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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결정' 행정만의 몫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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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결정' 행정만의 몫 아니다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8.01.23 18: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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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대 주민의 삶터, 성급함보다 주민지혜 담아야

지난 해가 저물기 며칠 전에 겨우겨우 건강검진을 받았다. 다시는 절대 그러지 않겠노라 했던 다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또 허겁지겁 검진을 해치우게 된 것이다. 초조한 마음에 몇 군데 전화를 걸어보다 고대구로병원 검진센터에서 날짜를 받게 되었다.


원래는 내시경 검사가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았으나 운 좋게 당일 날 여유가 있어 걱정과 달리 하루 만에 검진을 모두 끝마칠 수 있게 되었다. 몇 번 정기검진을 받고나니 이제 어지간한 것들은 척척해낸다. 자궁경부암 검사가 좀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잘 넘기고, 내시경도 의사 선생님께 칭찬까지 받아가며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술술 해치워 버렸다. 


검진으로만 끝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실은 비극의 서막일 뿐이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이제 온 몸은 피로함과 노쇠함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고 있다. 그 동안 제대로 보살피지 못하고 혹사한 몸뚱이는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넓어야 하는 데는 좁아져있고, 꽉 조이고 있어야 하는 것들은 헐거워질 대로 헐거워져 제대로 역할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제대로 기능을 못하는 낡은 기계를 돌보듯 조이고, 기름칠하고 한참 손을 보아야 할 것들이 많을 것 같다. 기계야 어쩌면 그러면 되돌릴 수도 있을 테지만 이 늙은 몸은 과연 그렇게 해서 다시 쓸 만해질까. 아무래도 승산이 없을 것 같다. 


이리저리 가란 곳들을 다녀오면서 병원 여기저기를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쩌다 구로동 한 구석에 이런 번듯한 종합병원이 들어서게 되었을까. 그러고 보면 부자들이 많은 그런 동네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병원을 동네 한가운데 두고 그 동안 별 생각 없이 그저 당연하고 편리하게 이용하고 있었구나 하고 새삼스러운 감정이 들었다. 


병원이 구로시장 언저리에 들어선 것은 내가 막 고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사람에게 병원이란 그리 매력적인 장소는 아니어서 그 때 광경이 잘 기억이 나지 는 않는다. 아무튼 건강보험이 산업 노동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도입되었던 것처럼, 고대병원도 구로공단의 노동자들과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이유로 이제 우리가 이렇게 좋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시절 어려움을 감내하고 살아가셨던 공단의 노동자들에게도 감사하고, 또 그런 노동자들의 치유를 위해 병원을 이곳에 짓겠다고 결정한 분들에게도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뿐이다. 


우리의 삶터를 가꾸고 돌보는 일은 이렇듯 우리 자신은 물론이고 우리의 다음 세대들과도 깊은 관련을 맺는 일이므로 참으로 신중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다. 당장 눈앞의 이익을 쫓아서 이런저런 결정을 내리고 성급하게 한쪽으로 결론을 내어 일을 밀어붙일 수 있지만, 그런 부담은 결국 우리 후대의 몫이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이런 결정은 행정만의 몫이어서는 안되고 주민들의 지혜가 잘 담겨야 할 것이다. 


최근에 지어진 고척돔에서 유명한 K-Pop 가수들의 공연이 개최되면서 이를 보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고척돔이란 말을 사회를 보는 유명인이 몇 번이나 외치는 걸 볼 때면 묘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고척돔은 지어질 당시에나 완공된 지금에도 극심한 교통난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라 우려들이 많았는데, 이런 효과는 또 차마 생각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고척돔을 두고 울어야 좋을지 웃어야 좋을지 아리송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지금 구일 지역의 환기구 문제나 구치소를 없앤 자리에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하려는 계획, 또 오래된 전통 시장을 갑자기 없애는 문제 등을 두고 심한 의견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두가 사실 다 후대들이 깊이 영향을 받을 만한 일들인데, 우리가 충분히 신중하고 성숙한 태도로 이 문제에 임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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