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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우리는 '구로의 국회의원'을 가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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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우리는 '구로의 국회의원'을 가졌나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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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 국회의원의 추억, 30년사
 국회의원은 민의를 기반으로 한 지역 발전의 첨병이자, 지역의 유지로서 권력으로서 명맥을 이어왔다. 이러한 특성때문에 주민들의 기대치와 신뢰, 요구가 집중되었던 대상이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4년에 한 번씩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선출하면서 정치권은 민심을 확인했고, 국민들은 국회의원을 통해 기대와 희망 그리고 배신감과 좌절을 동시에 맛보기도 했다.

 구로타임즈는 창간 9주년을 맞아 구로구 국회의원사를 살펴봄으로써 구로구의 현재를 되짚어보고 발돋움하고 있는 지역사회의 희망을 발견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 선거구의 시대적 변화

 1980년 4월 1일 영등포구에서 구로구가 분리 신설된 후 지난 2008년 4월 총선까지 구로구에서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는 총 10번. 1981년 제11대부터 2008년 제18대 선거에다, 1999년과 2001년 구로을선거구 재선거를 포함한 것이다.

 이는 1995년 3월 1일 구로구에서 금천구가 신설 분리되기 전인 제14대 선거까지 포함하고 있어, 현 금천구 지역 국회의원 선거결과도 반영한 수치이다.

 1981년 제11대 선거는 현 구로구와 금천구가 하나의 선거구였으며, 1985년 제12대까지는 중선거구제로서 (갑) (을) 선거구를 통합해 2명의 국회의원을 국회로 보냈다. 그러다 1988년 제13대부터는 구로(갑)과 구로(을) 선거구로 나눠 선거구별로 1명의 국회의원을 뽑았는데, 당시 구로(갑)은 현 구로구 지역이었으며 구로(을)은 현 금천구 지역에 해당했다.

 제14대는 갑·을·병 선거구로 나뉘었는데, 이때 구로(갑)은 고척, 개봉, 오류, 수궁동이었고 구로(을)은 현재 금천구 지역, 구로(병)은 구로, 신도림, 가리봉으로 현재의 구로(을)지역이었다.

 현재의 구로(갑) 선거구(개봉, 고척, 오류, 수궁)와 구로(을)선거구(구로, 신도림, 가리봉)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은 제15대인 1996년 선거부터다.

 
 ■ 최다선 의원은 4선 김기배 의원

 10번에 걸친 구로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는 93명이며, 당선자는 19명이다.

 가장 많은 득표를 올린 의원은 조연하 의원(12대, 127,225명)이고, 최다선의원은 김기배 의원(구로갑, 12·13·14·16대)으로 4선을 기록했다. 김기배 의원을 제외한 나머지 18명 당선자 가운데 재선에 성공한 의원은 김병오 의원(11·4대)뿐이어서 구로 국회의원 격동의 역사를 엿볼 수 있다.

 가장 많이 출마한 사람은 역시 최다선 의원인 김기배 의원으로 6번 출마해 4번 당선됐다. 김병오(구로갑을) 의원은 11대, 12대, 14대, 15대 등 4번 출마해 2번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반면 정순주(구로갑) 씨가 13대, 14대, 15대, 17대에 걸쳐 4번 출마했으나 모두 낙선해 안타까운 기록을 갖게 됐다.

 19명의 국회의원 중 2009년 2월 19일 현재 사망한 국회의원은 두 명. 12대 조연하(신민), 15대 이신행(신한국) 의원으로 조 의원은 2006년 8월 28일 노환으로, 이 의원은 2004년 4월 17일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 구로(갑) 거물 무너뜨린 두 '신인'

 한국수출산업공단(구로공단) 이사장으로 와 구로에서 국회의원이 됐던 최명헌 의원의 뒤를 이어 1984년에 공단 이사장으로 부임해 12대부터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김기배 의원의 3선 아성을 무너뜨린 것은 탤런트출신의 정한용(국민회의) 의원이었다. "당시 DJ측에서 출마를 요청해왔고, 원래는 용산구에서 출마하려다가 공천이 확정 안된 구로갑으로 오게됐는데, 김기배 의원이 워낙 세다보니 얼굴 팔린 놈이 나서는 게 낫겠다 싶었겠죠." 예상은 꼭 맞아떨어져 2천표 차로 정한용 의원은 당선됐다.

