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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8]천왕동 집성촌과 광주노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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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8]천왕동 집성촌과 광주노씨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3.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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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때 영의정 하연 후손부터 정착
▲ 광주노씨 노숭의 18대손 노길식 할아버지. 개발로 인해 600년을 이어온 터전을 버리고 떠나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구로구 천왕동. 조선 세종 때 영의정(領議政)을 지냈던 경재(敬齎) 하연(河演)의 후손인 진주하씨(晉州河氏)들이 개척했다. 그리고 진주 하씨에 이어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은 조선 숙종 말년 무렵 이곳에 정착한 청주한씨(淸州韓氏)들이다. 그리고 천왕동 210번지 일대는 고려말에서 조선초 검교우의정을 지냈던 노숭이 뼈를 묻은 곳으로 그 후손인 광주노씨(光州盧氏)들이 600년 전부터 그 곳을 지키고 있다.

최근 천왕동에 교도소 이전과 함께 개발바람이 불면서 진주하씨는 이미 떠나고 청주한씨와 광주노씨 후손들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이들도 몇 백년간 구로를 이어왔지만 선조들의 뿌리가 있는 곳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한다. 노숭의 후손인 광주노씨 노길식(64, 천왕동) 할아버지도 조상님을 모시고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이다.

“노씨의 시조는 원래 당나라 한림학사(翰林學士)를 지낸 노수(盧穗)인데 9형제를 이끌고 신라로 왔다. 9형제는 본관은 광주(光州)·교하(交河)·풍천(豐川)·장연(長淵)·안동(安東)·안강(安康)·연일(延日)·평양(平壤)·곡산(谷山) 이다.”

노길식 할아버지는 뿌리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며 당나라에서 신라로 건너온 노수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9형제 중 장손인 광주노씨는 고려조에 공을 세우고 광산군(光山君)에 봉해진 만(蔓)을 1세조로 하는 계통과, 조선 개국원종공신으로 검교 우의정을 지낸 경평공 숭(敬平公 嵩)의 묘지를 근거로 하여 고려조에 감문위 대호군을 지낸 서(恕)를 1세조로 하는 두 계통으로 나뉘게 된다. 즉 서의 증손(曾孫)인 경평공 숭이 천왕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숭은 슬하에 상인(尙人), 상의(尙義), 상례(尙禮), 상지(尙智), 상신(尙信)의 아들 5형제를 두었다고 한다.

노길식 할아버지는 둘째 상의의 후손으로 노숭의 18대손이다.

30년 넘게 전통주를 만들고 있는 노길식 할아버지는 “구로에서 최고 명주를 만들어 병에 로고로 아홉노인도 새기고 구로의 자랑이 되고 싶었는데 ‘개발된다’ ‘교도소가 된다’ 하면서 꿈이 다 허물어졌다”며 “노숭 할아버지의 영정도 어디로 모시고 가야 할지... 역사에 길이 남는 건데 다른 곳으로 이사가야 하니까 아쉽다”고 전했다.

개발로 하나둘씩 사라가는 역사를 이렇게 한 줄의 글로써만 기록할 수밖에 없다. 구로에 터를 잡고 살아온 토박이는 아닐지라도 이 기록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곳의 뿌리를 알게 되고 그를 통해 우리가 사는 지역에 자긍심이 생기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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