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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희망이다②] "품앗이로 이웃과의 벽 허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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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희망이다②] "품앗이로 이웃과의 벽 허물어요"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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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한밭레츠와 과천 품앗이
▲ 대전 한밭레츠에 회원가입한 지역주민들이 대화를 나누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지난해 시작된 세계경제체제의 위기로 실업률이 높아지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있다.
 연일 구조조정, 정리해고를 단행하는 기업의 수가 늘어나고 있으며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는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침체를, 더 나아가서는 내수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자본주의 경제의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계경제체제의 위기가 주기적으로 있어왔음을 알 수 있다.

 모순을 안고 있는 경제체제 하에서 인간들의 삶도 열악해지기는 마찬가지다. 맞벌이를 해도 올라가는 집세, 아이들의 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다. 아끼고 아껴도 얼마간의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너나없이 바쁜 도시생활에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누가 이사 오는지, 사람이 죽어가도 며칠씩 방치되기도 하고, 각종 사건사고 속에서 '오늘도 무사하게 지내기를 바라며 사는 곳이 바로 우리가 발 딛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런 현재의 경제체제를 극복하고 공동체적 지역사회를 지향하며 대안운동을 펼치고 있는 곳이 있어 주목되고 있다. 지역품앗이 운동이라고 부르는 지역화폐운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는 두 개의 지역을 소개한다. 삭막한 아파트와 아스팔트 속에서도 이웃과 소통하며 돈 없이도 두루두루 행복하게 사는 지역공동체는 과연 가능할 것인가?

 소개하는 두 개의 지역은 도시형 공동체로서 우리 지역에 시사 하는 바가 더 크다 할 것이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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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싣는 순서

1. 사례① 주민공동체의 위대한 힘
- 서울 마포 성미산마을
2. 사례② 이웃과의 벽 허무는 품앗이운동
- 대전 한밭레츠와 과천 품앗이
3. 사례③ 민-관이 함께 한 마을 만들기
- 광주 동림동·문화동, 인천 가좌2동
4. 지역현주소
- 살기좋은 구로 만들기, 씨앗을 찾아서
5. 좌담회
- 구로의 희망 찾기, 첫걸음 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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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의 역사 한밭레츠

 지역품앗이 한밭레츠는 2000년 2월에 창립해 사업을 시작한지 올해로 10년째이다. 돈으로 모든 필요한 물건을 사야만 하는 자본주의 경제하에서 돈 없이도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대안경제가 어떻게 10년이나 존재할 수 있었는지 의아하다.

 은행에서 찍어낸 화폐 외에도 우리 가정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하는 일이 가능한가?

 1999년 6월 '대전의제 21'소식지에 몇 차례 지역통화운동에 관련된 글이 번역되어 소개된 것이 시발점이 되었고 1999년 10월 '대전의제21 추진협의회' 소식지를 통해 "한밭레츠를 시작합니다”라는 제목의 광고를 게재한 후 4개월 후 70여명의 회원을 모아 '한밭레츠'를 시작했다.

 10년의 과정을 통해 2008년 말 현재 회원수가 620명이고, 회원 업소가 1백 군데 정도이니 회원을 4인 가족으로 따지면 한 2000여 명이 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주로 거래되는 품목은 농산물 거래가 22.1%로 가장 많고 그 다음으로 의료생협 16.5%, 가맹점 거래 12.2%, 재활용품 거래, 자원 활동, 교육 등의 순이다.

 2008년 말 기준으로 거래 건수는 10,569건, 거래 총액은 약 1억 8100만원으로 이 중 두루(지역화폐)의 비중은 53%(약 8500만원)로 2000년에 비해 2008년에는 거래건수가 약 36배, 거래액은 18배 정도가 증가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보였다.

 외형적으로도 많은 성장을 했지만 레츠안에서 공동체 의식을 학습한 회원들은 더 높은 성장을 보였다. 공동체를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면 전 회원이 힘을 합쳐 해결해 나갔다.
 이를 통해 '민들레의료생협'과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현재의 넓은 사무실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 생활속에서 서로의 품을 주고받으며 이웃 간의 정도 확인하고 혼자가 아닌 함께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자신들의 생활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힘으로 작용한 것이다.

  '두루'는 한밭레츠에서 사용하는 공동체화폐의 명칭으로 이웃과 품을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화폐단위이다.

