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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우리동네이야기 5]서울의 이름난 부촌, 개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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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우리동네이야기 5]서울의 이름난 부촌, 개웅마을
  • 박주환 기자
  • 승인 2014.05.07 11: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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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웅마을은 개웅산 아래 지금의 광진교회와 한진아파트 일대에 형성됐던 자연부락이다. 개웅산이 깊이 품고 있던 마을의 모양새 덕에 난리 때마다 총알이 개웃개웃 피해간다고 해서 개웅마을이라고도 불렸다지만 시간이 지난 현재 이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근 40여년에 걸쳐 예전사람들은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는 급격한 변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예전엔 청주 경 씨와 창녕 조 씨가 특히 많이 모여 살았다고 전해지는 이 일대는 20~30년 전만해도 구로에서 손꼽히는 부촌이었다고 한다.

개봉3동 유영직 동장은 "지금 동네를 봐도 주택지역들이 직사각형으로 구획정비가 매우 잘 돼 있는데 구로에서 오래 공무원생활을 해왔지만 이런 곳은 흔하지 않다"며 "들리는 말로는 서울에서도 이름난 부촌이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연립주택들이 많이 들어서 당시의 흔적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한 경로당의 어르신은 대부분 이사 온지 2~3년 된 사람들이 많고 토박이는 거의 안 보인다고 전하기도 했다.

개봉3동에 거주한지 32년이 됐다는 배홍렬(54) 씨는 "이 동네는 마당 가운데 연못을 둘 정도로 잘 사는 집이 많았는데 연립이 들어서면서 원래 살던 분들은 목동이나 강남으로 많이 떠났다"고 증언했다. 조순례(67) 씨도 "이곳은 이름난 부촌이었고 사람 살기가 좋아 대부분 주거지역으로 조성돼 있었다"며 "시장을 가려면 목감천에 다리가 없던 시절이라 징검다리를 건너 광명시장으로 가야했던 게 하나 불편하긴 했지만 살기 좋은 동네였다"고 회상했다.

비교적 적은 수의 주민이 모여 살던 이곳에 인구수가 갑자기 늘어난 건 주공아파트였던 개봉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였다.  

당시 언론 보도들에 의하면 1971년 4월 1일 착공해 5개월 만에 준공했던 개봉아파트는 1972년 초까지 서민에게 부담스러운 가격이라 단 한 가구의 입주자도 없을 만큼 인기가 없었지만, 300가구 중 250가구가 임대아파트로 전환하면서 3,000명 이상의 인파가 추첨을 위해 이곳에 몰려들기도 했다. 

개봉아파트에 주민들이 대거 입주한 후엔 정원 딸린 부잣집들과 연탄을 때는 아파트가 공존하며 살아가는 재미있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를 기억하는 주민들은 부자든 아니든 서로 갈등 없이 오순도순 잘 살아왔다고 전한다.  현재 이 개봉아파트는 1999년 한진타운아파트로 재건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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