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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낙후된 교육환경, 떠나는 학부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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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낙후된 교육환경, 떠나는 학부모들
  • 정경미
  • 승인 2000.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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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진학앞둔 중2, 3때 타지역 전학 급증


상당수 학부모들 “주소지이전, 이사 심각히 고민중”
떠나간 공장부지에 대규모아파트단지 속속 들어서

인구는 매년 격증 ... 교육시설은 ‘제자리걸음’
지역변화 고려치 않은 무책임한 교육행정도 한몫




항동 그린빌라에 살던 아무개(44)씨는 이 달 중학교에서 전교 1,2등을 하는 딸아이의 교육을 위해 얼마 전 여의도로 이사했다. “이제 한결 마음이 편안합니다. 교육환경이 열악한 구로에 있다가 우리 딸까지 경쟁력을 잃게 될까봐 걱정이 많았습니다”

자녀학업 때문에 구로를 떠나거나 떠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자녀가 있는 학부모들이라면 한번쯤 주소지 이전이나, 이사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것이 오늘날 구로교육의 현주소이다.

구로동에 소재한 한 중학교에 근무하는 배아무개(45)교사는 “중학교 2학년때 공부 잘한다는 학생들이 많이 전학 간다”며 “어떤 해에는 전교 1등부터 5등까지 나가버려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을 종종 받기도 한다”고 털어놓을 정도다.

이같은 현상은 타지역에 비해 청소년 시설이 부족하기도 하지만 수천세대의 대규모 아파트단지가 구로 지역 곳곳에 들어서면서 이젠 질적 차원이 아닌 양적인 문제로까지 열악한 교육환경문제가 확대되면서 더욱 심화되고 있는 현실.

고척동에 위치한 서울세곡초등학교의 경우 학생 수에 비해 학교시설이 부족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서울세곡초등학교 장명관(64)교장은 “이젠 더 이상 충당할 교실이 없을 정도로 콩나물 교실이 돼버렸다”며 “화장실이 모자라 쉬는 시간에 미처 볼일을 못 봐 교실에서 일을 보는 학생들이 많아 학부모들의 불만이 날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고 전했다.

중학교도 사정도 마찬가지다. 현재 2002학년을 기점으로 구로지역 중학교 입학생이 11학급이나 증설되며, 특히 구로중학교의 경우 타 중학교 보다 가장 많은 5개 학급이 증설될 예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구로중학교 교사, 학부모, 운영위원회가 함께 지난해 말부터 남부교육청에 건의서를 제출하는 등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구로중학교 장인홍 운영위원장은 “남부교육청에 건의서를 제출한 뒤 답변서를 받았으나 예산부족 문제만 얘기할 뿐 학급 수 증가에 대한 별다른 대책은 확인할 수 없었다”며 “아무런 대안 없이 학급 수를 늘리는 무책임한 교육행정이 구로의 교육환경을 더욱 망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환경의 열악성이 집단적으로 발생한 곳도 있다. 대부분이 공장지대였던 신도림동은 공장이 있던 자리에 대림아파트 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고등학교는 전무하고 초․중학교도 각각 한 개씩 밖에 없어 외부지역으로 나가거나 구로에서 학교를 다니려 해도 먼 거리를 가야하는 상황이다. 우성아파트에 사는 장아무개(46)씨는 “이젠 좀 사는데 편안하다고 느끼니까 아이들 교육문제가 걸려 또 이사를 고려해봐야 한다.”며 난감해 했다.

지역에 교복공동구매 바람을 일으키며 구로 교육환경에 꾸준한 관심을 보이는 남부학교운영위발전협회(남부학운협) 조찬형(38)씨는 “남부학운협 몇 몇 회원들도 자녀의 교육문제로 이사를 한다느니, 주소지를 옮긴다느니 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서울시교육감선거, 교육위원회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올바른 마인드를 가진 인물을 뽑는 계획만 있을뿐 남부학운협 차원의 조직적 대책마련은 아직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조씨는 이어 “남부학운협 또한 구로교육 환경의 심각성은 느끼고 있는 바 중, 장기적인 사업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다”며 “교육환경에 대한 실천적인 운동이 필요할 시점에는 지역 주민과 함께 움직여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구로의 교육 환경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일선 교사들의 의식수준도 구로의 교육환경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재 중학교 2학년 아들의 교육문제 때문에 고민이 많은 박아무개(42, 오류1동)씨는 “학교교사들이 먼저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게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라’라는 말을 해준다.”며 “학생시절, 부모의 열 마디보다 교사의 한마디가 중요한 법인데 학교에 대한 프라이드와 자신감을 심어주지 못할 망정 오히려 아이들을 부추기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또 박씨는 “면학분위기만 제대로 조성이 된다면 굳이 다른 구로 이사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며 “면학분위기 조성에 교사들의 의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요즘 새삼 느낀다”고 얘기했다.

구로의 이 같은 교육환경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구로지역 초, 중학교를 관할하는 남부교육청은 뒷짐만 지고 있다.

남부교육청 관계자는 “지역적으로 일어나는 현상까지 감안해 교육정책을 펼칠 수 는 없다”며 “서울시교육청에 따른 교육정책 외에 특정지역을 위한 계획은 갖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시설 부족으로 떠나고 면학분위기 조성이 어려워 떠나는, 이래저래 떠나는 주민만 늘어날 판이다.



tipy-7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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