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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콤플렉스 ] 실태와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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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콤플렉스 ] 실태와 원인
  • 연승우 기자
  • 승인 2004.02.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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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주민들 대다수 공감/검은 굴뚝’이미지 주범/ 지역 재평가 환경개선 시급//

 ●실태= 10여 년간 구로6동에서 살고 있는 정모씨(38)씨는 새로운 모임에 나갈 때마다 적잖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털어놓는다. 서로 인사를 나누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이어지기 마련인 질문과 답변, ‘어디에 사는 지를 밝힌 뒤 느끼게 되는 묘한 분위기 때문이다.

“구로구에 산다고 하면 ‘아, 구로공단에 사는구나’하는 반응이 대부분입니다. 예전의 구로공단이 아니고 많이 바뀌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매번 그러기도 힘들어 지금은 아예 대림역 인근에 산다고 얘기해요”. 개봉역 인근에서 만난 박은옥(35)씨. 그도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처음으로 동창회에 참석했는데, 친구들이 ‘왜 구로구에 사냐’고 되물어온 것. “어쩌다보니까 산다고 했는데, 정말 기분 이상하더군요. 죄를 지은 것 같더라니까요”. 당시 심경을 이같이 표현한 박씨는 “이제 구로구에 사는 게 창피할 정도”라고 말했다.

‘구로구에 사는 것이 부끄럽거나 다른 지역에 가서 구로구에 산다고 얘기하는 게 어딘지 모르게 창피하다.’ 한번이라고 이렇게 생각해 본 주민이라면 구로에 대한 상대적인 열등감을 조금이나마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구로콤플렉스’. 구로구라는 이름의 지역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이 구로를 생각하는 현 주소요, 지역주민 정서의 독특한 한 단면을 함축하고 있는 현상으로 지역전반에서 적잖이 나타나고 있다.

앞서 만난 박은옥씨는 “이웃 주민 대부분이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아이들의 교육에 신경 쓰는 학부모들의 경우는 더하다. 자기가 사는 지역이 자랑스럽지는 않더라도 부끄럽지는 않아야 하는 데,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 원인---------------“70년대 검은 굴뚝 공단 이미지 고착화”

주민들은 구로에 대해 이처럼 상대적인 열등감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구로공단 이미지’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애경백화점을 찾은 한 주민(가리봉1동)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구로공단하면 못 배운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았고, 조그맣고 더러운 방에 ‘공돌이’ ‘공순이’들이 있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타지역에 사는 주민들로부터 확인된다. 양천구 목동에 산다는 김병섭(45)씨 역시 “구로하면 구로공단 아니냐”고 반문하며 “‘낙후’ ‘벌집’ 등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구로지역에 대한 인식 등의 부재로, 아직도 ‘구로구 = 구로공단’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구로구는 지난 95년 분구되면서 3개권의 구로공단중 구로2, 3공단은 금천구로 넘어간 상태이고 구로구내에 있던 구로1공단은 한국산업단지인 키콕스를 비롯 벤처기업들이 몰려드는 각종 대형 첨단 아파트형공장 빌딩들로 빠르게 탈바꿈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 98년경부터 봉제등 제조업중심의 노동집약산업체 대신 전기 전자 기술개발이나 컴퓨터 소프트웨어개발 등 기술집약산업으로 대체되면서 변화에 걸맞게 명칭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꾸고 변신을 꾀하고 있다.

하지만 70,80년대 ‘검은 굴뚝’과 낙후된 공장단지 이미지가 구로의 이미지로 고착돼, 3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한국사회 전역을 지배하고 있고, 그것이 구로지역에서 살고 있는 상당수의 주민이나, 활동중인 직장인들에게 적잖은 콤플렉스를 유발시키고 있는 것이다. 마치 외국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히 6.25동란시절의 ‘낙후된 한국’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 열악한 주거환경도 열등감 심화”
구로지역의 열악한 주거환경도 상대적 열등감을 심화시키고 있는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70~80년대 구로지역에서 노동운동을 전개했던 구로여성인력개발센터 유옥순 부관장은 “구로공단내 대규모제조업 공장들로 인해 공기가 나빠지고, 환경이 오염되면서 주거환경이 굉장히 나빠진 것이 사실”이라며 “이로 인해 주민들은 물론 국민들까지도 기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1년6개월 전에 송파구에서 구로구로 이사왔다는 최모(40·구로2동)씨는 “아이들이 주변에 놀러가자고 보채도 공원도 하나도 없고, 놀러갈 만한 곳도 없어, 그냥 집에 있는다”며 “불법주차도 많고, 교통도 불편하고, 사람들이 왜 구로구에 와서 살기 싫어하는지 지금은 뼈져리게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은 실제로 구로구와 관련된 통계지표에서 확인된다. 서울시가 이달 초 발행한 ‘서울통계연보 2003’에 따르면 지난 2002년 말 기준으로 구로구의 공원수는 모두 38개로 서울시 25개구 가운데 22번째이며, 주차장수는 금천구(3977개)에도 뒤진 23위(3910개)로 나타났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의하면 지난 2002년 기준으로 인구1인당 근린공원 면적은 1.59m2로 서울시 평균2.88m2에도 못 미쳤으며, 인구 1만명당 문화시설 수는 0.1곳으로 서울시 최저를 기록한 바 있다.

