른 과자와는 전혀 다른 이미지를 가진 봉지가 눈길을 확 끌었다. '라떼는 말이야'는 과거를 회상하며 '나 때는 말이야'를 반복해서 말하는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한 태도를 빗댄 표현이다. 젊은 세대 사이에서 꼰대질, 즉 나이가 많다는 것을 내세워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강요하는 어른들을 비꼴 때 사용한다. 

​과자 '라떼는 말이야'​
​과자 '라떼는 말이야'​

그림과 대사가 꼰대질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회사에서 상사와 젊은 부하 직원의 대화 장면이다. "세상 참 좋아졌어. 나 때는 어땠는 줄 아나?"라고 묻자, "네. 매일 들어서 잘 압니다."라고 답한다.

과거 어려웠던 시절에 겪은 경험을 절대화하여 훈계하는 어른의 태도가 표정과 말에서 뚝뚝 묻어난다. 재미있는 것은 "뭔진 모르겠지만"이라는 답이다. 정작 젊은 세대는 꼰대 훈계를 대부분 귀담아듣지도 않음에도 어쩔 수 없이 자주 들어야 하는 현실을 꼬집는다. 

'나 때는 말이야'는 꼰대질의 시작을 알리는 조짐이다. 보통은 예전에 자신과 기성세대가 아무것도 갖추어지지 않은 어려운 조건에서도 어떻게 일을 잘 해결했는지를 늘어놓는다. 단순히 과거를 회고하는 자기 자랑에 머물지 않는다. 지금은 과거에 비교해 모든 면에서 더 좋은 조건임에도 젊은이들이 나약하다는 비난이 뒤따른다. 한 마디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핑계를 대지 말고, 윗사람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일을 충실하게 이행하라는 요구로 마무리된다. 나이나 지위, 더 많은 경험을 곧바로 자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는 척도로 연결한다. 

'나 때는 말이야' 이외에도 꼰대의 말은 상당히 많다. 단골 대사가 젊은 세대를 몰아붙이는 말이다. 흔히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어'라거나 '어디 또박또박 말대꾸야?'라고 한다. 그래도 잘 안 통하고 조금이라도 반박하면 '가만히 있어 봐'라거나 '조용히 해 봐'라며 제지한다. '그렇다면 그런 줄이나 알아!'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등의 고함도 뒤따르게 마련이다. 물론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당근으로 위장된 구슬림도 동원된다.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말고 들어'라거나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을 들은 경험이 꽤 많을 것이다. 

 

언제부터 꼰대가 문제였을까 

한국에서 꼰대라는 말은 1960~80년대부터 중학교·고등학교 학생들이 강압적인 교사나 아버지를 가리키는 은어로 사용되었다. 서양에서도 일방적 훈계에 불만이 상당했던 듯하다. 프랑스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교사>는 위압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책에 다 나온 내용조차 모르다니 말이 되냐며 질책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한심한 놈'이라는 말이 튀어나오고 있을 듯하다. 학생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교사라는 권위 때문에 어쩌지 못할 뿐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는다. 날카로운 눈길과 앙다문 입술에 불만이 가득하다. 

기성세대가 나이 어린 사람을 무례하게 대하는 경향이 어디 수백 년 이내에 생긴 일이겠는가.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철학자 소크라테스도 당시에는 어지간히 꼰대 기질을 지녔던 것으로 보인다. 고대 아테네의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에 묘사된 소크라테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사람들을 속이는 인물이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식으로 상대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고대 그리스 '꼰대'의 모습이다. 

도미에 '교사'  (19세기)
도미에 '교사' (19세기)

 

다음은 그에게 배움을 청하러 온 제자와의 대화다. 제자에게 자신이 쓰던 침구에 드러누워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해 보게."라고 한다. 제자는 차라리 땅바닥 위에서 생각하도록 해달라며 통사정을 한다. 침구에 가득한 빈대 때문이다. "이 허름한 잠자리로 빈대 군단이 기어올라 저에게 덤벼듭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다른 곳은 안 된다며 타박한다. 자신이 그러했듯이 빈대가 덤벼드는 고약한 환경에서 치열하게 배워야만 깨우침에 도달할 수 있다는 취지다. 제자가 못 견디자, "이런 바보를 봤나, 아예 뒈져 버려라."라며 버럭 고함을 지른다. 