 널리 두루두루 사용한다는 의미로 붙여졌으며 법정 화폐인 1,000원이 한밭레츠에서 '천 두루'로 사용된다.

 한밭레츠에서는 회원으로 가입하면 누구든 법정 화폐와 두루를 함께 사용할 수 있으며 다만 가능한 30% 비율로 두루 사용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웃과 품을 나눌 때 쓰는 '두루'

 거래가 이루어진 후에는 품을 주어 두루를 받은 사람이 반드시 등록소(사무국)에 알리도록 하며 등록소에서는 보고된 거래를 정리하여 회원들에게 개별통보하여 각 개인이 자기의 계정현황을 알 수 있도록 한다. 한밭레츠는 현재 거래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해 개별 회원이 로그인한 뒤 자신의 거래 내역을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편리함을 더했다.

 예를 들어보자. A회원이 한밭레츠에 가맹되어 있는 자동차수리점에 가서 차를 수리했다. 수리점 주인이 회원에게 "차수리 품삯 중 부품값을 제외한 품삯에 대해 30%를 두루로 받고 있습니다. 수리품삯이 3만원인데 현찰 이만 천원에 구천 두루로 계산합니다."

 A회원 "저는 처음 거래라 두루가 없는데요." 정비소 주인이 "괜찮습니다. 두루는 현금과 달라서 꼭 먼저 벌어야 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벌지 않아도 쓸 수 있고 번 것보다 많이 쓰셔도 상관 없습니다. 마이너스 계정으로 기록하면 됩니다. 내 마이너스는 누군가의 플러스가 되지요. 내 품을 다른 회원에게 거래하고 두루를 벌어 차차 갚아나가면 됩니다." 이 둘의 대화에서 이제 어느 정도 감이 왔을 거라 생각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대안화폐에는 이자가 붙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당장 두루를 지불하지 않아도 장래에 언젠가 두루를 벌면 되는 것이다. 이는 시장경제와 대안 화폐를 구분 짓는 중요한 차이다.

 한밭레츠는 누구나 회원이 될 수 있다. 1년에 60~80여명의 회원이 들어오는데 가입은 주로 회원들의 소개로 이어진다. 색다른 점은 모든 회원은 직접 방문해서 자필가입서 작성 후 신입회원교육을 받은 다음에 비로소 한밭레츠의 회원이 된다는 점. 가입서에는 자신이 갖고 있는 노동과 물품, 제공받고자 하는 서비스 등에 대해 자세히 기입한다. 회원들의 자발성이 가장 큰 힘이 되는 지역화폐운동에서는 직접 만남을 통한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지 않나 싶다.

 회원들은 다양한 모임에 참여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회원들은 '동네품앗이', 생활재를 직접 만들어보는 품앗이 학교, 다양한 물품을 생산하는 생산소모임, 먹을거리모임, 전통차 다례모임, 두루공동체교실, 어린이극단 '동동', 월1회 진행되는 '품앗이 만찬' 등 행사와 소모임에 참여할 수 있다. 이중 품앗이 만찬은 1~2개월에 1회 진행되는데 회원들이 직접 준비해온 먹을거리로 만찬이 벌어지며 두루를 마련하기 위한 벼룩시장 등도 진행된다.

 이러한 소모임에 참여하면서 회원간의 정도 쌓고 그곳에서 배운 기술을 통해 창업하거나 회원들에게 건강한 빵과 과자를 공급하고, 노인복지회관에 가야할 연세 드신 회원이 재활용 비누와 회원들이 먹는 물 공급을 하면서 자립하는 등 많은 사례가 쌓여가고 있다.

 사무실 운영은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으로 운영한다. 회원들은 매월 3,000원~10,000원의 회비를 내는데 3,000원+2,000두루로 회비도 두루납부가 가능하며 상근활동가 3인의 활동비도 30%는 두루로 지급한다.

 10년을 이어온 비결은 무엇이냐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박현숙 두루지기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돈이 있어야 모든 일이 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한밭레츠에서 많이 느껴요. 2003년 두루지기를 하시던 분이 출산으로 실무를 넘기고 갔는데, 3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다들 그만두더라구요. 그래서 전업주부 몇 명이 '사무실 지킴이'를 일주일 한번 돌아가면서 했어요. 컴퓨터도 서툰 주부들이 마음을 내서 사무실을 지키기로 한거죠. 그 때 계기가 돼서 제가 지금까지 상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물어보자 "매번 계획하고 일을 하는건 아니에요. 회원들이 필요하다고 느끼면 그때 회원들과 토론 후 필요한 일들을 계획하고 함께 해요." 박현숙 두루지기의 설명에서 10년의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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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만들어온 한밭레츠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레츠운동이 시작된 만큼 우리나라 여러 도시에서도 도시형공동체운동의 모델로 레츠운동이 활발해질 것 같아 시작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했다.