 김기배 의원은 첫 고배를 마신 후 절치부심에 들어가 16대에 4선에 성공했다. 이때는 정한용 의원을 물리치고 구로갑에 공천된 민주당 이인영 의원에게 2천표 차이로 승리했다.
 하지만 17대에서는 한나라당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해 이인영 의원(당시 열린우리당)에게 결국 국회의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롱런'해오던 김기배 의원에게 일격을 가해 승리를 거머줬던 정한용, 이인영 의원은 당시로선 대단한 이변의 주인공들이었다.

 정한용 의원은 16대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지 못하자 자민련에 입당해 인천 연수구로 출마했다가 낙선했고 김기배 의원은 17대 무소속 출마 후 낙선, 정치일선에서 떠났다.
무너뜨린 데는 '지연'도 작용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정 의원, 이 의원 모두 충청도 출신이라는 게 암암리에 효과가 있었죠. 구로갑은 충청도 출신이 전라도 출신보다 2~3%정도 많은데 전통적으로 보수인 충청도 사람들이 동네 사람 밀어준 게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봐요."

 또 결정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믿고 맡기는 게 국회의원 표심임에도 불구하고 3, 4선을 하면서 '한번 바꿔보자'는 심리가 주민들 사이에 생긴 것도 한 요인이라고 언급했다.

 김기배 의원은 17대 한나라당 공천심사에서 떨어진 후 무소속으로 출마,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범래 의원과 급격히 사이가 나빠졌지만, 지난해 18대 선거를 앞두고 종던보다 훨씬 편안한 '화해' 무드로 들어섰다.

 한편 지난 2000년 총선이후 정치를 떠난 정한용 의원은 2003년 SBS 천국의 계단으로 방송활동을 재개, 현재 탤런트활동은 물론 경인방송 시사프로 사회자로도 활동영역을 넓혀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9일 강남 사무실에서 만난 정한용 전 의원은 주민에게 하고싶은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 처음에 어찌됐든 구로가 큰 기대를 갖고 국회의원으로 뽑아주었으나 기대에 흡족한 의정을 못한 것은 송구스럽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밝혔다.

 
 ■ 두 번의 재선거로 얼룩진 구로(을)

 다선의원을 배출한 구로갑과는 달리 구로을은 격변의 역사였다. 구로을선거구 국회의원 선거에서 15대, 16대 연달아 발생한 국회의원직 박탈사건은 구로을 주민들의 마음에 국회의원에 대한 혼란으로 이어져 실망과 배신감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재선거 첫 테이프를 끊은 이신행 의원은 기아차 전무와 기산 사장을 지낸 경제인이었다. 부인 조은희 여사는 본지의 이번 구로지역 국회의원사 기획과 관련해 가진 인터뷰에서 남편이 경제인으로서 정계 입문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해외 자본을 유치하러 많이 다녔는데, 총칼 들고 정권 이룬 나라에 어떻게 돈을 빌려주냐는 말을 많이 들었나봐요. 제대로 선거 치뤄 오명도 벗고 잔치 같은 선거, 즐거운 선거 만들어보겠다며 출사표를 던졌어요."

 공천을 받은 이신행 의원이 가장 먼저 달려온 곳은 구로3동 쪽방골목. 지금은 아파트로 변한 당시의 구로3동 쪽방촌의 눈을 뜨고 보기 힘든 주거환경를 본 이 의원이 눈물을 흘리며 평생에 걸쳐 봉사하는 마음으로 지역발전을 이루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조 여사는 말했다. 14대에 낙선했던 이 의원은 드디어 15대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그러나 IMF사태 이후 외환위기 책임론이 들끓던 1998년 5월 기산 사장시절 불법비자금 조성을 이유로 체포영장이 발부돼 결국 9월에 구속수감 됐다.

 부인 조은희 씨는 이신행 의원의 구속수감에 대해 정치적 배경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병오 의원이 DJ 실세로서 구로을에서 재선에 성공했는데. 3선에 도전하는 김 의원을 이긴 남편이 이뻐보였을 리가 없었겠죠?"

 게다가 당시로선 비자금 조성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뻔히 아는 상황에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던 32억원이 개인 횡령으로 남았고 결국 이신행 의원은 쇠고랑을 차고 실형 3년을 모두 채우고 출소했다고 조은희 씨는 당시를 회상했다.

 비운의 이신행 의원은 출소 후 재기를 꿈꿨으나 2004년 4월에 대장암으로 사망했다.


