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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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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를 바라보는 시각차
  • 송희정
  • 승인 2007.04.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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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입법예고 기간에는 잠잠하다가 왜 구의회 심사를 앞두고 갑자기 문제 제기냐. 이런 식으로 하면 세부 일정 다 짜놓고 업무를 추진하는 공무원들은 도대체 어쩌란 셈이냐.”

지난 23일 구의회 내무행정위원회에서 문화재단 조례안이 계속심사로 결정 난 후 구청 앞에서 만난 한 공무원이 다그치듯 기자에게 전한 말이다. 비록 주관 부서 직원은 아니지만 문화예술회관 준공 기한을 앞두고 돌연 일이 틀어져 버린 것에 대해 동료로서 드는 생각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일 터이다.

일순 이해되는 대목이긴 하지만, 그의 말을 오래 곱씹을수록 씁쓸함이 밀려드는 건 기자야말로 ‘어쩔 수가 없다’.

지난 한주 구로구를 들썩이게 만든 ‘문화재단’ 논쟁은 실상 구청이 자초한 결과라는 게 취재를 담당한 기자의 판단이다.

주민으로부터 세금을 걷어 그 돈을 주민들에게 다시 돌려주는 공익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구는 너무 앞서나간 자신감에 가장 쉬우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놓쳤다. 바로 구로구 주민들의 바람과 요구를 세심히 살펴 이를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다.

2천700만원을 들여 만들었다는 ‘구의회의사당 및 문화예술회관 관리·운영방안 연구’ 용역서 안에는 다양한 문화영역 중(일부 공무원들은 ‘문화’를 ‘공연행사’와 등치시키고 있다) 구로구에서 삶을 영위하는 주민들이 가장 목말라하는 분야가 무엇인지에 대한 기초자료가 빠졌다. 문화에 대한 주민 욕구를 공연행사 관람 쪽에 맞추고 뜬금없이 대한민국 국민 표본 집단의 성향과 만족도를 제시하고 나섰다.

용역서 ‘부록’에 담긴 구로문화재단 설립안도 같은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문화에 대해, 일상의 삶에서 팍팍함을 느끼는 다수의 서민층에 대해, 실제 지역에서 문화 활동을 펼치는 크고 작은 지역단체 등에 대한 깊은 고민과 이해를 토대로 문화재단 운영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을 세우기보다는 문화예술회관 관리운영을 목표(혹은 유명인을 내세운 대규모 문화공연기획을 목표로)로 구청 ‘나 홀로’ 계획하고 추진한 프로젝트에 다름 아니다.

아래로부터의 요구를 받아 안지 않았으니 당연히 아래로부터의 문제제기도 없을 것이라고 여겼을 터. 올해 초 내부방침을 세우고, 3월 중순 조례안을 만들어, 3월말 입법예고를 하고, 4월 중순 문화재단설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4월 말 구의회 심사만 통과되면 일사천리로 일을 쭉 밀고나가려던 구청 계획은 불행히도(?) 공론의 장에 노출됨과 동시에 여론의 뭇매를 맞아 결국 문화예술회관 준공기한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구가 구 나름의 비전과 당위성을 갖고 구로구 주민의 문화향유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문화재단 설립을 추진했다는 데는 이의가 없다.

단지, 구가 문화재단 설립을 통해 일구고픈 ‘문화’와, 주민과 문화단체들이 꿈꾸는 ‘문화’ 사이에는 수렁 같은 깊은 간극이 놓여있다는 사실에 대해선 구도 인정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가 그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지금이라도 간극을 좁히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어쩌란 말이냐’라는 하소연은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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