 "성과를 내는데 조급하면 안되요. 레츠운동은 일상생활운동이기 때문에 1~2년에 승부를 보려고 하면 안돼요. 이일을 통해 일하는 내가 즐겁고 품을 주고받는 회원들이 행복해하면 그걸로 만족입니다. 앞으로 지역통화운동에서 차지하는 한밭레츠의 역할을 알고 있기에 한밭 레츠 5주년때 만든 '한국공동체화폐연대'의 활동을 좀 더 열심히 해서 하반기에는 전국의 활동가 대상 '품앗이 교육'을 하려고 해요."

 취재를 위해 방문한 지난 11일 대전 한밭레츠 사무실은 다음날 있을 '행복한 두루잔치' 상차림 준비로 분주한 분위기였다. 행복한 두루잔치는 한밭레츠의 사회적일자리 창출 사업단에서 노동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하는 사업으로 외식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한밭레츠 회원이 된 지 7년이 된 이종현 회원을 말한다. "저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콜라 먹이고 패스트푸드 먹이고 쉽게 쉽게 사는 사람의 전형이었어요. 재활용도 찝찝해서 잘 안 입히고 아이들 옷도 물려받지 않았어요. 그런데 동네 이웃 분 중에 어딘가를 분주히 다니시는 분이 있는데 참 너그럽고 사람이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분 권유로 몇 번 따라서 와 봤는데 완전히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거죠. 우리 아이들은 레츠에서 다 키웠어요. 얼마전 교복 맞추러 옷가게를 간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요. 이웃과도 친해지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게 기뻐요."

 가입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이수정 회원은 "언론에 소개되서 한밭레츠에 대해 알게 됐어요. 생협을 하고 있어서 큰 부담감은 없었고요. 천안에서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어요. 회원 가입하려고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레츠를 하니까 이웃도 많이 생기고 밥도 같이 먹고 같이 배우고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좋아요"라고 말한다.

 
 한밭레츠의 든든한 힘 '민들레의원'

 민들레의료생협은 2002년 4월 한밭레츠 회원들의 참여로 창립하게 되었다. 의료생협에 소용되는 일체의 비용은 한밭레츠 회원들의 출자금으로 채워졌다. 현재 내과, 한의원, 치과가 개원해 있으며 사회적기업으로 등록되어 있다.

 민들레의료생협이 창립하게 된 배경에는 의약분업사태가 한몫했다. 의약분업 사태로 정부와 의사협회가 첨예하게 대립했지만 정작 그 과정에서 국민은 배제되어 있었다. 이에 한밭레츠 회원들 중심으로 국민건강권 문제가 이슈가 되었고 "우리가 한번 의료기관을 만들어보자"고 뜻도 모으고 재정도 모아 민들레의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민들레의료생협 조병민 사무국장은 "의료생협은 의료, 건강,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주민과 의료인이 신뢰를 바탕으로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나가는 건강공동체로 환자의 권리와 생명 가치를 우선하는 의료활동을 지향하고 있다"라며 일반 의원과 다른 점을 설명했다.

 민들레의료생협의 현재의 조합원 수는 1,000여명이고 조합원 이용율은 30%에 이른다. 진료활동 외에도 의료소외계층 지원, 소외계층 진료비 지원, 거리검진, 건강강좌 등을 통해 지역주민의 건강권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건강실천단 운동으로 연중 건강목표를 세우고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리와 조언을 해준다.

 민들레의료생협에는 연령대와 취미에 맞는 소모임이 구성되어 회원들의 참여가 활발하다. 어르신건강교실, 6070 건강소모임, 걷기 소모임, 라틴무브모임 등 조합원 소모임이 준비되어 있어 참여가 가능하다.

