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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with 박홍순작가] 케이 팝과 드라마로 국뽕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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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여행 with 박홍순작가] 케이 팝과 드라마로 국뽕을 맞다
  • 박홍순 작가
  • 승인 2022.09.20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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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빌보드 뮤직어워드 공연 ] 2021년
BTS [빌보드 뮤직어워드 공연 ] 2021년

 

한국 노래와 영화가 세계 1위?

요즘 부쩍 수식어로 앞에 '케이'를 붙이는 단어가 많아졌다. 케이팝, 케이무비, 케이드라마, 케이패션, 케이뷰티, 케이웹툰, 케이게임, 케이푸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있다. 

케이 시리즈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분야가 케이팝이다. 나이가 좀 있는 아재들도 케이팝 가수 몇 명쯤은 안다. 대표적인 아이돌 기획사 몇 군데 이름도 익숙하다. 케이팝 가수들의 세계적인 활동 소식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BTS(방탄소년단)'가 세계 최고 수준의 팬덤을 구축하고 온갖 음악 차트를 휩쓸면서 케이팝이 한 단계 더 도약하는 발판이 되었다.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밴드로 인정받는 비틀즈와 비교될 만큼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빌보드 뮤직어워드 공연>은 2021년 빌보드 뮤직어워드에서 4관왕의 대기록을 달성하면서 펼친 무대의 한 장면이다. 이 해에 발표한 노래 '버터Butter'가 빌보드 '핫100'에서 9주 1위를 기록했다. 이미 전 해에 발표한 노래가 같은 순위에서 3주 1위를 한 바도 있다. 또한 유엔 총회에서 두 차례 연설도 했다. 

케이컬처의 폭을 넓히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 만장일치로 황금종려상 받았고, 많은 비평가가 이 해의 최고의 영화로 꼽았다. 2020년에는 아카데미상에서 최고 권위로 꼽히는 작품상을 필두로 감독상과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관왕을 차지했다. 역대 시상식 사상 작품상을 받은 최초의 비영어 영화다. 

대중의 관심도 뜨거워서 글로벌 흥행 2억 달러를 돌파한 최초의 한국 영화가 되었다. 물론 한국에서도 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류의 대중적 인기를 더 많은 지역과 연령층으로 확대하게 된 작품이 2021년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다.

 

세계인을 매료시킨 '힘'들

'케이'의 세계적인 인기가 정말 특별한 현상인가? 세계인을 매료시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의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는 《문화와 제국주의》에서 서구인의 비서구 문화 관심을 "민족적 편견과 상대적으로 준비가 되지 않은 갑작스러운 관심"이라고 한다. 일본의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메리카 대륙을 실제로 침투한 적이 없다."라는 것이다. 

비서구 문화의 성공 사례가 간혹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일부의 '갑작스러운 관심'이었던 만큼 지극히 일시적인 현상에 머물렀다. 관심의 동기 안에는 '민족적 편견'도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었다. 동양 여인을 관능적인 시선으로 보든가, 동양 정신이나 무술의 신비스러움에 주목했다. 색다른 이국 취향 정도였지 주류의 일부로 들어가지는 못했다. 

그나마 예외라고 할 만한 게 있다면 일본 대중문화 정도였다. 한때 일본 애니메이션이 세계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만화 분야로 한정된 면이 강했다는 점에서 틈새시장에서 나타난 현상으로 봐야 한다. 주류문화와 꽤 거리가 있다. '케이'는 가요·영화·드라마 등 대중문화 중심 영역에서의 현상이라는 점에서, 한두 개의 콘텐츠가 반짝인기를 끄는 게 아니라 수년 넘게 이어지고 나아가 확대 양상을 보인다는 점에서 '주류 편입'이 그리 과장은 아니다. 

무엇이 케이컬처의 대중적인 인기를 만들어내는가?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우선 콘텐츠의 경쟁력이다. 무엇보다도 큰 재미를 준다. 

<기생충>은 지하에 또 지하라는 기발한 발상이 흥미를 자극한다. <킹덤>은 잔혹하기만 한 좀비 이야기에 역사적인 재미, <오징어 게임>은 한국 어린이들의 다양한 골목 놀이 재미를 준다. 케이팝 <강남스타일>은 재미 종합선물세트다. BTS를 비롯한 아이돌그룹은 최신 유행 장르를 절묘하게 종합한다.

