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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모작5]69세 어머니의 문학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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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모작5]69세 어머니의 문학노트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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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 인생 '대안은 있다' 5 인생 이모작을 위하여
  "가 을"
  홍길자

 아~~아 가을인가 보다!
 철을 알려 주는 뀌뜨라미
 
 왠지 뀌뜨라미가 을면 쓸쓸한 마음이든다
 먼데 하늘에 뭉계구름
 높은 하늘
 맑고 선명한 가을 하늘
 
 고요한 밤에 들여 오는 귀뜨라미
 정막을 깨뜨리는 소리 뀌뜨라미
 그칠줄 모르는 귀뜨라미 소리
 
 9月 1日 밤에 홍길자
 (홍길자어머님이 쓰신 글을 그대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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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길자 어머님의 뇌경색이 발병된 시기는 9년 전이다. 사남매를 대학보내고, 자식 둘을 출가까지 시킨 그 바탕은 육십평생 노점상, 신발공장, 식당일, 청소일 등 평생 쉬지 않고 일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남편은 가장으로서 책임은 다해왔지만, 그 나이 어머님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무시도 하고 술을 먹고 귀가한 날은 폭력을 쓰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한 결과가 뇌경색과 어렸을 적 오른쪽 눈을 다쳐서 지금은 장애3급의 장애인이다. 하지만 홍길자 어머님은 육십부터 새로운 인생을 준비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해, 계모임 총무라도 맡았으면 글쓰기에 자신이 없어 늘 자식들에게 볼펜을 쥐어주고 써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래선 안되겠다 싶어 주부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2년의 배움 끝에 초등학교 졸업을 했고, 중학교에 도전했다. 3년의 학교생활을 통해서 지금은 고등학교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 얼마전 병원에 MRI 검사를 했더니 9년전 발병했던 시기와 현재시기의 뇌경색의 수치가 동일하다고 했다.

 홍길자 어머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병을 이기기 위해서 공부했어. 그러다 보니 너무 너무 재밌는거야. 영어도 읽게 되고 졸업도 하니까 자신이 막 생겨. 그리고 가방 메고 학교 가는 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어." 홍길자 어머님은 3년전 서예전시회도 여셨다.

 새로운 꿈이 있다면 칠십이 넘어서는 시집을 한권 내보시겠다고 한다.

 올해, 사위를 잃은 아픔을 딛고 밤마다 사위와 딸, 손자들에게 편지를 쓴다고 한다.

 슬퍼하고 좌절하기보다는 무언가 쓰고, 마음을 달래니 어느새 홍길자 어머님의 노트는 한권의 시집과 수필집이 되었다.

 아직도 맞춤법이 틀려 발음나는 그대로 쓰는 표현들이 많지만, 시 한 편, 편지 한편을 읽다 보면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다니는 교회에서 아이들과 할머니들을 연결해서 편지나눔의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홍길자 어머님의 편지를 받은 아이와 어머니는 감동의 편지를 받자마자 할머니를 수소문해서 찾았다고 한다.

 홍길자 어머님의 마지막 꿈은 아들, 딸 장가보내고 마지막으로 아프지 않고 편안히 자면서 하늘나라 가는 게 꿈이시다. 한평생 욕심내지 않고, 자신의 처지에서 즐거움과 기쁨이 무엇인지 찾고 성실히 살아온 홍길자 어머님의 노년의 생활은 아름답고 평화롭다.

 육십평생 일해 왔고, 그 결과 지금은 밤마다 관절염으로 잠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시인의 꿈을 갖고 스텐드 불을 켜고 돋보기를 쓰면서 써내려가는 홍길자 어머님의 문학노트엔 어떤 시들이 옛 추억을 불러일으킬까?

 오늘 뉴스에 우리나라가 노인빈곤 1위라고 하는 씁쓸한 뉴스가 전해졌다.

 홍길자 어머님처럼 대한민국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시 청춘의 꿈을 펼 수 있는 그런 날들이 오길 진심으로 바라고 바래본다.


■ 강은미 시민기자





◈ 이 기사는 2009년 9월 7일자 316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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