 의료생협과 한밭레츠의 관계는 어떤 관계인가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조병민 사무국장은 "의료생협과 한밭레츠의 관계는 여전히 돈독합니다. 공식적인 관계는 한밭레츠 회원들이 두루로 거래할 수 있는 가맹점이지요. 현재 의료생협에 11명의 활동가가 근무하고 있는데 대부분 한밭레츠 회원이고 급여의 일부는 두루로 지급받고 있어요. 의료생협에 가입하셔서 이용하시다가 한밭레츠를 알게 되어 가입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한밭레츠 이용 후 두루 사용가능한 민들레의원을 이용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전의제21에서 일하던 친구 소개로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게 되면서 한밭레츠 창립멤버가 됐고, 지금은 회원중 두루보유 5위안에 든다는 조 국장. "부자죠. 보통 부를 축적하는게 누군가에게 신세를 져서 축적하게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한밭레츠에서는 그렇지 않아요. 두루를 많이 갖고 있을수록 공동체에 기여했다고 생각해요." 돌아오는 답이 참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

 나의 부가 다른 이와의 경쟁 속에서 축적된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공동선을 위하여 기여한 대가로 쌓여 있다면 얼마나 흐뭇할까.


한밭레츠 http://www.tjle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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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품앗이운동이란?

 품앗이운동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농삿일이든 집안의 경조사든 이웃과 더불어 해왔으며 두레, 계, 품앗이 등으로 이웃과 상호부조를 해왔다. 지금의 품앗이운동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얻는 방법이 화폐경제가 유일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직도 농촌사회에서는 농기구를 함께 공유한다거나 일손을 공유하는 일이 많다. 이처럼 화폐경제에 초점을 맞추는 것에서 한 발짝 벗어나 물건의 생산 자체에 관심을 둔다면 대안적인 경제가 눈에 뛴다.

 지역품앗이 운동은 1983년 마이클 린튼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린튼은 본래 영국사람으로 캐나다로 이민와서 벤쿠버의 커트니라는 소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불황으로 인해 실업률이 18%까지 치솟았고 그들은 일할 능력과 의지를 갖고 있음에도 현금을 소유하지 못한 관계로 경제활동에서 배제되자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해 고안해 낸 것이 레츠(LETS, Local Exchange Trading System), 즉 지역거래교환체계이며 이때 회원은 6명이었다고 한다.

 실업에 처한 주민들은 이 레츠를 통해 서로 부족한 물품과 서비스를 교환하면서 현금이 없어도 자신의 능력과 기술을 살려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전 세계적으로 확산

 지역품앗이 운동은 1980년대에는 크게 활성화되지 못하였으나 1990년대 들어 급속히 보급되어 호주, 뉴질랜드, 영국, 미국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현재 3,000개 이상의 레츠에 10만명 이상의 회원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1990년 3월에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처음으로 지역화폐에 대해 소개가 되었고 이후 여러 지역과 단체에서 소개되어 지역화폐운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지역화폐운동의 기본 전제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 하더라도 누구든 능력,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서로 나누자는 운동이 바로 품앗이 운동이다.

 
 돈 없이 물건과 서비스 이용

 지역품앗이는 회원 간에만 사용할 수 있는 화폐를 발행하거나 계좌를 개설하여 돈 없이도 회원간에 물건과 서비스를 주고받는 제도를 말한다.

 중요한 점은 개인 간에 물품과 서비스가 교환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 간의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다.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에게 받은 사람이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통장에서 제공액수만큼 삭감시키기만 하면 된다. 물품과 서비스의 교환과정을 통해 지역화폐가 회원 간에 돌고 돌아 언젠가는 처음에 제공해준 사람에게 돌아가기 마련이므로 회원 중 누구와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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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천 품앗이 공동체


 같은 품앗이운동이지만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것이 바로 '타임 달러(Time Dollar).' 타임 달러는 물품 거래의 비중이 적고 노동시간을 거래하는 것이 일반적인 특징이다. 레츠와 달리 이 시스템에서는 시간당 서비스의 가치는 동일하다. 누구나 1시간의 노동에 대해서 같은 가치가 평가받는다. 타임달러의 대표적인 사례가 '과천품앗이'다.

 과천품앗이는 공식적으로 2001년 4월에 시작되었고, 과천자원봉사센터 내 회원들이 준비한 것으로 자원봉사센터내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이 꾸준한 모임을 통해 확장되었다. 초창기 회원들이 내놓은 품목은 공업용 미싱, 육아, 지점토, 공예, 중국어와 영어 등이었다.

