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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386]천왕 보보보 1004들의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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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386]천왕 보보보 1004들의 모임
  • 공지애 기자
  • 승인 2014.10.18 19: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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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듬고 보호하는 푸근한 이웃되어

"얼마 전 한 어머니가 아이들을 애타게 찾았던 사건이 있었어요. 직장에서 돌아와보니 아이들은 없고, 단지를 샅샅이 뒤졌지만 아이들이 보이지 않자 타 단지에 안내방송을 부탁했죠. 그런데 타 단지 아이인데다 저녁시간이라는 이유로 안내방송을 안 해 준거에요. 어쩔 수 없이 혼자 사방팔방을 헤매다 결국 뒷산에서 내려오는 아이들을 발견하고는 엄마는 기진맥진해서 그 자리에서 쓰려진 일이 있었어요."

천왕동 53통장 박승준 씨는 급한 일이나 위험한 일, 혼자 해결하기 힘들 때 내 작은 힘으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SNS를 통한 커뮤니티를 구상했다. 서로 바쁜 일정으로 오프라인 모임은 어렵고 시간을 내서 모임하는 걸 꺼려하는 주민들이 많다보니 SNS가 요긴한 통로라 여긴 것.

"지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를 잃어버렸을 때 인상착의 또 아이사진을 SNS에 올리면 회원들이 각자 자기 주변에서 찾아보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거예요. 그러면 최소한 그 장소는 다시 안 가도 되니까요. 아이 잃어버린 부모마음은 누구보다 부모가 잘 알잖아요."

박승준 씨는 이런 취지를 천왕동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더니 30여 명의 회원이 신청을 했다. 한 동네에 살면서 '우리서로 보듬고 보호하고 보살피자!'는 뜻으로 '천왕 보보보 1004들의 모임'(이하 보보보)은 그렇게 결성되었다.

"초등학생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지나는데 중학교 남학생이 무리를 지어 담배를 피는 거예요. 아이가 갑자기 '왜 오빠들이 담배를 피느냐'고 묻는데 대답도 못하고 손을 꾹 누르며 지나쳐 온 적이 있어요. 나 혼자 말한다고 그 많은 아이들이 달라지지도 않을뿐더러 혹시라도 해코지할까 움츠렸던 제 자신이 부끄럽더라고요." 54통장 김선희 씨는 '이럴 때 주변에 있는 회원들에게 요청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마음에 적극 참여하게 되었다.

이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그것도 온라인 모임이지만 벌써 몇 번의 일들이 해결되었다. 천왕역 인근에서 학생들이 모여 담배를 피는데 이미 술도 많이 마신 것 같다는 회원의 제보를 받아 급히 지구대에 연락해 바로 출동됐다. 또 늦은 시간 천왕역에서 마을버스도, 택시도 없어 단지까지 걸어올라가기 무섭다는 회원의 글을 보고 박승준 씨가 출동해 안전하게 귀가시킨 일도 있었다.

그러자 56통장 안현 씨는 "새벽1시까지 천왕역에서 시행하는 안심서비스 제도가 있는데 잘 모르는 주민이 있는 것 같다. 마을의 이런 유용한 정보도 공유해 활용하는 것도 보보보의 취지다"라고 덧붙여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나 청소년 문제는 어른이 나서 해결할 수 있지만, 그 보다 제일 먼저 어른이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들도 자연스레 배우게 된다"고 강조했다.

천왕이펜하우스3단지에 살다 연지타운1단지로 이사를 간 홍진숙 씨는 3단지에 살면서 함께 했던 커뮤니티를 연계해 활동하고 싶은 포부를 가지고 있다. 서로 보듬다보면 순식간에 퍼지게 된다는 것을 이미 체험했기 때문이다.

5단지 도서관장 이순덕 씨는 하던 일을 쉬면서 재능기부 차원에서 학교 봉사를 하면서 박승준 씨를 알게 됐는데 책에서만 보던 민주시민을 직접 만난 기분이었단다. 나와 같은 평범한 주민이 마을 일에 앞장 서는 모습을 보면서 도전을 받아 차츰 마을공동체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다른 동네에 살 땐 누리기만하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도 감사함을 몰랐는데 이 동네에 와서야 내가 누리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과 도움으로 된 것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삶으로 배우고 느껴 저도 과거에 누리기만 한 것을 반성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장도 맡고 있어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주민들도 같은 마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규모가 조금 더 커지면 각 단지별 방장을 뽑아 각 단지별로 모으고, 방장끼리는 서로 교류하면서 그렇게 키워나갈 계획이다. 서로서로가 골목길 가로등이 되어주고, 사각지대 CCTV가 되어주어, 함께 보듬고 보살피고 보호하는 '보보보'는 천왕동 주민들의 그린라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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