 ■ 남편대신 출마, 한광옥과 '한 판'

 이신행 의원의 구속수감으로 1999년 3월 30일 열린 재선에서는 이신행 의원을 대신한 부인 조은희 씨와 당시 국민회의의 거물 한광옥 의원이 맞붙어 한 의원이 7천표 차로 승리했다.

 한광옥 의원은 원래 관악구 의원 출신이었으나, 노사정위원장으로 활동을 하면서 지역구에 출마를 안했던 상황이라 새로운 지역구가 필요했었고, 무난하게 노사정위원장 활동을 펼치고 있어 당시 김대중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얻고 있었던 것.

 조은희 씨는 이신행 의원이 정계 진출을 선언했을 때 반대했지만, 구로에서 펼치고자 했던 남편의 뜻을 잇겠다는 생각으로 당시 출마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 여성기업인의 등장과 씁쓸한 퇴장

 애경백화점으로 지역기업인으로서 이미지를 쌓고 있던 16대 장영신 의원의 등장은 신선했다. 30대의 나이에 기업을 이끌어 애경그룹으로 성장시킨 최초의 여성CEO라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2001년 7월 13일 대법원의 제16대 구로을 선거무효 판결로 장영신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했다.

 장 의원이 회장으로 있는 애경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의 불법 선거운동에 따른 판결로 당시 재판부는 "장 의원측의 불법선거운동이 선거의 공정을 심대하게 저해했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당은 큰 충격에 빠졌다.

 이를 적극적으로 폭로하고 결국 선거무효라는 결과를 이끌어낸 사람은 16대총선 에서 장영신 의원과 격돌해 무릎을 꿇었던 이승철 한나라당 구로당원협의회장이었다.


 ■ 김한길 이승철, 두 번에 걸친 빅매치

 장영신 의원의 의원직 상실로 인해 다시 국회의원 선출을 위해 2001년 10월 25일 두 번째 재선거가 치러졌다.

 한나라당에서는 선거무효를 이끌어낸 이승철 후보를 우여곡절 끝에 내세웠다. 이승철 당원협의회장은 그에 앞선 1996년 제15대 선거에서도 소위 꼬마민주당으로 출마했다가 낙선된 바 있었다.

 "거물급 인사가 필요했어요. 당시 이강래 의원(현 남원 국회의원)을 포함해 내부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김한길 의원이 가장 유력한 결과를 보였죠."

 그때 상황에 대해 민주당 쪽 지역 관계자는 이렇게 전했다. 결국 그 당시 문화관광부장관을 하고 있던 김한길 의원이 낙점을 받았다.

 재선거에 출마한 김 한길 후보는 당시 여론조사에서도 이승철후보에게 13% 정도 앞서 낙승을 예상했으나, 결과는 낙선이었다. 국회의원 배지는 15대, 16대에 이어 세 번째 도전에 나섰던 이승철 후보에게 돌아갔다. 탄탄한 표밭이라고 여겼던 구로(을) 지역에서 패배하자 김한길 의원은 절치부심 끝에 결국 두번째 겨룬 제17대 선거에서 1만 3천표차로 당시 의원이었던 이승철후보를 제압했다.

 그 이후 이승철 의원은 구로를 떠났다. 당시 한나라당 이승철후보의 선거운동본부장을 맡았던 이계명 전 한나라당 구로당원협의회장은 "편지 한 장 남기고 구로를 떠났다"며 현재 연락이 두절된 상태라고 말한다.

 김한길 의원도 결국 정치적으로 구로를 떠났다. 18대 선거를 앞둔 지난2008년 1월 6일 대선 패배의 책임을 들어 불출마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으며, 무주공산이 된 구로을선거구는 다시 중앙당들의 전략공천 지역으로 남았다.

 결국 지난해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의 박영선 의원과 한나라당 고경화 의원이 전략공천을 받아 격돌, 민주노동당 유선희 후보와 여성 3파전으로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 굵직한 거물급 많았던 구로구

 12대 국회의원이었던 조연하 의원은 5대, 8대에도 국회의원을 지낸 대표급 정치인으로, 신한민주당 부총재를 거쳐 12대 국회 부의장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이 미국에서 돌아온 직후 커져버린 조연하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1985년 제12대 국회 부의장을 다른 사람으로 내정하며 견제했으나, 이에 반발해 당명을 어기고 출마, 부의장에 당선되는 파란을 일으켰다. 결국 당에서 제명되는 불운을 겪었다.

