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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7 with 박홍순작가] 전문가라는  완장의  위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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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7 with 박홍순작가] 전문가라는  완장의  위력
  • 박홍순 작가
  • 승인 2022.11.11 1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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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의 말을 믿어야 하나?

작가로 살아오면서 꽤 많은 책을 쓰고, 참 다양한 자리에서 여러 계층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그런데 출판이나 강연 관련하여 자주 듣는 질문이 있다. "이 분야 전문가가 아닌데 어떻게 책을 쓸 생각을 했나요?" 처음에는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설명을 했다. 이제는 하도 여러 번 들은 말이어서 그냥 웃고 넘기는 경우가 많다. 글이든 말이든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내용 이전에 전문가 여부에 두어진다. 전문가라면 일단 권위부터 인정한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Ferdinand Leger의 <교차하는 철로>는 전문가가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여러 개의 선로가 교차한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방향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뒤죽박죽 섞여 있다. 자칫 잘못된 길로 향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그림 중앙의 화살표가 인상적이다.  

 

페르낭 레제 《교차하는 철로》 1919년   
페르낭 레제 《교차하는 철로》 1919년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는 여러 개의 원으로 만들어진 표적 같은 모양이 있다. 난마처럼 얽힌 선로들의 숲에서 선명하게 방향을 제시해준다. 지시된 대로 따라가면 오류나 위험 없이 목적지에 도달하리라는 신뢰 분위기를 풍긴다. 

전문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기대하는 역할도 비슷하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제일 먼저 관련 분야 전문가에게 의존한다. 이들이 복잡한 상황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진단해줄 것으로 믿는다. 미로를 빠져나가는 길, 그것도 가장 빠른 길을 안내해주리라 여긴다. 지금 당장 무엇을 하면 어떤 효과로 연결되는지를 알게 해주리라 예상한다. 나머지 사람들은 전문가의 해법과 조언을 따르면 될 일리라고 본다. 

그래서 TV 뉴스 해설이나 토론 프로그램 토론자로 각 분야의 공인된 전문가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다소곳이 경청하는 분위기다. 신문의 짧은 칼럼이라 해도 전문가 이름표를 달아야 한다.

어느 대학의 교수이거나 최소한 박사 학위 하나쯤은 갖춰야 한다. 석사 학위로는 무시당하기에 십상이다. 하물며 대학에서 관련 전공 경험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자신을 향한 시선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라이트 밀스 《파워 엘리트》 표지
라이트 밀스 《파워 엘리트》 표지

 

"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 ? "

전문가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영역 가운데, 사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에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부분이 있다. 국가기구의 다양한 분야에서 집행을 담당하는 공무원으로서의 전문 관료다. 오랜 업무 경험을 갖고, 정책 제안과 집행에서 상당한 힘을 가진 고위 관료는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임명직이기에 전문 관료의 업무는 집행으로 한정된다고 여기면 단견이다. 정부 각 기관 책임자의 결정은 대부분 전문 관료들이 제안한 선택지 안에서 이루어진다. 

관료 출신이 장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정치인 출신이 장관이 되더라도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는 데만 최소한 1년이 걸린다. 업무가 고도로 전문화되어 있기에 관료에 의존하지 않고는 현황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사정이 이러하니 세부 정책의 수립을 위해서는 관료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전문 관료의 비중이 갈수록 증대되는 이유다. 

국무총리가 "이 나라가 기재부 나라냐?"라고 역정을 낸 일로 떠들썩한 적이 있었다. 정부 정책이 예산 편성을 전제로 집행되기에 기획재정부 관료들의 영향력이 컸다. 기재부의 나라가 아님을 똑똑히 알라는 말이 오히려 다른 진실로 인도했다. 본래는 대통령을 비롯하여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권력이 중심이고 정부 부처와 전문 관료는 결정에 따른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의도와는 반대로 '이 나라는 관료들의 나라다.'라는 점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선출직 정치인들을 관료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부표로 보는 게 더 정확할지 모른다. 부표는 바닷물이 움직이는 대로 출렁거린다.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4~5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해 자리에 오른다. 특히 한국 대통령은 단임제이기 때문에 5년 후에는 물러날 사람이다. 정치인들이 정책 결정을 하고 관료들이 따르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관료들이 올린 두어 개의 정책 대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다. 

한국에서 고유하게 나타나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독재체제나 권위주의 통치 아래에서의 특수한 양상도 아니다. 전문 관료의 지배는 현대국가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다. 미국과 유럽처럼 민주주의 제도가 고도로 발달한 국가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겉으로는 선출된 정치인들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실질적으로 국가를 움직이는 힘은 은밀하게 움직이는 관료집단에서 나온다. 

 

권력의 중심에   전문 관료집단이 있다

미국 사회학자 라이트 밀스Wright Mills는 《파워 엘리트》에서 은밀하면서도 실질적인 권력으로서의 관료집단을 분석했다. "시대 상황이 맞물리면서 파워 엘리트가 부상하도록 만들었다. (…) 권위는 형식상 '국민'에게 있다. 그러나 발의의 권한은 사실상 작은 집단에 있다. 조작의 표준적인 전략은 큰 집단의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꾸민다."

그에 의하면 정보와 권력의 수단이 중앙으로 집중됨에 따라 관료들의 지위와 영향도 증가한다. '시대 상황'이란 거대 국가의 출현이다. 수천만 명이 넘는 구성원을 가진 국가체제를 만들었다. 필연적으로 권력 기구는 확대되고 중앙으로 집중되는 피라미드 구조를 갖게 된다. 관료들이 수직적인 피라미드의 각 층을 채운다. 규모가 큰 만큼 연결망은 거미줄처럼 촘촘하다. 업무가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일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데만 몇 년이 걸린다. 관련 업무를 장기간 일상적으로 처리하는 관료가 아닌 한 일의 장악이 불가능에 가깝다. 

정책 결정도 긴밀하게 연결된다. 정부 정책은 막연한 구상이나 추상적 이론이 아니기에 관료가 실행과정을 사전 검토하지 않고는 입안 자체가 곤란하다. 실질적인 '발의의 권한'은 관료라는 '작은 집단'에 있다. 먼 거리에서 볼 때는 선출직 책임자와 대의기관을 통한 국민 결정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료의 의사가 가장 크게 반영된다. 결국 민주주의 형식이란 '조작의 표준적인 전략'에 의해 움직이는 틀이 되어버린다. 

문제는 민주 제도의 발달로 관료의 힘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민주국가에서 관료기구는 팽창되었다. 민주국가에서 요구되는 복지기능 확대도 관료기구의 확대 방향으로 작용한다. 고용보장, 노후연금, 의료보험, 공공주택, 출산과 육아 관련 제도 등은 복지 확대를 위해 필수적이다. 이 모든 기능은 관료조직 확대를 동반한다. 그들은 주로 누구의 이해를 대변하는가? 당연히 경제적 관계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현재의 이익은 물론이고, 퇴직 후 거액의 연봉을 보장해주는 기업의 영향이 다른 무엇보다도 강하게 작용한다. 

해결 방향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다. 전문 관료의 힘이 수직적인 거대한 피라미드 관료조직으로부터 생겨나기에, 해결은 엄격하게 위계화된 절차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에서 온다. 이를 위한 가장 유력한 길이 분권과 자치의 확대다. 또한 관료제의 동력인 비밀주의를 약화시키는 방향이다. 정보공개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고 일상적으로 제도화하는 길이다. 


박홍순작가 _ 인문학·사회학 작가. 고척초등학교·오류중학교·우신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도 구로구에 살며 집필 활동을 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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