서양 근대에 들어서는 꼰대질에 의한 교육 폐해를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고전이 루소의 《에밀》이다. 루소는 이 책에서 아이와 청소년의 자연스러운 감정과 자율적 선택을 무시하고, 오직 어른들의 기존 통념을 주입하는 데 몰두하는 교육방식을 비판한다. "누르지 않으면 안 되는 악덕을 조장하지 않고는 학생에게 유지될 수 없는 권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청년의 정열은 교육의 방해가 아니라, 그것에 의해 비로소 교육이 마무리되고 완성된다." 

그에 의하면 기존의 교육은 오직 권위에 기대어 학생에게 강요된다. 기성세대의 여러 편견과 필요를 오직 어른이라는 권위로 억누름으로써 아이들이 가진 자연적 본성을 억압한다. 부모와 교사에 의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반복되는 훈련을 통해 조련사가 지시하는 대로 움직이는 말처럼 수동적인 존재가 된다. 저마다 다양한 모습을 지닌 숲의 나무와 달리, 오직 정원사가 가꾼 모양대로 천편일률적으로 자라는 정원의 나무처럼 획일화된 존재가 된다. 

꼰대도 망가뜨리는 꼰대질

이제 한국에서 꼰대는 훨씬 더 확장된 개념으로 쓰인다. 직장 상사와 젊은 부하 직원, 나아가서는 몇 살 차이 안 나는 선배와 후배 사이에서조차 문제가 된다. 최근에는 아예 '젊은 꼰대'라는 새로운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젊은 나이임에도 고리타분한 수직적인 관계, 경직된 태도로 타인을 대한다. 20대 중후반의 직장인이 대학생을 '어린놈들' 취급을 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대학생은 중등·고등학생을 '급식충'이라며 무시한다. 

한국에서의 '꼰대'는 세대 사이의 갈등에 더해, 독특한 지적인 태도와도 긴밀하게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꼰대질의 특징은 수십 년이든 단 몇 년이든 그동안 겪은 경험을 절대화하는 데에 있다. 많은 경험을 우월함으로, 적은 경험을 열등함으로 연결한다. 다시 말해 더 많은 '경험'을 더 많은 '능력'과 동일시하는 사고방식이다. 

경험을 절대화하기에 지적인 논거나 합리적인 논리 등은 무시하기 일쑤다. 경험이 지식을 대신하고, 억지와 큰 목소리가 논리를 대신한다. 경험의 절대화는 꼰대질하는 사람도 망가뜨린다. 경험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게 반복되면서 지적인 진지함이 사라진다. 경험이라는 손쉬운 무기에 의존하면서 지식을 쌓으려는 수고로움은 불필요한 짐으로 여겨진다. 반지성적 태도가 지배하고, 자기 발전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한다. 

대화 과정에서의 권위는 오직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사람이 제시한 내용의 올바름과 논리적 설득력에서 와야 한다. 청소년이나 청년이 어른·교사·선배의 말을 무조건 듣기 싫어하는 게 아니다. 비록 따끔한 지적이라 하더라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대신 이를 위해서는 지적하는 상대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 신뢰는 상대의 나이나 지위에서 오지 않는다. 지적하는 내용 자체가 당사자에게 타당하다고 받아들여져야 한다. 

우리는 어떠할 때 형식적 권위에서 벗어나는가? 형식적 권위는 수직적 관계에서 생겨난다. 상대가 나와 서로 동등하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내용에만 집중한다. 다시 말해 일방적 훈계로서의 꼰대질이 아닌 소통이 되려면 수평적 관계라는 느낌 위에서 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나이 차이가 있더라도 자식·학생·후배나 부하 직원 등과 마음을 터놓은 대화가 되려면 동등한 관계로 여겨야 한다. 

 

   박홍순 작가는  인문학·사회학 작가. 고척초등학교·오류중학교·우신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도 구로구에 살며 집필 활동을 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From  편집국 이달부터 매달 한차례 인문사회학 작가 박홍순 전문가의 인문학칼럼이 게재됩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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