 2007년 1월에 발행된 과천시사 '품앗이를 통해 본 과천 공동체'를 작성한 정애련 씨에 의하면 '경험이 없었던 주부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모임'으로 과천품앗이를 규정하였다. '백지에 먹물을 뿌리듯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얼마간은 두려움 속에서 시작'했다고 기술한 것을 보면 과천품앗이는 전업주부들의 소박한 모임으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소박함 속에 매월 소식지를 발간하고 카페를 통해 의사소통을 활발히 해나가며 매월 '월례회'라는 정기모임을 꾸려나간다. 이런 소박한 활동을 통해 회원이 조금씩 늘고 조직이 안정화돼갔다. 회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계기는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개인별로 갖는 '품앗이 통장'

 과천품앗이의 화폐단위는 '아리.' 1시간 노동은 1만 아리로 계산한다. 거래 회원에게 화폐를 직접 지불하지 않아도 이자는 붙지 않는다.

 과천품앗이의 회원 수는 약 200명. 온라인카페 가입회원은 600명이 넘지만 신입회원 교육을 이수해야 정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연 1만원의 회비와 거래당 0.5%에 해당하는 아리를 운영비로 충당한다.

 과천품앗이는 개인별 '품앗이 통장'이 있다. 거래 내역을 기여자, 수혜자, 거래 내용, 시간을 각자의 통장에 기재하고 상대방의 서명을 받는 것으로 거래가 성사된다. 한 달에 한번 관리자는 전 회원의 거래 내역을 집계하여 회원들에게 알린다.

 마침 기자가 찾아간 날이 과천 품앗이 회원들의 매월 열리는 '월례회'가 진행됐다. 각자 준비해온 음식들을 내놓고 나눠 먹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정겨워보인다. 월례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신입회원 소개와 거래 내역 집계, 행사 공지 등이다.

 월례회가 끝난 후 뒷풀이 자리에서 어떤 한 회원이 어깨가 아프다고 하자, 안마에 자신있는 회원이 거래를 제안한다. "나의 안마는 수준급이니 5,000아리에 10분당 안마서비스 어때?" 그러자 회원들이 너도나도 손을 든다. 이래서 바로 거래가 성사되었다. 안마를 받은 회원은 만족스러운지 품앗이 통장을 꺼내 내용을 기입한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구나.

 또 김영희 회원은 1년간 빌려준 자전거를 오늘 받아가는 날이라고 한다. 자신은 현재 영어공부를 그동안 모아온 아리로 하고 있다고 한다. 이영희 회원은 "품앗이를 통해 아이를 키웠어요. 다섯 집만 모으면 1주일에 하루씩만 품을 들이면 육아가 가능하죠"라며 "한밭레츠가 의료생협을 통해 활성화됐다면 과천품앗이는 육아·교육을 통해 발달한 경우"라고 전했다.

 과천품앗이의 품은 개인이 가진 능력만큼이나 다양하다. 피아노, 바이올린, 미술 등 예체능, 수학, 논술, 독서, 외국어 등의 학습. 컴퓨터 강습, 체험학습, 요가, 청소, 빨래, 아기돌보기, 피부 관리, 심리치료, 노동 상담, 사진촬영, 천연화장품, 차량운전, 한지공예, 옷 만들기, 가방 만들기. 비즈 만들기. 음식 만들어주기. 반찬 만들어주기, 케잌이나 과자 만들어주기, 시장 봐주기, 심부름하기 등등. 자신이 원하는 품을 얻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자신의 품도 내놓아야 한다.

 과천품앗이는 사무실이 없다. 회원들이 번갈아가며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아리'로 이웃과 소통

 과천 품앗이에서 사용하는 지역화폐 아리는 통장에 쌓아놓아도 이자가 붙지 않으며 다른 지역으로 가지고 갈 수도 없다. 아무리 많이 벌어놓아도 쓰지 않으면 통장에 있는 숫자일 뿐이다. 반면에 아리가 없으면 언제라도 자신의 품을 제공하여 아리를 벌 수 있다. 돈은 아무리 벌고 싶어도 쉽지가 않은데 아리는 쉽게 벌 수 있다. 자신의 능력을 내놓으면 된다.