 제11,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병오 의원은 2000년 국회사무총장을 지냈으며, 4선 의원인 김기배 의원은 2000년에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임명을 받았다.

 제11대 최명헌 의원도 노동부장관을 거쳐 새천년국민회의 부총재,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냈다.

 한광옥 의원은 1998년 노사정위원회 초대위원장을 지내다 이신행 의원 의원직 상실로 실시된 1999년 3월 구로을선거구 재선거에서 당선된 후 그해 11월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받았다. 그 이후 2001년 새천년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2003년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지난해 815 특별사면으로 복권돼 2월11일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위촉됐다.

 김한길 의원은 15, 16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거쳐 제17대에 구로을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후 2006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이에 앞서 2000년에는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다.


◎ 이런 국회의원을 바란다

재선거로 한광옥 의원이 당선된 지 8개월만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가게 되자, 구로을은 다시 떠나버린 국회의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형국이 됐다. 그리고 한광옥 의원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고 민주당에서는 애경 계열사 등이 구로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지역적 기반이 높던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이 공천을 받아 출마,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게 된다.

■ '철새' 공방, 정치판 단골 메뉴(?)

 선거 때마다 나오는 정치공방 중 하나가 철새 공방.

 특히 이승철 의원과 김한길 의원의 철새공방은 절정에 달했다. 2001년 재선거 당시 전략공천을 받아 내려온 김한길 의원에게 이승철 의원이 펼친 공세 중 하나가 '구로를 모르는 철새정치인'이라는 것.

 이승철 의원은 "구로2동에서 장사를 하는 어머니가 있는 구로가 고향"이라고 알렸고, 김한길 의원은 "아버지가 독재정권에 맞서 싸우다 감옥살이를 한 곳도, 어머니가 나를 어렵게 키워온 곳도 구로"라며 서로 '구로사람'임을 내세워, 주민들의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선거만 끝나면 사라지는 후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입을 모은다. 선거때만 되면 '구로에 뼈를 묻겠다' '구로 발전을 위해 평생 이 한몸 바치겠다'고 공언하는 후보들을 만나왔지만 그 이후는 확인할 길 없었고, 이런 저런 이유를 구로를 떠나는 국회의원과 후보들을 많이 경험해왔다. 특히 구로을에 국회의원은 '철새'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다.


 ■ "지역 이해는 출발선 아닌 목표"

 이처럼 '철새정치인'이 이슈가 될 만큼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중요한 것일까. 그렇다면 구로구 주민들은 지역 출신 국회의원과 전략공천 받은 낙하산 국회의원 중 어떤 지역구 국회의원을 원할까.

 과거 다리 건설, 도로 개통 등 지역개발을 공약으로 내거는 국회의원들은 개발도상국 시대 공약으로 소위 '빽'있는 전략공천 국회의원을 바라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생활밀착형, 삶의 질을 높이는 공약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국민들이 행복하고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이 국회의원의 할 일이며 입법활동을 위한 연구, 조사를 하고 주민들을 만나면서 가려운 부분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주민들이 바라는 지역구 국회의원들의 상이 담겨있다.

 지역 출신이냐, 낙하산 공천이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지역주민들의 가려운 곳이 어딘지 아는 이해와 애정, 그리고 함께 하려는 마음이라는 정답 그대로다. 즉 '철새네, 아니네'를 둘러싼 출발선에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후 과정과 목표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전 국회의원들 인터뷰 고사

이번 취재를 위해 전 국회의원들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선거때마다 지역에 대한 봉사와 책임을 다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국회의원들이었던 만큼 지역에 대한 애정과 아쉬움이 클 것이라 생각했던 것은 잘못된 생각이었다.

 전 국회의원들 가운데 정한용, 이인영 의원을 제외하고는 '지나간 사람으로 얼굴을 내밀고 싶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대부분 최소한의 근황을 알리는 것조차 거절해 지난 2007년 '구로구청장 13인의 어제와 오늘' 취재과정에서 보여준 역대 구청장들의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국회의원직을 떠난 뒤에도 구로5동에 살고 있는 11대 김병오 의원도 그중 한명이었다. 이번 취재 요청에 "정치에서 떠났다"며 "나이 70이 넘어 조용히 지내고 싶어 인터뷰를 못해 미안하다"고 전했다.

