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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461] 구로3동 20통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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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461] 구로3동 20통 모임
  • 공지애 기자
  • 승인 2016.08.14 1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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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인심에 어르신 웃음꽃도 활짝
온 가족과 상경했다가 사업실패로 인해 간경화로 몸져 누우신 아버지, 일곱 식구의 생계와 아버지 병원비로 외벌이를 해야 했던 어머니, 가출청소년이 된 오빠, 손녀 중학교라도 보내겠다며 남의 집 일을 다닌 할머니와 살면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살아온 김경애(52) 씨.

의료보험도 제대로 없던 당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은 통장의 사인을 받아 내면 다만 얼마라도 의료혜택이 주어지곤 했었다.

16살 나이의 여학생은 통장을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였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사인을 해주지 않아 엄청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김경애 씨에게 '통장은 그저 '나쁜 아저씨'로 각인이 되었다. 그 뒤로 30년이 지났고, 김경애 씨는 구로3동 20통 통장이 되어 있었다.

"전 통장으로 인해 마음이 다치고 고생을 했던 주민들이 찾아와 '이름만 올려주면 우리가 다 도와 줄테니 맡아 달라. 당신 밖에 없다'고 사정을 하고, 어머니와 남동생 역시 옆에서 지원해주겠다는 응원에 힘입어 통장을 맡은 김경애 씨는 벌써 5년째 활동 중이다. "처음엔 동네가 지저분하기로 말도 못했어요. 어머니가 빗자루를 들고 나서고, 동생은 제 대신 민방위 통지서를, 딸은 적십자사 지로 통지서를 돌려주고요." 그래서 지금까지 수월하게 해왔다고 김경애 씨는 말하지만 통 주민들과 함께 4번이나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주민 사랑도 보통이 넘는다.

그동안 설악산 동해바다, 봉평 메밀골, 고창 선운사를 다녀왔다. 어르신들 연세가 있고 안전 등이 부담 되어 망설였으나 어르신들이 원하기도 했고,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도 모시고 같이 여행 간 기억이 없던 것이 못내 마음에 남아 내 할머니 모시고 간다는 마음으로 결정을 했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것은 물론, 1년에 2번씩 가자고 할 정도로 적극적이다.

"큰 딸이 8개월 때 여기로 이사 왔는데 그 딸이 벌써 55살이니 50년도 넘게 살았네요. 사람들이 다 좋아, 인심도 좋고. 다만 우리들이 어울려 있을만한 공간이 없어. 노인정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을텐데..."

오쌍가매(77) 씨는 동네 왕언니로 통한다. 동네에서 45년을 살았지만 이웃 대부분 평균 그 정도는 살아왔기에 명함도 못 내민다는 김인자(73) 씨는 "그렇게 오래 살았지만 전부터 물난리 난 적 한 번 없었고, 수돗물이나 전기 한 번 끊긴 적이 없었다"면서 "화합이 잘 되고 시골동네처럼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말했다.

호두나무집 할머니로 불리는 강금옥(74) 씨는 동대문 화재사건으로 동네가 불에 타 구 정책으로 이웃들과 구로동으로 이사를 오게 된 지가 50년이 넘었단다.

"송판대기를 마루처럼 깔고 가마니에 담요, 연탄난로 하나씩을 줍디다. 저희 시아버님이 동네에 우물도 파고, 집도 짓고 했어요."

한참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그동안 목동으로 이사를 가서 살았는데 부자동네라 그런지 이웃사귀기 힘들어 결국 고향같은 구로3동으로 돌아왔다고 강금옥 씨는 말한다.

늦은 아침이면 싱글벙글슈퍼 앞 파라솔로 한 명씩 어르신들이 나오면 거기가 동네 사랑방이 되고 놀이공간이 된다.

조금 출출해질 시간이면 음식 솜씨가 좋은 최명희(71) 씨가 후다닥 국수나 보리밥 등을 해오거나 집집마다 한 두 가지씩 반찬을 가지고 나와 비빔밥을 해먹기도 한다.

모임의 분위기 메이커 정정호(62) 씨가 한 마디씩 거들면 하하호호 웃음꽃이 핀다.

그렇게 웃고 떠들다 보면 자식 걱정, 살림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의 병도 말끔해진다. 도시는 나날이 최신 경비시스템이 발전해가지만 구로3동 20통엔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도 마음 편히 다닐 정도로 도시 속 시골 인심 가득한 동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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