케이컬처가 광범위한 관심을 받는 데는 인류의 보편적인 관심사를 담는 점도 작용한다. 과거 일시적으로 주목을 받았던 비서구 문화는 독특한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색다른 소재인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사무라이나 게이샤, 중국의 쿵푸, 인도의 신비로운 정신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 경우 일시적인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나 생명력이 길지는 않다. 

하지만 최근 세계 무대를 두드린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인류의 공통적 관심사를 다룬다.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은 사회 양극화라는 자본주의의 그늘을 배경으로 한다. 몇 년 사이에 주목을 받은 다른 한국 영화도 그러하다. 2017년의 <옥자>는 비윤리적인 공장식 축산과 도축 문제, 2020년의 <설국열차>는 지구온난화와 계급 갈등 문제를 다루었다. 넓은 공감의 폭이 글로벌 문화 현상으로 발을 내딛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문화에 대한 '예의'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  포스터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 포스터

 

'한류'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는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각종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상을 받을 때 환호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그 정도를 넘어 '국뽕' 소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문화를 애국심으로 연결하고 한국에 대한 우월감을 느낀다. 우월감은 상대를 열등하게 바라보는 태도와 쌍을 이룬다. 서구 문화와는 대등한 관계라는 생각이기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 문화에 열등, 자국의 문화에 우월을 연결한다. 

이는 문화가 지향해야 할 다양성·교류와는 상반된 성격을 갖는다. 국제연합(UN)이 제정한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 포스터는 문화의 지향 방향을 특별히 강조한다. 나무에 달린 잎이 다양한 색·모양·크기의 손으로 묘사되어 있다. 크기가 다른 손은 국력의 차이, 색이 다른 손은 인종의 차이, 모양이 다른 손은 문화의 차이를 보여준다. 특정한 크기와 색의 나뭇잎만으로는 나무가 건강할 수 없다. 모두가 동등하게 어우러질 때 인류 전체의 문화가 발전한다. 

문화를 애국심으로 연결하고 우월감으로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태도는 다양성 존중의 큰 걸림돌이다. 

사이드도 위험성을 지적한다. "때로 문화는 적극적으로 국가와 연결되는데, 그때 문화는 언제나 다소의 외국 혐오증과 함께 '우리'를 '그들'과 구별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문화를 국가와 연결하여 우월감의 소재로 삼을 때 소통과 공존보다는 구별과 대립이 생겨난다. 다른 문화를 열등한 것으로 비하하고 심한 경우 혐오감을 느낀다. 

국뽕으로서의 한류 자부심은 경제적으로 우리보다 뒤떨어진 아시아나 중남미 지역을 한류의 수요자로 여긴다는 점에서 반성적 통찰이 필요하다. '한류'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듯 고정된 방향을 갖는 표현이다. 

중화권에서는 한파주의보를 '한류寒流'라고 부르는데, 한국 대중문화가 매섭게 파고든다는 의미를 비슷한 발음을 가진 '한류韓流'로 언론이 사용하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문화의 일방적 전파에 대한 경계심이 담겨 있다. 일방성 때문에 '한류'는 언제든 '반한류'의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을 포함한다. 

'세계 문화 다양성의 날'이 추구하듯, 문화는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인정에 기초하여 교류와 공존의 방향으로 가야 한다. 케이컬처가 주류의 일부로 한 발 내딛은 지금은 나아갈 방향과 우리의 태도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문화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지렛대가 될 수 없을까? 거대자본에 의한 소비문화로의 상업화에 머물지 않고 문화의 폭을 확대하는 방향은 허망한 기대일까? 

 

박홍순 작가   인문학·사회학 작가. 고척초등학교·오류중학교·우신고등학교를 나왔고, 지금도 구로구에 살며 집필 활동을 한다. 〈미술관 옆 인문학〉, 〈헌법의 발견〉, 〈생각의 미술관〉, 〈나이든 채로 산다는 것〉 등의 저서가 있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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