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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2] 천왕동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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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52] 천왕동 은행나무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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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애경사 함께해온 신목

은행나무 잎이 싹트는 모양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작여부를 점쳤다고 한다. 나무가 밤에 울면 마을에 재앙이 온다거나 도끼질을 하면 피가 나온다는 등의 속설도 있다. 이 뿐인가. 전염병이 돌면 은행나무에 정성스럽게 기도 올려 퇴치하기도 하고, 자식이 없으면 치성 드려 자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던 신목(神木)이 바로 은행나무.

천왕동에도 마을에 오랜 뿌리를 내리며 지역주민을 지켜주던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의 얘기를 하려면 청주 한씨(淸州 韓氏)들이 천왕동에 집성촌을 이룬 18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천왕동에 가장 먼저 정착한 진주 하씨에 이어 조선 숙종 말년 무렵 이 곳에 다음으로 정착한 사람들이 청주 한씨들. 천왕동에서 약간 떨어진 지금의 부천시 원미동 일대에 터를 잡아 집성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던 청주 한씨들중 일부가 비옥한 이곳, 천왕동으로 터전을 옮겼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정공파 영흥공의 장자인 장군공의 자손들이 이곳에 정착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정공의 직계 7세손이 되는 청주 한씨의 한경홍(韓景弘)이 18세기 초에 이곳에 낙향, 정착하면서 마을 어귀에 나무한그루를 심었는데 그것이 바로 은행나무였다.

조상들의 터전을 지키며 14대째 농사꾼으로 살아온 청주한씨 한만웅(63)씨에 따르면 현재 마을 어귀에 심었다는 은행나무는 고사해 지금은 찾아볼수 없다. 하지만 이후 9대조 할아버지가 심었던 거대한 은행나무 한 그루는 3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집 뒤 언덕에 버티고 있다.

농사짓다 힘들어 쉴 곳을 찾는 농사꾼에게 잎은 시원한 그늘이, 뿌리는 편안한 팔베개가 되어주던 이 은행나무는 이제 곧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30년 넘게 유지되던 이 일대가 개발제한 해제와 함께 영등포교도소 이전 및 임대아파트 건립 계획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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