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봉1동 거성푸르뫼1차 아파트 뒤편, 개봉중학교 일대엔 '잣절마을'이라 불리는 자연마을이 있었다.
이 이름은 지금도 개봉중을 통해 매봉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위치한 '잣절공원'에 사용되고 있다.
잣절이라는 명칭은 과거 '잣절공원' 인근에 잣나무들이 심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1970년대 이전 이 일대는 대부분 산을 깎아 만든 계단식 논밭이었고 현재 생태 습지 자리엔 미나리를 키우던 '미나리 깡'이 있었다.
주민 증언에 의하면 마을에 실제로 잣나무가 아주 많지는 않았고 논밭 주위에 심어 놓은 게 전부였다.
하지만 가난했던 시절인데다 잣나무가 아주 귀했기 때문에 마을의 이름이 오래전부터 '잣절'로 불렸다는 전언이다.
이 지역 토박이인 구로구의원 출신 황규태(63) 씨는 "마을 선배들에 의하면 100년 더 이전에도 잣나무가 있었고 당시 논밭의 주인들이 잣나무를 심고 길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어려웠던 시절 잣나무는 아주 귀했고 비싸게 팔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황 씨에 의하면 주택개발이 시작되기 전 잣절마을엔 40가구 내외 150여 명 정도가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취락공간은 거성푸르뫼 1차 아파트 뒤편에 조성돼 있었으며 대부분 농업을 생업으로 삼았다.
특히 이 일대엔 광산 김 씨들이 집성촌을 이뤘는데 이들은 1600년경 현 개봉1동에 터를 잡고 생활을 시작했다.
현재에도 광산 김 씨의 후손들은 마을은 물론 구로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마을 인근의 공원이나 올레길 등도 본래 김 씨들의 땅이었던 것을 매입해 조성한 것이다.
1970년대 이전만 해도 초가집이나 슬레이트 지붕으로 지어진 집이 많았던 잣절마을은 이후 정부가 이 지역에 본격적인 주택개발을 시작하면서 주거공간이 확장됐다.
이 즈음부터 외부인들도 본격적으로 유입됐다. 당시 이곳에 조성된 주택단지를 양송이단지라고 이름 붙여 한 때는 양송이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주민들은 양송이 마을보다는 잣절이라는 이름에 더 애착을 갖고 있으며 주거, 생업 등 생활환경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매봉산 일대의 자연을 벗 삼아 살아가는 모습엔 변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