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4-25 13:11 (목)
[인문학여행 2 with 박홍순작가] 요즘 애들 말은 도무지 못 알아먹겠어!
상태바
[인문학여행 2 with 박홍순작가] 요즘 애들 말은 도무지 못 알아먹겠어!
  • 박홍순 작가
  • 승인 2022.07.18 09: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디에서나 흔히 접하는 신조어

얼마 전에 겪은 일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십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학생이 친구와 통화하는 내용이 들려왔다. 특별히 들으려 해서 들린 게 아니다. 부주의한 성격인지, 아니면 무언가 화가 나는 일을 겪었는지 목소리가 꽤 컸다. 게다가 엘리베이터라는 공간이 워낙 좁고 폐쇄된 곳이라 일부러 귀를 막지 않는 이상 소리를 피할 길도 없었다. 

처음에는 괜히 남의 통화 내용을 엿듣는 듯해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몇 마디를 접하고 나서는 공연한 걱정임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절반 정도는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암호 같은 단어가 섞여서 알 듯 모를 듯했다. 처음 듣거나 몇 번을 들어봤으나 의미를 모르는 신조어가 수시로 방해했다. 

따지고 보면 그날만의 유별난 경험은 아니다. 사람들과 대화하거나 인터넷의 글을 보다 신조어 때문에 당황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다. 살아오면서 우리 말을 제대로 못 알아들어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한 달이 멀게 새로운 단어가 쏟아져 나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사실 그동안 신조어에 별 관심이 없기는 했다. '엘베'라는 말의 뜻도 최근에야 엘리베이터의 준말임을 알았을 정도다. 요즘에는 신조어 축에도 끼기 힘들 만큼 자주 사용하는 말조차 모른다고 놀릴지 모르겠다. 엘리베이터의 학생이 사용하기도 했고, TV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하도 자주 등장해 익숙한 신조어여서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본 단어도 있다. 바로 '현타'가 왔다는 말이다. '현실 자각 타임'의 준말이란다. 

찾아본 김에 그간 긴가민가하던 신조어들을 검색해봤다. 대충 짐작하던 내용과 비슷한 말도 있지만, 완전히 예상을 빗나간 말도 많았다. 텅장, 열폭, 즐, 샵쥐, 본캐, 문찐, 틀딱 등은 검색으로 찾아보지 않고는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텅장'은 '텅 빈 통장'을 줄여서 통장에 돈이 없거나 부족한 상황을 표현한다. '열폭'은 열등감의 폭발이다. '즐'은 지금도 왜 그렇게 쓰이는지 모르겠는데, "꺼져", "닥쳐"와 같은 의미라고 한다. 

'샵쥐'는 시아버지를 빠르게 말하면 비슷한 발음이 나오는 데서 생겼고, '본캐'는 게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관리한 가장 중요한 캐릭터를 뜻한다. 상대를 비하하는 부정적인 신조어도 있다. '문찐'은 '문화 찐따'를 줄여서, 유행에 느린 사람을 지칭한다. '틀딱'은 자신의 나이를 빌미 삼아 젊은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어기는 노년층을 비하하는 말인데, '틀니를 딱딱거린다'라는 말에서 생겨났다. 

 

신조어가 우리말을 파괴하는가?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청소년 사이에 사용된 축약어가 요즘 유행하는 신조어의 출발이었다, 요즘 신조어의 양은 당시와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많다. 신조어 사용자의 폭도 훨씬 넓다. 국립국어원이 20~69세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언어 의식조사에 의하면 절대다수가 신조어 사용 경험이 있다. '자주 사용' 비율이 40%를 넘고, '보통 사용' 비율을 포함하면 약 80%에 이른다. 20대는 90%를 훌쩍 넘어서서 거의 모든 청년이 사용한다. 

그런데 의외로 신조어 사용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인 편이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긍정보다 부정에 해당하는 답변이 거의 두 배에 이른다. 부정적인 견해에서는 대표적으로 한글을 파괴한다는 근거를 든다. 말의 축약, 초성 사용, 한글과 외국어 조합 등이 표준어 문법을 교란해 아름다운 우리 말을 해친다는 것이다. 세대 차이의 심화도 신조어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의 주요 근거다. 신조어를 잘 모르는 기성세대를 소통에서 소외시킨다는 점에서 언어유희보다는 언어폭력에 가깝다는 비판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만든 새로운 문화의 표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보 기술 발달로 인간에게 새로운 공간이 생겼다. 인류 역사를 지배하던 대면 접촉에 더해 온라인을 통한 간접 접촉 공간이 활짝 열렸다.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온라인이 타인과의 대화가 가장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일상 깊숙이 스며들었다. 통화보다 카톡이나 텔레그램을 통한 의사소통이 더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처럼 많은 사람이 항상 연결된 공간에 대부분 발을 들여놓는다.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온갖 고리를 통해 연결된다. 

