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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리동네이야기 21_개봉3동 느티나무] 개발에 사라진 400년 된 동네 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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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우리동네이야기 21_개봉3동 느티나무] 개발에 사라진 400년 된 동네 신목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5.01.31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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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와 함께 주민들 추억속에 묻혀
▲ ▶ 20여년전 개봉동 거성아파트앞에 있었다는 400년 된 느티나무. 한 주민이 제공해준 당시 흑백사진이다. 동네 학생들이 느티나무에 올라가 사진을 촬영한 장면.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개봉동 거성아파트 앞, 개봉3동 271-17번지에는 400년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목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인근 사유지에 집이 들어서면서 나무는 서서히 죽어버렸고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지만 긴 세월동안 이곳 주민들의 경외를 불러일으키며 신목으로 여겨졌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느티나무의 너비는 두 사람이 어깨를 벌려 한 아름씩 안은 것보다 넓었고 높이는 3층 건물에 준했다. 항간에 떠돌던 이야기 등에 의하면 나무에 묶어놓았던 그네 높이가 밑동부터 50m는 됐다고도 한다.

나무 가운데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는데 어린아이 한 명이 들어가 놀 수 있을 정도로 넓었고 밤마다 이 안에 살고 있는 구렁이의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뱀이 드나드는 모습을 봤다는 주민도 있다.

이 일대에서 나고 자랐다는 권종수(64) 씨는 "개봉동에 집들이 들어서기 전까지는 전부 논밭이어서 마을 어디서나 느티나무를 볼 수 있었다"며 "그네를 걸고 타기도 했고 10월 초 사흘엔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고사를 크게 지냈다"고 전했다.

권 씨에 의하면 당시 개웅마을에는 약 40호 정도의 가구가 모여 살았는데 경 씨와 조 씨들이 집성촌을 이뤘고 나머지 주민들은 6.25전쟁 이후에 유입됐다. 마을사람들이 함께 지내던 당고사는 나무가 사라진 후에도 근처 절에서 몇몇 주민이 모여 진행해왔지만 절 주인이 바뀐 후로는 열리지 않고 있다.

이 나무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기나긴 세월에 걸맞는 다양한 설화를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화에 따르면 아주 오래 전 개웅마을엔 갓난아이, 어린이, 성인들이 영문 없이 죽어나갔다. 그러던 어 느날 창녕조씨의 후손인 조상익의 모친 꿈에 하얀 수염을 가진 도사가 나타나 다시마를 튀겨 고사를 지내라고 했고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 말에 따른 후, 변고가 사라졌다고 한다. 주민들이 당고사라고 부르는 도당제도 바로 이때부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밖에도 말을 타고는 나무 앞을 지나갈 수 없었다는 설화, 임신한 줄 모르고 제사를 지냈다가 손가락이 6개인 아이를 낳은 임산부 이야기, 결혼을 한 마을사람은 꼭 나무에 인사를 했다는 이야기 등도 함께 구전된다.

개웅마을 주민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했던 느티나무는 나무보다 높은 지대에 있던 인근 사유지에서 개인 주택을 공사하며 나무의 허리까지 흙이 메워져 죽어버렸다고 한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구청에 강력히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나무는 결국 고사했다.

이후 주민들은 해당 부지에 옛 나무를 기리기 위해 느티나무 세 그루를 심어놓았다. 현재는 이곳에 소막골어린이공원이 조성돼 있고 오는 2월까지 리모델링 공사가 계획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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