 4선 의원인 김 의원과의 인터뷰도 원활하지 않았다. 김 의원은 1991년 설립한 백숭복지재단(개봉동 소재)을 통해 구로갑 지역내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 지급, 복지시설 후원금 전달 등 다양한 복지사업을 계속하고 있다. 현재 집은 개봉3동에서 수년전에 방배동으로 이사해 살고 있다.

 세상을 떠난 이신행 의원을 대신해서는 부인인 조은희 씨가 취재에 응해 당시 근황과 활동 등에 대해 들려주었다. 조은희 씨는 현재 목동에서 영어학원을 운영중이며 오는 3월 중순 무렵 구로구에서 재가노인요양사업을 시작할 것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장영신 의원도 2007년 애경백화점 인근 자이 아파트로 이사해 살고 있으나, 역시 정계은퇴를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다. 현재 구로문화원 이사장과 애경그룹 회장을 맡고 있으며 그룹 경영도 아들에게 맡긴 후 손을 뗀 것으로 전해졌다.

 한광옥 의원은 "4월 29일 실시 예정인 재보궐선거에서 전주 완산갑선거구 출마를 준비하고 있어 자칫 유권자들이 혼란스러울까 우려된다"는 이유로 인터뷰를 거절했고, 2001년 재선거에서 당선된 이승철 의원은 17대 선거에서 낙선한 후 구로를 떠나 현재 연락이 끊긴 상태라고 한나라당 관계자는 전했다.

 김한길 의원은 현재 신도림동 모 아파트에서 거주하고는 있으나, 사무실을 용산구로 옮긴 후 구로에서의 정치적 활동은 접었다. 공식적인 외부 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취재에 응할 수 없다고 밝혔다.



■ 송지현 ·김경숙·황희준 기자



<< 구로구 국회의원 선거 주요 일지 >>

· 1980. 4. 1. 영등포구에서 분리, 구로구 창설
 (구로동, 가리봉동, 독산동, 시흥동, 고척동, 개봉동, 오류동, 궁동,
  온수동, 천왕동, 항동, 신도림동)
· 1980. 8. 27. 전두환 대통령, 11대 대통령 당선(통일주체국민회의)
· 1981. 2. 25. 전두환 대통령(민정), 12대 대통령 당선(대통령선거인단)
· 1981. 3. 25. 11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서울시 제9선거구) 최명헌(민정), 김병오(민한) 당선
· 1985. 2. 12. 12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
 (구로갑을선거구) 조연하(신민), 김기배(민정) 당선
· 1987. 12. 16. 노태우 대통령(민정), 13대 대통령 당선(직선)
· 1988. 4. 26. 13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구로갑, 을선거구)
구로갑 김기배(민정), 구로을 유기수(공화) 당선
· 1992. 3. 24. 14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구로갑, 을, 병선거구)
 구로갑 김기배(민자), 구로을 이경재(민주), 구로병 김병오(민주) 당선
· 1992. 12. 18. 김영삼 대통령(민자), 14대 대통령 당선
· 1995. 3. 1. 금천구 분리, 창설(독산동, 시흥동, 가리봉동 일부)

· 1996. 4. 11. 15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구로갑, 을선거구)
 구로갑 정한용(국민회의), 구로을 이신행(신한국) 당선
· 1997. 12. 18. 김대중 대통령(국민회의), 15대 대통령 당선
· 1998. 9. 이신행 의원, 불법비자금 조성으로 구속 수감
· 1999. 3. 30 재선 실시(구로을선거구) 한광옥(국민회의) 당선
· 1999. 11. 23 한광옥 의원,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 2000. 4. 13. 16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구로갑, 을선거구)
 구로갑 김기배(한나라) 구로을 장영신(민주) 당선
· 2001. 7. 13. 장영신 의원, 선거무효 판결로 의원직 상실
· 2001. 10. 25 재선 실시(구로을선거구) 이승철(한나라) 당선
· 2002. 12. 19. 노무현 대통령(새천년민주), 16대 대통령 당선
· 2004. 4. 15. 17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구로갑, 을선거구)
 구로갑 이인영(열우), 구로을 김한길(열우) 당선
· 2007. 12. 19. 이명박 대통령(한나라), 17대 대통령 당선
· 2008. 1. 6. 김한길 의원 구로을선거구 불출마 선언
· 2008. 4. 9. 18대 국회의원 선거 실시(구로갑, 을선거구)
 구로갑 이범래(한나라), 구로을 박영선(민주) 당선




◈ 이 기사는 2009년 2월 23일자 2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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