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너무 예뻐서요 … 오호호호호......!"
묻지도 않은 말에 대한 대답이다.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누가 괜히 내 하는 냥을 이상하게 볼까봐 지레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먼저 나서서 사정을 설명할 때 말이다.
아주머니는 구청 앞 화단을 핸드폰에 담고 계셨다. 나는 입을 헤 벌리고 화단 꽃단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핸드폰에 담고, 나는 눈에 꽃을 담고 있었다.
예쁘다. 구청 오는 길이 행복할 만큼 꽃들이 어여쁘다. 구청이 올해 한 일들 중에 제일 잘한 일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구청 화단을 가꾼 일이라 이야기하겠다.
튤립은 또 어떤가? 어릴 적 튤립은 네델란드를 대표하는 꽃으로만 배웠다. 가끔 튤립이 활짝 핀 뻔득뻔득한 총칼라 사진으로 된 달력을 보던 생각이 난다. 사진 안에서 보이는 울긋불긋한 커다란 튤립은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튤립 뒤에는 벤치에 앉아 있는 한가로운 사람들과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모가 흔히 함께 찍히곤 했다. 그때만 해도 실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멋대가리 없이 큰 꽃을 뭐 좋다고 저렇게 쳐줄까 싶기만 했다.
그래서 처음 구청 사거리 화단에 튤립을 심은 것이 그리 마땅치는 않았다. 키만 삐죽하게 크고 뭉텅이 꽃송이 하나만 꼭대기에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아무래도 아기자기한 맛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꽃이 밤에 그리 화사할 줄은 몰랐다. 특히 흰색 튤립은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백색이 은은하게 빛나는 것이 커다랗고 매끈한 진주알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분홍도 자태나 빛깔이 크고 화사한 게 마치 서양 어느 나라의 잘 먹고 잘 자란 어여쁘고 기품 있는 공주님을 보는 듯했다.
사람 마음은 다 똑같다. 한 날은 길을 건너는데 신한은행 구청점 앞 사거리에서 몇 명의 어른들이 튤립을 보면서 감탄을 발하고 있었다. 지난해만도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제 사람들이 제법 화단을 보고 꽃들을 제대로 감상하기 시작했구나 싶었다. 비록 입에 들어가거나 손에 쥐어지는 것은 없지만 이런 데에도 예산을 쓸 법 하구나 새삼스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란 것은 이미 톨스토이도 말한 바 있으니 사실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런데 꽃을 왜 보고 있겠는가? '파랑새'에서 구로시장 근처 집까지 왔다갔다 하는 길에 그만한 눈요깃거리가 없기는 하다. 풀 한포기, 나무 한 그루도 숨이 턱턱 막혀가며 자랄 것 같은 이 아스팔트 덩어리들 속에서 그래도 아직 저 속에는 흙이 있고, 그 흙을 품 삼아 여린 싹들이 자라고 어여쁜 것들을 피워준다는 사실에 무언가를 덧붙여 말하고 싶은 마음이 그냥 예쁜 것을 감상한다는 마음을 넘어서 꽃을 보게 한다.
세상살이가 뭣 같다. 얼마나 죽어라 노력해야 저렇게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너희들은 어찌 그리 다 같이 사이좋게 모여서 아름다운 모습으로 함께 피고 있을까? 말없이 곱기만 한 것들에 자꾸 뜨거운 눈길이 갈 뿐이다.
밤거리를 배경으로 화단에 꽃을 심은 구로구청이 서있다. 주민들 각자가 자신의 가능성으로 꽃 피고 그것이 한데 모여 조화로운 아름다움으로 빛나기 위해 무엇보다 우선 구청의 진심어린 노력이 필요하다.
모름지기 공복의 이름으로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구로구청이 겨우 화단이나 잘 가꾸고 말 일은 아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랫말도 있는데, 이번 혁신교육지구 사태와 관련하여 사람을 소홀히 생각하는 점이 엿보이지 않는가 싶어 섭섭한 마음 가눌 길 없다.
그러고보니 어느덧 활짝 핀 꽃들도 시들하다. 세월은 부침이 많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