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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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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이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을까"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0.03.22 1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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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기획 - 구로를 걷다 2 옛 구로3동 판자촌(현 한신휴플러스·두산위브 아파트단지) 두 번째 이야기

   삶은 위대하다. 주민들은 갖은 방편을 동원해 건물만 앙상했던 구로3동 판자촌을 사람 사는 공간으로 변모시켜나갔다. 척박한 이곳에 주민들을 떠밀어놓고 나 몰라라 뒷짐 지고 있던 정부에 기대지 않고 오롯이 주민들의 힘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처음 이사 올 적엔 부엌도 없고 방만 있었어. 그걸 우리가 붙이고, 이어서 집같이 만들고 살았어. 정부에선 불법이다 그랬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지, 안 그래? 연탄구들까지 들이고 나선 좀 살만하다 싶었는데…."


 62년경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허상숙(78, 구로3동) 이화우성아파트노인회장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뼈 속까지 시린 추위를 이기려 집에 앉힌 연탄구들이 금쪽같은 아이들의 생목숨을 앗아가기 시작한 이야기를 막 시작했을 때였다.


 가난한 마을에선 사람 목숨이 거짓말처럼 쉽게 지곤 했다. 뒷집 부부가 새벽 벌이를 나간 사이 어린아이 셋이 연탄가스에 질식해 목숨을 잃었고, 건너 집의 한 아이는 아빠 무릎에서 "밥 냄새 나, 밥 냄새 나" 혼잣말을 하다 주린 배를 안고 숨을 거두었다. 동생들 학비 대러 시골서 상경한 여성노동자들이 연탄가스에 죽어나갔고, 생면부지의 연고 없는 이들도 어느 날 아침 돌연 세상을 떴다. 이곳에서 30여 년간 통장 일을 봐온 이봉우(78, 구로3동) 씨는 그때의 일을 긴 한숨과 함께 가슴 깊은 곳에서 끄집어냈다.


 "연탄가스다 뭐다 해서 많이 죽어 나갔지. 너나없이 가난했지만 함께 천막 치고 장사 지내주고 그랬어. 사람 사는 인정 생각하면 그 때가 더 사람 사는 것 같았지. 언젠가는 죽은 사람 조카 되는 이가 찾아와서 고맙다고 인사하대. 다들 사람 도리 하고 살았지, 그땐."
 
   새로운 생명들도 쉼 없이 태어났다. 60~70년대 이곳의 젊은 엄마들은 전기와 수도도 잘 안 들어오는 좁은 집에서 홀로 아이를 낳고 탯줄을 끊었다. 셋째와 넷째를 이곳에서 낳은 최분순(75, 구로4동)씨도 그랬다. 그 딸과 아들이 올해 마흔여덟, 마흔넷이 됐으니 기억이 가물가물할 법도 한데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그만큼 억척스럽게 살아온 삶이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부른 배로 여길 왔는데 그해 8월에 셋째를 낳고 4년 있다 또 낳았지. 그땐 다들 착하게 잘 컸어. 오히려 지금보다 걱정이 덜했다니까. 제일 골칫거리가 김치 쉬는 거. 냉장고가 없으니 여름엔 만날 쉬어빠진 김치를 볶아다가 애들 먹였지. 도시락반찬으로 멸치 한 번 못 싸준 게 제일 미안해."


   아련한 추억을 되짚으며 깊고 느리게 걸었던 길. 주민들을 만난 후 다시 걷는 길에서 이제는 느낄 수 있다. 그들이 전해준 과거의 풍경들이 소리와 냄새, 맛으로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골목길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울음소리, 해질녘 이집 저집서 풍기던 밥 냄새, 알싸한 탁주의 맛. 김병묵 한신휴플러스 회장이 되뇌던 말을 똑같이 따라서 읊어본다. "그이들 뿔뿔이 흩어져 어디로 갔을까? 다들 잘 살고 있을까?"

 
   인천시 동구 송현동 고개 마루에 오르면 단아한 건물 한 채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달동네 박물관'이 그곳이다.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감동은 쉬이 잊혀 지지 않는다. 1960~ 70년대 수도국산달동네를 그대로 재현해 놓은 판자촌 체험관과 달동네주민이 연필로 꾹꾹 눌러 쓴 27권의 일기를 둘러보는데, 서럽고 아프기만 했을 것 같은 달동네 주민들의 삶이 어느 사이엔가 척박한 삶터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하고 애쓴 '미덕'으로 치환되는 것을 경험했다.


 구로3동 판자촌은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졌다. 우리는 초라했지만 위대했던 그들의 삶을 후세에 무엇으로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인가?

  

 ☞ 도움말
     이봉우 (구로3동) 어르신
     최분순 (구로4동) 어르신  
     김병묵  한신휴플러스 노인회장
     허상숙  이화우성아파트 노인회장   

 

 

 

 

 

 

 

 

◈ 이 기사는 2010년 3월 15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41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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