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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배꼽 빠지게 재미난 도서관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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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배꼽 빠지게 재미난 도서관 오세요”
  • 송지현
  • 승인 2008.08.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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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1동 20대 주부의 희망만들기
▲ 논술교사였던 조하연 씨가 독서의 중요성을 느끼던 차에 만난 지역도서관. 몸에 좋은 보이차까지 갖추고 지역쉼터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 “ 뭔가에 홀려...신나기만 해요 ”


“사고 한번 크게 친 것 같긴 한데 아직은 뭔가에 홀린 탓인지 신나기만 해요.”
생글생글거리며 아직 세상의 찌든 때와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조하연(29, 구로1동) 씨는 그의 말대로 제법 큰 사고를 친듯 보였다.

구로1동 현대상선아파트 관리사무소 2층, 50평 남짓한 공간에 혼자의 힘으로 지역의 작은도서관을 만들어낸 것이다. ‘배꼽 빠지는 도서관.’ 이름만 들어도 괜스레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저절로 번진다.

조하연 씨가 작은 도서관을 생각한 것은 직업때문.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조하연 씨는 기초 독서가 부족한 아이들의 논술수업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고, 논술의 테크닉만 익히려 드는 알맹이 없는 아이들에게 회의가 들었던 것. 평소 독서의 중요성을 생각하고 있었지만, 3살짜리 아이를 둔 주부로서 이런 ‘대형사고’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도 사실.

그러다 지난 5월 초 평소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가 꽃집을 하고 싶다길래 가게를 함께 알아보다가 꽃집 건물 2층 공간이 곧 빌 것이라는 부동산 아저씨 말을 듣고 구경이나 하자며 올라갔던 게 발단이 됐다.


# 두달째 도서관 설계중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면서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날 바로 계약하고 바로 준비에 들어갔죠.”
뭐 이런 결단력도 있구나 싶겠지만, 곧바로 후회했을 거라는 추측은 빗나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 조하연 씨는 신나고 재미있게 주변 사람들과 멋진 도서관을 설계하고 있다.

설계와 공사를 맡아준 김봉주(36) 실장은 1층 꽃집언니 남편의 친구다. 도서관 만들기에 여러 가지 일을 맡아서 해주고 있는 배경란(32, 구로1동) 씨는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만난 동네 언니다. 1층 꽃집 주인인 류승희(30, 구로1동) 씨도 아이 어린이집에서 만나 지금까지 인연을 맺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고 잡고 당기면서 두 달을 달려왔다고. 비가 내린 16일 오후에도 서가에 꽂을 책을 정리하다가 갑자기 “비오니 파전에 막걸리를 먹어야 한다”면서 아웅다웅 수다가 끊이지 않았다.

“이 일을 시작하면서 주변의 좋은 기운과 복이 다 내게로 오는 것같아요. 바로 이런 기분때문에 시작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더더욱 든답니다.”

조하연 씨는 용기 있는 선택마저도 주변 사람들의 공으로 돌린다.

“아버지가 가장 고마운 분이죠.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인정하신 다음에는 늘 힘이 돼주시니까요. 힘들어 눈물을 보이면 ‘아직은 울 때가 아니다’라며 따끔하게 중심을 잡아주세요.”
이렇게 밀고 당기며 하나씩 형태를 갖추고 지금은 서가에 책을 정리하고 필요한 시설을 갖추는 단계. 3천권에 달하는 책에 일일이 바코드를 찍고 분류하고 정리하는 작업은 오롯이 조하연 씨의 몫이다. 밤 새는 날도 허다하다. 3살짜리 딸은 당분간 친정어머님 품에서 지낼 수밖에 없다.


# 수유실 파티룸 영화시설까지

이런 노력속에 탄생한 배꼽 빠지는 도서관은 제대로 모양을 갖췄다. 엄마들을 위한 편안하고 쾌적한 수유실, 어린이들 모임을 위한 파티룸에다가 예쁜 인형그림으로 가득한 화장실도 어린이용과 성인용을 구분하는 배려를 했다. 어린이도서관답게 의자와 책꽂이도 앙증맞을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가 생기지 않게 마감처리도 확실하게 했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서가가 도서관 중앙에서 중심을 잡아주고, 주변에는 부드러운 의자와 바닥 쿠션을 넓게 깔았다. 빔프로젝트를 설치, 평상시에는 영화도 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설계와 공사를 담당한 김봉주 실장은 “너무 꾸미려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공간, 아무렇게나 눕거나 앉던 편한 자세로 책을 접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무엇보다 책이 잘 보이는 색상, 조도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며 두달 동안의 작업이 스스로도 매우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털어놨다.


# “배꼽 빠질만큼 책속엔 재미가...”

배꼽 빠지는 도서관은 아직 개관 전이다. 8월 3일에 문을 활짝 열고 주민들을 만날 계획이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개방하고, 개인 민간 도서관인 만큼 소정의 사용료를 받는다. 어린이는 1시간에 3천원, 어른은 하루종일 3천원이다. 조하연 씨는 몸에 좋은 보리차도 준비해 오는 손님 모두에게 편안한 휴식공간이자 배움의 공간이 되길 바라고 있다.
“왜 이름이 배꼽 빠지는 도서관일까요? 배꼽이 빠질 만큼 책속에 재미가 있기 때문이죠.”

20대 후반의 젊은 주부가 던진 도전장이,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지역의 작은 문화공간으로 의미있게 남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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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작성일 : 2008.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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