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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덫' 90대 노부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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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덫' 90대 노부부의 죽음
  • 구로타임즈
  • 승인 2004.10.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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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내 노인보호시설 '요원'... 정부 지자체 대책 시급
92세 노인이 치매에 걸린 아내를 간병해오다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봐 아내를 목 졸라 숨지게 하고, 자신도 뒤따라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주변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구로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5일 오후 7시경 오류1동 동부골든아파트에서 허모씨(92)와 엄모씨(93)가 숨져있는 것을 이집 막내아들(50)이 발견해 신고했다는 것.

이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은 “엄 할머니는 이불을 덥고 누운 채 숨을 거둔 상태였으며, 허 할아버지는 방안 옷장에 철사로 목을 매 숨진 것을 막내아들이 옮겨 바닥에 눕혀놓은 상태였다”고 당시 정황을 설명했다.

이날 현장에는 허 할아버지가 모 은행 달력 석장을 찢어 볼펜으로 작성한 유서와 장례비 250만원이 발견되기도 했다. 허 할아버지는 유서에서 “78년이나 함께 산 아내를 죽이는 독한 남편이 됐다”며 “살 만큼 살고 둘이서 같이 세상을 떠나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전했다.

유족 진술에 따르면 허 할아버지는 전북 익산에서 농사를 지으며 슬하에 7남매를 두었는데 30년 전 농사일을 접고 자녀들이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는 것. 자식에게 부담되는 것을 꺼려해 강서구 가양동에 집을 마련해 살며 노부부가 서로 의지해오다 3년 전 막내아들의 권유로 오류1동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왔다.

하지만 막 노동일을 하는 아들내외의 벌이가 지난해부터 신통치 않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차에 지난해 엄 할머니에게 돌연 치매와 중풍이 찾아와 맞벌이하는 아들 내외를 대신해 허 할아버지가 일체의 병수발을 들어왔다는 것.

이곳 아파트 관리원은 “허 할아버지는 평소 아파트 가까운 곳에서 폐지를 수집하며 끼니때면 꼭 집에 들러 아내의 식사를 챙겨온 데다 임종한 날 오후 5시경에도 쓰레기봉지를 밖에 내다 버릴 정도로 부지런하고 사리에 밝은 분이셨다”며 “막내아들도 동네서 효자로 불렸는데 이 같은 일을 당해 이곳 주민들은 남의 일 같이 여기지 않고,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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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사건을 접한 지역사회복지 관계자들은 착잡한 심경을 토로하면서도 치매노인 부양은 사회적 책임이며 정부차원의 특별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오는 11월 1일 개소할 예정인 궁동노인주간보호센터의 이선화 사회복지사는 “현재 65세이상 노인의 8.3%인 35만명이 치매를 앓고 있는 등 고령화 추세로 인한 노인문제는 이제 한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지적, “치매노인 전문 요양시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므로 정부가 나서 이 문제를 적극 해결해 줘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궁동노인주간보호센터 자문교수이자 경기복지시민연대 운영위원인 이선영(루터신학대 사회복지학과)교수는 “우리나라는 고령화 진전 속도에 비해 노인복지체계 구축이 상당히 늦다”며 “정부가 최근 구체화하고 있는 공적 노인요양(보험)보장제 도입 시기를 앞당겨야 함은 물론 지방자치단체 또한 요양시설 설립 및 기존 복지시설에 대한 예산지원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구로관내에는 노인주간보호시설이 정토노인주간보호센터(구로종합사회복지관내)와 구로노인종합복지관, 궁동노인주간보호센터(11월 1일 개소) 등 3곳에 이르고 있으나 예산 및 전문인력 부족으로 치매, 중풍을 앓고 있는 중증질환의 노인들은 입소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송희정 기자>misssong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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