더욱 심각한 상황은 구로를 지키고 보존해야 할 지역 내 청소년들에게도 구로콤플렉스가 은연중에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 내 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고모(19)양은 ‘구로구’라는 지명이 입시에 영향을 미칠까봐 조마조마하고 있다. 또래들 사이에서는 대입 전형에서 ‘어느 지역 출신이냐’에 따라서 당락이 결정된다는 게 공연연한 비밀이기 때문이다. 고 양은 “얼마 전 대학 면접 때 면접관이 고등학교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와, ‘혹시나’하는 생각에 당황했었다”면서 “친구들은 ‘뭐하러 안 좋은 구로에 사느냐’고 종종 물어와 엄마에게 이사 가자고 조르고 있다”고 밝혔다.


● 구로콤플렉스, 해결책은 ? ----------------

이러한 상황에 대해 지역 내 관계자들은 구로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더 늦기 전에 재정립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 첫 걸음은 구로구를 지배하고 있는 구로공단에 대한 이미지 재정립이라는 것.

수년전 구로지역에서 발행된 바 있던 지역신문사의 발행· 편집인이었던 김용신씨는 “(구로는)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원동력이면서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주역들이 지냈던 곳이었고 민주화를 이끌었던 노동운동의 메카였지만, 그동안 공단의 낙후, 열악 등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평가가 이루어졌다”고 지적, 경제사회적으로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에서의 구로공단에 대한 재평가· 재조명 작업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지역 내에서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오던 구로산업노동박물관 건립문제를 지난해 말 구의회 정례회를 통해 공식석상에서 처음으로 제기한 바 있는 백해영 의원(구로4동)은 “구로공단은 70~80년대 한국경제의 근간을 이루었고, 당시의 노동자들의 생활상과 30~40대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을 바꿔보려고 노조를 만들고 피나는 투쟁을 한 그들의 삶을 간직한 역사적인 곳”이라며 “개발논리로만 따져 굴뚝산업으로만 보고 없애버릴 것이 아니라, 정확한 연구를 토대로 자긍심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백 의원은 “개발논리에 밀려 소중한 역사 자료들이 사라지거나 구로공단에 대한 이미지가 더욱 굳어지기 전에, 하루 빨리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공단의 새로운 개발 방향을 통한 이미지 제고도 한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구로여성인력개발센터의 유옥순 부관장은 “대규모 공장들이 떠난 자리에 아파트형 공장이 들어서면서 대형 건물들이 올라서고 있는 데, 이제 삼성동의 코엑스 같은 대형 전시장을 건립 운영하는 등의 활용필요성도 있다”고 밝혔다. 고속철도 광명역사가 들어서고, 서남권 교통 요충지로서의 지리적 잇점을 충분히 활용해 유동인구를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유 부관장은 “전시장을 통해 박람회, 전시회, 패션쇼, 자동차 쇼 등 상설적인 행사로 유동인구를 끌어들여 공단주변을 활성화하면 자연히 지역 경제도 살고, 구로공단 이미지도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지역 개발차원에서의 방안도 제시됐다. 김용신 전 편집인은 “그동안 구로구를 지켜온 주민들과 소외계층을 위해 주민들이 절실히 필요로하는 공원, 문화체육시설 도서관 주차공간등 복지와 환경 등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로 삶의 질을 높이는 것도 콤플렉스를 줄일 수 있는 하나의 방안”이라고 말했다.

또 가리봉중국동포타운의 최황규 목사는 “공단이 떠나고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를 중국동포들이 메우면서 내국인이 기피하는 일을 도맡아하며 지역 경제를 지탱해 오고 많은 부분 의 기여를 하고 있지만, 불법 체류자라는 이유로 단속만 하고 있다”고 꼬집으며 “가리봉동 일대를 중국동포타운으로 지정해 3~4만명의 중국동포와 함께 더불어 사는 구로를 만든다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구로도서관 정정식 관장은 “구로구지역 교육환경이 좋지 않아 학부모들이 이사를 많이 한다고 알고 있다”면서 “명문고 등을 유치하는 것도 좋지만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 만들기, 학교도서관 활성화 등 공부할 분위기와 여건을 조성하는 것도 살기 좋은 구로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구로시민센터 장인홍 참여자치위원장은 “현재 구로는 대규모 아파트와 공장 건설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이제는 판공비 공개 등의 행정개혁, 주민참여, 생명, 환경 등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주민을 위하고 내실을 채우는, 개발의 전환과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일각에서 나오는 구로명칭 변경에 대해서는 “이름만 바꾼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게 아니며, 중요한 것은 내용”이라고 강하게 비판, “지역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갖고 참여하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구로콤플렉스는 구로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만족되지 못하면서, 다른 지역과의 비교로 나타나는 상대적인 박탈감의 한 표현으로도 볼 수 있다. 구로에 대한 애증이 묘하게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구로에 대한 지역외부의 인식전환도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구로지역사회내 모든 구성원들이 구로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합의를 바탕으로 각 부문에서 보다 나은 지역을 만들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게 된다면, 구로콤플렉스는 ‘사는게 즐겁고 자랑스런 구로’로 승화시킬 수 있는 촉매제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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