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이 원하는 것은 교육·보육 ·도로 교통망 "당선자들 공약 지켜야 … 책임 묻는 장치 필요"
우리가족의 삶의 질을 우리 손으로 결정하는 풀뿌리 유권자 축제가 지난 6월 2일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개표 결과에서 드러나 듯 지역유권자들은 안정보다는 '견제'를, 능력보다는 '도덕성'을, 현역중진보다는 '정치신인'을 대거 선택하면서 지역정치판도에 대이변을 창조했다. 이번에 뽑힌 일꾼들은 향후 4년간 이러한 주민의 바람과 요구를 받아 안아 주민 삶의 질 개선과 살맛나는 지역발전을 위해 힘껏 일하게 될 것이다. 본지는 선거 당일인 지난 2일 새벽부터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해 투표장을 찾는 지역유권자들을 현장에서 만나 지역일꾼들에게 거는 기대와 희망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이명박 정권 심판과 견제를 향한 표심은 투표소 곳곳에서 읽혔다. 유권자들은 스스럼없이 지지 후보와 정당을 밝히며 선택 이유에 대해 나름의 논리와 비판을 가했다.
2일 아침 두 딸과 함께 신도림 제8투표소를 찾은 김구연(46) 씨는 "현 정권이 4대강사업을 밀어붙이는 데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평소 호감 가는 당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선택했다"며 견제론에 힘을 실었다.
당선자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김 씨는 "5~10%의 공약이라도 지키길 바란다"며 "이를 위해 공약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묻는 강력한 제도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복지와 교육 등 참신한 생활정책공약들도 유권자 표심을 좌우했다.
생애 두 번째 투표를 행사한 남휘라(27, 여, 구로2동) 씨는 집으로 발송된 후보자 공보물을 꼼꼼히 살펴본 후 복지와 교육 분야 공약을 비교 검토해 후보를 선택했다. 남 씨는 "우리 사회는 잘 사는 사람 위주"라며 "소외된 어르신과 아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더 확대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어 남 씨는 "특히 무상급식 전면실시를 공약에 내건 후보들은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이라며 향후 공약이행에 대해서도 꼼꼼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모친 정경순(64) 씨와 아내 장형정(34), 딸 임지원(2) 등 대가족을 이끌고 개봉2동 제5투표소를 방문한 임영일(35)씨는 "이제는 제발 싹 뒤집어엎는 식의 개발은 그만 뒀으면 한다"는 짧은 말로 기존의 개발정책에 따끔한 비판을 가했다. 임 씨는 이어 "주민이 진정 원하는 것은 개발이 아니라 내 가족이 현재 당면한 생활상의 문제인 교육과 보육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이라며 구청장 당선자에게 아이 키우기 좋은 구로, 살맛나는 구로를 만들어달라는 바람을 전했다.
구로의 혈관인 도로망과 교통체계 개선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대학 4학년에 재학 중인 이영임(24, 궁동) 씨는 "도로망 개선공사를 할 때 대체도로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없는 것이 문제"라며 "특히 남부순환로 평탄화 구간을 지날 때마다 희미한 차선 구획과 갑자기 굽은 도로로 이용에 불편이 크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상습정체구간인 경인로는 향후 돔구장이 건설되면 주차장화 될 것이 분명한데 차기 구청장 당선자는 이에 대한 또렷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자리 정책은 연령층에 상관없이 최대 관심사로 나타났다.
조윤기(28, 구로4동) 씨는 "직장에 다니고는 있지만 청년으로서 실업문제나 취업에 관심이 많아 이번 선거에서는 일자리 정책을 꼼꼼히 살펴서 후보를 선택했다"며 "알바 같은 100만 일자리보다는 대기업 연계나 실속 있는 10만 일자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조 씨는 "축구가 취미인데 잔디구장 하나 잡기가 왜 이리 어려운지 모르겠다"며 "축구하기 위해 영등포나 광명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또 멀리까지 나가서 산책을 즐기는 일이 없도록 체육시설이나 공원 등을 많이 조성해 주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
아내 이숙희(73) 씨와 함께 투표장을 찾은 김현진(80, 항동) 씨는 차기 구청장에게 바라는 점으로 "노인 일자리 정책 확대"를 첫손에 꼽았다. 김 씨는 "몸도 마음도 아직 한창 일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일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했다.
사상 유래 없는 8개의 선거를 동시에 치르면서 선거방식의 불합리함과 개선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고척1동 제1투표구를 찾은 엄정숙(69, 여) 씨는 "유세나 연설을 들어보면 서로들 볼륨을 너무 크게 키워 후보자에 대한 정보는커녕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조차 잘 모를 정도"라며 "후보자가 자신의 정책과 내용을 유권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큰딸 한주영(31) 씨와 함께 신도림동 제8투표소를 찾은 한은수(58) 씨는 "이번 선거에서 교육의원 선거는 공보물을 보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변별력도 없고 알기가 어려워 마치 로또선거를 치르는 것 같았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어 한 씨는 "1인 8표제가 복잡해보여 가족과 함께 공보물을 펼쳐놓고 공부했는데 정당이 만들어준 공약을 그대로 게재한 후보들도 있는 등 부실 공약도 많아 유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솔직히 실망스러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