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01 10:05 (수)
[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미루의 푸른 환성
상태바
[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미루의 푸른 환성
  • 구로타임즈
  • 승인 2010.06.21 11: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요일. 아이와 텃밭에 갔습니다. 처음 씨뿌리고 모종 심을 때 간 이후로 한동안 바빠서 텃밭일은 전혀 신경 쓰지 못했는데 그 사이 아이와 아이 엄마가 부지런히 왔다 갔다한 덕에 아욱이랑, 열무, 오이 같은 것들이 많이 자랐습니다. 상추나 치커리 같은 쌈채소는 벌써 여러 차례 뜯어 먹은 건 물론입니다.


 "아빠 이거 봐!!"


 아이 팔뚝만하게 자란 오이에 놀라 쳐다보고 있는데 미루가 소리를 지르듯이 아빠를 부릅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새 큰 열무를 뽑아 들고 있습니다. 얼굴에 웃음이 환합니다. "미루야, 열무 뽑을 때 조심해. 까칠까칠해서 손 아플 수도 있어."


 "응" 하고 대답한 미루는 별로 조심하지 않고 열무를 신나게 뽑아댑니다. 뽑을 때마다 하늘 높이 치켜들고 "아빠, 이거 이거!"를 연발합니다.


 열무를 다 뽑은 미루는 곧이어 열무 뽑은 자리의 흙을 파서 이리 저리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같이 간 서진이와 함께 삽과 호미를 가지고 땅을 파헤칩니다. 아욱이랑 오이 따는 재미에 잠시 한눈이 팔려 있었는데, 돌아보니 아이들은 여전히 흙놀이에 푹 빠져 있습니다. 아예 열무 있던 자리의 흙을 파서 옆 고랑을 다 메워놨습니다. 아이들 옷은 흙투성이이고, 머리에도 흙이 잔뜩 묻어 있습니다. 맞아, 아이들은 저렇게 놀아야해 하고 생각했습니다.


 자연은 값비싼 장난감보다 더 값어치 있고 잘 만든 학습지보다 더 정교합니다. 한참 전에 뙤약볕 밑에서 같이 뿌렸던 그 자그마한 씨가 이렇게 큰 열무로 돌아오는 마술 같은 일을 장난감 따위가 따라할 수는 없습니다.


 삽으로 손으로 파서 옮기는 흙의 느낌이 주는 즐거움, 흙속에서 채소 사이에서 불쑥 나타나는 곤충들이 아이들에게 주는 흥분은 학습지가 강요하는 논리의 반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부합니다.


 20미터 쯤 떨어져 있는 수도꼭지와 텃밭 사이를 부지런히 왕복하며 물을 뿌려줬던 수고 때문에 고추와 상추가 목마르지 않고 잘 자라줬다는 사실보다 정직함과 성실함의 가치를 더 분명히 알려주는 것은 없습니다.
 열무를 번쩍 들고 "아빠, 이거 이거!"를 외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잘 자란 열무보다도 그 열무를 들고 자연과 함께 더 쑥쑥 자라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쏙 들어와 행복했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