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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을 간직한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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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자연을 간직한 곳으로
  • 구로타임즈
  • 승인 2006.1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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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발전을 위한 제언 19] 황경미 (구로3동, 아하체험 강사)
내 나이의 4분의 3은 구로에서 살았다. 이쯤 되면 구로가 고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우리 딸은 구로에서 나고 자라고 있으니 구로가 진짜 고향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로에서 자라게 하는 것이 미안했던 적이 있었다. 구로에서 산다고 하면 어쩐지 한 수 아래로 보는 눈초리를 한두 번 느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참에 구로 타임즈에서 어린이들을 위한 ‘우리 고장 알기’ 체험 학습의 강사를 해 달라고 의뢰해 왔다. 깊숙이 웅크리고 있던 나의 지역 콤플렉스가 햇빛 아래 드러나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나 먼저 콤플렉스를 벗어나야 아이를 밝게 키울 수 있겠다.’ 라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구로의 역사 알기는 오랫동안 구로에 살았으면서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료는 빈약했고 문화재를 찾아가는 길도 험난했다. 문화재를 찾아다니며 두 번 놀랬다고나 할까? 생각보다 많은 문화재에 한번 놀라고 방치되다시피 한 모습에 두 번 놀랬다. 신문사분들과 우리 아하 체험 선생님들은 문화재에 얽힌 이야기와 역사 공부로 수업 내용을 준비했다.

드디어 수업하는 날. 눈매가 초롱초롱한 아이들에게 무엇인가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졌다. 먼저 어느 동에서 왔는지 묻고 동 이름 유래를 설명했다. 구로라는 이름은 한자어로는 아홉 노인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지만, 한글로 풀이하면 지형적 특성을 말해주기도 하고, 태양이 크게 비추는 곳이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바람이 불어 공명 현상으로 울은 소리가 났다는 우렁바위, 서울 유일의 고인돌, 태종 때 호조 참판을 지낸 숭의랑공 여계의 묘역, 궁동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된 정선 옹주의 묘역을 돌아보며 구로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을 설명했다. 오류동 주막거리 미니어처 앞에서는 인천과 구로를 오가던 큰 상인들의 교통로였던 구로의 모습을 보았고, 성공회대 구드인관에서는 진정한 기업가로서의 유일한 박사에 대하여 설명했다.

서울 안의 집이라고 보기 어려웠던 노길식 선생님의 댁에서 전통주의 냄새에 관심을 갖고 염소를 보며 좋아하던 아이들 때문에 함께 흥겨워졌다. 항동 철길을 걸으며 즐거워하던 아이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디지털 단지에 와서 현재의 구로의 모습을 보며 하루를 정리했다. 즐거웠다는 아이들의 소감을 들으며 하루의 보람을 느꼈다.

자랑스러운 내 고장은 어떤 곳일까? 학군 좋고 큰 쇼핑센터가 많이 들어선 곳? 내가 살고 싶은 곳은 역사와 전통을 간직하며 사람 사는 맛이 나는 곳이다. 구로는 서울의 주변 지역으로 외곽으로 가면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개발되어 가는 것만이 좋은 것은 아닐 것이다. 역사와 자연을 간직하여 가보고 싶은 곳, 살고 싶은 곳으로 놔두는 것도 구로에 대한 사랑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아이들이 구로에서 살고 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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