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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밥값에 대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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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밥값에 대하여 ...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2.12.17 11: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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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없다. 아니, 서울에만 없다. 다정스레 "친구야" 부를 수 있는 벗들은 충북 옥천, 강원 원주, 경기 안성 등 전국각지에 죄다 흩어져 있다. 모두 10여년 고락을 함께한 전·현직 풀뿌리 지역신문 기자들이다. 우리끼리는 '못난 놈들'이라며 낄낄대고 웃지만 그쪽 지역에선 무척이나 예쁨 받는 인물들이다.


 '기사 자판기'라 불릴 정도로 업무량이 엄청났던 한 친구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 살고 있던 마을의 학교도서관 도우미로 봉사하며 아이들의 방과후를 살뜰히 돌봐 그 마을이장이 혹여 딴 동네로 이사갈까봐 노심초사했을 정도다.


 지방자치법 전문인 한 친구는 8년 일한 신문사를 관두고 다시 지역바닥에 깃들어 지역 내 20여개에 이르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엮고 꿰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취재는 취재대로 하면서 장애인들과 함께 사회적기업을 만들어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일체 거부하고 자립경영의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다들 돈 되는 일에는 관심이 없고 발 딛고 있는 지역과 마을,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무슨 일을 도모할까 고민하고, 또 고민한대로 살아간다.


 그들을 보면 '밥값'이라는 단어가 절로 떠오른다. 밥값 2인분은 족히 하고도 남을 그들이다. 그런데 과연, 나는 제대로 밥값을 하고 있을까?


 마을도서관이나 사회적기업에 관심은 있지만 엄두조차 못내는 까닭에 일단, 매주 A4 10장 이상씩은 기사를 써서 기본 밥값은 하려고 애쓴다.


 일하면서 제일 창피할 때는 밥값 못했을 때, 즉 못 썼을 때다. 내 밥값은 주민들 호주머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꼬박꼬박 내주는 구독료 덕에 사시사철 밥 먹고 산다. '유리알지갑' 가진 소시민들이 꼬박꼬박 내주는 세금 덕에 해외기획취재도 간다.


 그래서 일단 쓴다. 밥값 하는 유일한 증거가 신문에 실리는 기사이기 때문이다. 누가 "쓰지 마라" 하면 더 악착같이 쓴다. 비판기사에 뭐라 그러면 2탄, 3탄 끝까지 쓴다. 밥값 대주는 주민들이 더 쓰라며 응원하고 격려하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 든든한 뒷배는 없다.


 요즘 구의원들 사이에서도 이 '밥값'이란 단어가 자주 회자되는 모양이다.
 구로타임즈에 '밥값 못하는 구의원'<474호 11월26일자 2면> 관련 기사가 보도된 이후부터다. 연달아 '자질론'<475호 12월3일자 1면>, '무능'<476호 12월10일자> 관련 기사까지 나갔으니 평상시와 이번 정례회기간동안 주민을 대표해 의정활동에 묵묵히 매진한 의원들로서는 도매급으로 넘어간 것이 못내 서운할만하다.
 하지만 정례회기간 역량을 십분 발휘한 의원들에 대해서는 또 그만큼의 기사를 악착같이 써댔으니, 이래 저래 기자로서 기본 밥값은 다했다고 나름 자부한다.


 그럼에도 구의원들의 '밥값' 이야기는 좀 더 오래 회자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밥값'은 지난 11일(화) 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심사 자리에서도 불거졌다. 필자가 듣기로 공식석상에서 등장한 유일한 '밥값' 관련 발언이다.


 이날 류정숙 의원은 구의회사무국 예산심사 중 '모 지역신문'(구로타임즈)을 지목해서 "어떻게 의원을 상대로 밥값을 못한다, 자질이 없다… 자질 없는 구의원을 뽑아놨으면 구민들이 잘못 뽑은 건데 그럼 우리구민들 욕하는 것 아닌가요?… 구의원 못한다고 하는데 광고료 줄 필요가 뭐가 있어요? 안 그래요?… 그런 거는 우리 의회에서 국장님 이하 팀장님들이 보호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그렇지 않은가요? 팀장님?"이라고 말했다.


 마감 날 피자 한 조각으로 늦은 저녁을 때우다 생각한다.
 내 돈도 아니고 남의 돈인 주민세금 들여서 올바른 의정을 알리고 제대로 된 구의원들의 활약상을 홍보하라고 편성해둔 광고료를 비판언론에게는 압박용으로, 우호언론에게는 떡값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혹은 사용해야 한다는 20세기 낡은 언론관이 공개적으로 천명된 것에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구로타임즈 지난 12년간 역사에서 공공연히 자행됐던 일들이 다시 한 번 확인된 것 같아 씁쓸할 따름이다.


 어쨌든, 앞으로도 '국장님 이하 팀장님들의 보호'가 씨알도 먹혀들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의원을 상대'로 더 열심히 '밥값'을 해야겠다.


 오늘 저녁에도 기꺼이 밥값 내주신 구로지역 독자, 주민들에게 계속해서 예쁨 받는 길은 오직 그 하나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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