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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0]봉수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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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40]봉수대터
  • 김윤영기자
  • 승인 2007.01.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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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웅산 온수산 등 3곳에 '흔적'
▲ 인근 주민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는 신정산 봉수대 터.

지난해 11월 21일 정오 남산 봉수대에서는 지난 1895년 이후 110여년 만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구로구에서도 핸드폰이나 전화도 없던 그 옛날 멀리 있는 지역에 소식을 전하기 위해 봉수대의 봉화는 피어올랐을 것이다.

문헌을 찾아보면 구로구에 전해져오고 있는 봉수대는 3곳. 개웅산과 온수산, 그리고 고척동 고인돌이 묻혀있는 신정산이 그곳이다. 지금은 문헌 속 한 줄의 자료와 산꼭대기에 평평한 터만이 봉화를 올렸던 흔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개웅산 봉화대(開雄山, 일명 봉화산 烽火山)
개웅산은 개봉 2,3동 오류2동, 천왕동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이조시대에 이산에서 봉화를 올렸다고 전해져 봉화대라고도 불렸다.

개웅산 아래 마을인 천신(天神)마을은 경인선철도와 남부순환로가 교차하는 서남쪽 개봉2동 247번지 일대의 마을로 오류2동 엉꿀(응골)과 접하는 지역이다. 3.1 운동 때 이 마을 뒷산 즉, 개웅산에서 봉화를 올리며 마을 주민들이 일제에 항거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온수산 봉화대
또 온수동 근처 온수산을 봉화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봉화산은 조선시대에 경흥·동래·강계·의주·순천의 5개 봉수대 기점으로 하여 서울 목멱산(남산)에 집결됐는데 그 중 제5거로에 속하는 것으로 돌산도-강진-영광-부안-옥구-공주-수원-인천-양천을 경유하여 남산으로 향하는 길의 하나이기도 했다고 한다.

신정산 봉화대
구로구와 이웃한 양천구 지역사에 의하면 구로구와 양천구에 경계한 신정산(고척동 고인돌이 위치한 산, 오류중학교 뒤)은 인천 계양산과 통하는 봉화를 올렸던 산이라고 하여 봉배산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봉수제도는 낮에는 연기, 밤에는 불꽃을 이용해 변방에서 발생한 위급한 상황등을 중앙 등에 신속하게 전달 할 수 있도록 한 옛 통신 제도로서, 산악이 많은 우리나라는 각 지역의 고봉(高峰)을 이용하여 남해안으로부터 함경도 종성에 이르기까지 전국을 거미줄처럼 커버하는 봉수망을 구축하고 있었다.

봉수는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 의종 때 확립되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전국에 650여 개의 봉수가 있었고, 봉화는 전황에 따라 5번까지 올리는 5구분법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각 봉수마다 봉수대 5기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봉수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볼 수 없지만 구로구의 봉수대도 멀리서 전해지는 역사의 소식을 전하는 한 곳으로의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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