SNS를 이용한 소통이 대면 접촉만큼 중요해지면서 글과 말의 경계가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에 말로 표현하던 내용을 글로 대신한다. 글이 말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속도가 문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압축하거나 긴 내용을 대체하는 짧은 기호의 사용이다. 인터넷 언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신조어는 글을 말처럼 빨리 쓰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신조어를 사용하면 효율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영어권에서도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되던 초기부터 말을 축약한 신조어가 널리 퍼졌다. 'You are…'를 'ur…'로, 'before'를 'b4'로, 'thanks'를 'thx'로 줄여 쓰는 등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놀랄 때 쓰는 'oh! my god'을 'OMG'로 줄여 쓴다. 우리로 치면 '웃기고 있네'에 해당하는 'laughing out loud'의 축약어는 'LOL'이다. '참고해'라는 의미를 갖는 'for your information'을 온라인의 글에서는 'FYI'로 쓴다.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은 SNS를 비롯하여 온라인에서 자주 사용되는 축약 신조어를 정기적으로 싣고 있다. 영어만이 아니라 어느 언어권에서나 온라인에서 축약어가 널리 쓰인다. 

 

언어는 늘 새롭게 변화한다

기존 표준어의 권위를 잣대로 언어파괴로 비판하는 게 타당할까? 본래 언어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표현이 등장하는 특징이 있다. 특히 변화에 민감한 청소년과 청년 세대에서 먼저 영향력을 획득하곤 한다. 처음에는 낯설고 거북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다양한 신조어 가운데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지속성과 사용 범위에서 인정을 받은 말이 보편적인 언어로 자리 잡기 마련이다. 그 결과가 오늘날 언어의 풍부함이다. 

왜 모든 언어가 표준어를 유일한 기준으로 옳고 그름의 가치판단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표준어는 근대 유럽에서 생겼다. 우리가 지금 프랑스·영국·독일·스페인 등으로 알고 있는 나라는 불과 18~19세기에 만들어진 근대국가 체제다. 그 이전까지는 각각 수십~수백 개의 소왕국 체제였다. 다양한 언어가 공존했다. 아예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하나의 언어 내에서도 다양한 방언이 발달해 있었다. 

근대국가는 거대한 국가체제를 만들기 위해 표준어라는 무기를 들이밀었다. 근대국가 형성은 다양한 언어를 하나로 통합해 강력한 국가체제를 건설하는 과정이었다. 통합과 획일화로 나아가는,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열차와 같았다. 군대·행정·화폐 등은 물론이고 언어까지 표준어라는 기준을 만들어 획일화했다. 

표준어를 해친다는 이유로 각기 다른 민족어와 방언을 탄압하거나 적어도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도록 유도했다. 그 결과 각 지역의 고유한 문화를 담고 있는 방언, 즉 사투리들이 급속하게 사라졌다. 유네스코는 지난 500여 년 동안 이미 수천 종의 토착어가 소멸했고 앞으로 1백 년 뒤에는 지구상에서 사용되는 언어의 절반가량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한다. 2주에 하나꼴로 인류는 언어를 잃고 있다. 

방언은 표준어와 다른 과거의 언어로서, 인터넷 언어는 표준어와 다른 새로운 언어로서 억압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 든다. 방언은 지역적인 특성을 반영하기에 인터넷 언어와 다르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공간적으로 다른 개념일 수 있고, 백 보를 양보하더라도 왜 지역적인 문화 차이만이 인정되고 계층적인 문화 차이는 인정될 수 없는가라는 반론이 바로 제기될 수 있다. 

언어는 사고의 표현이고 문화의 표현이라고 한다. 최근의 신조어 역시 나름대로 인터넷이라는 공간적 특성과 청소년이라는 계층적 특성을 반영한 문화의 한 형태일 수 있다. 한글을 파괴하고 세대 갈등을 격화시킨다는 신조어에 대한 비판을 접하면서 모든 것을 획일화하고자 한 근대국가의 폭력성을 떠올리는 것은 지나친 상상력일까.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매개로 온라인이 일상의 주요 공간이 된 현재 상황에서 이에 적합한 신조어가 등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기본의 표준어의 틀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청소년과 청년층에서 먼저 만들어져 유포되고 기성세대에게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부정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는 없다. 특히 한글과 세대 공감을 '파괴'한다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는 이유는 없을 듯하다. 

 

■ 박홍순 작가는 
인문학·사회학 작가. 고척초등학교·오류중학교·우신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도 구로구에 살며 집필 활동을 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