 아리를 벌기위해서는 회원에게 자신의 품을 내놓아야 하는데 거래 성사를 위해서는 회원을 만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아리를 통해 저절로 이웃과 소통하게 되는 것이다. 품앗이에 가입하지 않았으면 전혀 모르고 지냈을 이웃을 알게 되고 여러 번 품을 나누다 보면 정이 들게 된다. 급할 때 도움을 청할 이웃이 있다는 것은 정말 든든한 일이다. 힘과 시간이 많이 드는 일도 품을 모아서 뚝딱 해치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리는 이웃과의 소통을 위한 매개체쯤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그냥 도와줄수도 있는 일인데, 그냥 줄 수도 있는 물건인데, 야박한 건 아닐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노동에 대한 댓가이기도 하지만 이웃과의 소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아리이기 때문이다. (과천품앗이 cafe/daum.net/poom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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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공동체 2곳의 교훈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마을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선거 때나 반짝 관심을 갖게 되는 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이다. 언제까지 이곳에 살지 기약할 수도 없다. 우리 이웃들은 여유가 조금 더 생기면 금방이라도 떠나고 싶다고 한다.

 그런데 한밭레츠와 과천품앗이의 사람들은 달랐다. 이웃이 좋아서 못떠난다고 했다. 레츠와 품앗이가 있어서 이사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그들과 우리지역의 차이는 무엇인가? 공동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궁금했다.
  

 공동체의 힘 '사람'
 공동체의 힘은 역시 '사람'.

 출범초기부터 안정화되기까지 헌신적으로 활동한 활동가들이 있고 새로운 활동가들이 계속 충원될 수 있는 내적인 동력은 바로 사람이었던 것이다. 초기 헌신하는 활동가들이 계속 활동하더라도 충원이 없다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할 수도 생기발랄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도 없었을텐데 두 곳은 활동가를 계속 재생산하는 구조였기에 가능했던 것.

 전업주부들이 품앗이를 지키고자 주1회씩 돌아가며 사무실 지킴이를 한다거나 돌아가며 운영위원을 맡아 활동한다든지 하는 것은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회원들의 노력으로 공동체는 유지되고 발전될 수 있었다.

 
 첫성공으로 학습된 공동체성

 두 개의 지역을 다녀보니 모두 겁 없이(?) 일하는 모습이 부러웠다.

 무슨 행사를 하려고 해도 사람은 얼마나 올지? 와서 즐거워할지? 등등 근심거리가 많은데 이들은 그렇지 않다. 회원들이 스스로 준비하므로 그런 걱정은 없다는 것이다.

 큰일도 거침없이 해치우는 솜씨에도 감탄할 뿐이다. 마음을 모으고 자금을 모으는 일이 쉽지는 않을텐데 생활에 필요한 일이라고 하면 바로 출자를 해서 협동해서 공동의 장소를 만드는 것에 그저 놀랄 뿐이다.

 그래서 처음이 중요하다. 시작하고 1~2년 안정적으로 운영하면서 "힘을 모으니 혼자일 때보다 더 많이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구나, 나만 잘 산다고 되는 것은 아니구나, 이웃과 어울리는 것이 아이들을 키우는데도 안전하구나." 이런 의식들을 생활 속에서 배우면서 새로운 일들을 계속 펼쳐 나가는 것이다.

 공동체의식은 주입식으로 집어넣는다고 해서 배워지는 것은 아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했을 때 체화되는 것이다. 부모들의 이러한 삶은 자식들에게도 전수되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할 것이라 생각된다.
 

 생활문제에서 주민참여 도출

 끝으로 살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참여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밭레츠와 과천품앗이는 이러한 생활 속 문제를 중심테마로 했기에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냈다. 내가 사는 삶터에서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이웃과 나누고 그것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더불어 사는 것이 얼마나 서로에게 힘이 되는지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한밭레츠와 과천품앗이는 이웃과 함께 하는 삶에서 행복을 느끼고 그것을 통해 진정한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물론 한밭레츠, 과천품앗이에도 문제는 있다. 가맹점이 다양하지 않아 이용할 곳이 많지 않아 지역화폐의 사용량이 높지 않다는 점도, 회원의 대다수가 주부여서 품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도, 돈없이도 살 수 있으려면 어려운 이웃의 참여가 많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빈곤의 문제, 먹을거리의 문제, 지구온난화의 문제 등 전 지구적 과제 해결의 중심은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부터이다. 내가 사는 삶터에서 이웃들과 실천하고 행동할 때만이 비로소 더불어 삶도 거시적인 담론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 기획취재팀 : 김경숙, 송지현, 황희준 기자
김미영 시민기자

■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 이 기사는 2009년 6월 22일자 30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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