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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리동네 이야기 31] 신도림 1987년 물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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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리동네 이야기 31] 신도림 1987년 물난리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5.09.12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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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까지만 해도 수심이 낮아 비가 내리면 범람해 인근 주택가 안방까지 되게 했던 도림천.

1987년 7월 27일 새벽 서울을 비롯한 경기, 강원지역에 집중호우가 쏟아졌다. 전날 밤, 호우경보가 내려지기는 했지만 예상을 벗어난 장대비였다.

이날 오전 집계된 서울의 강수량 290mm 이상, 1시간당 30~40mm 가량의 장대비가 새벽부터 계속 내렸다.
집중호우에 따른 하천 범람과 주택가 침수로 도림천, 안양천 일대의 신도림동 주민들은 귀중품도 챙기지 못한 채 도망치듯 대피해야 했다.

이 비로 인한 구로구의 침수 피해지역은 개봉역, 개봉3동, 대림역, 가리봉동 일대를 아울렀으며 구로공단의 경우엔 몇몇 공장들이 가동을 중단해야만 했다.

어린 시절부터 신도림동에서 살았다는 정 모(59) 씨는 "당시 일대의 가정집들 안방엔 쉽게 말해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른 곳도 있었다"며 "지대가 낮은 지역엔 성인 남자 머리 아래까지 깊어진 곳도 있었다"고 증언했다.

정 씨에 의하면 대부분의 주민들은 새벽부터 학교, 교회, 동사무소 등의 대피소로 뿔뿔이 흩어져 일부는 다음날까지도 비가 그치길 기다려야했다.

실제로 27일 정오 무렵 신도림 초등학교에는 250가구 1000여 명의 이재민이 머물렀으며 오후 즈음엔 가재도구를 챙기고 집을 정리하기 위해 학교를 자주 비우는 주민들이 있었음에도 학교에 500여 명 정도가 남아있었다.

지금은 영등포구 신길동에 거주한다는 이 모(50)씨도 "아침에 출근을 해야 하는데 지하철이고 버스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서울시내 전체가 난리도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면서 "제시간에 회사에 도착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침수지역은 이튿날인 28일 오전에 이르러서야 물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재민들은 각 가정으로 돌아가 정리를 시작했으며 시에서도 중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지원에 나섰다.

당시 이 일대의 침수피해는 거의 해마다 반복되는 것이기도 했지만 이정도 물난리는 드문 편이었다.

도림천과 안양천 주변의 주민들은 수심이 낮은 강바닥 때문에 범람이 우려된다며 준설공사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예산상의 이유로 거절되기 일쑤였다.

1998년 경에도 안양천과 도림천이 동반 침수하는 폭우가 내렸다. 다행히 주택피해는 크지 않았으며 2000년 이후로는 하천 범람으로 인한 침수피해가 크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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