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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254] 연극으로 다듬어가는 황금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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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254] 연극으로 다듬어가는 황금노년
  • 공지애 기자
  • 승인 2011.11.18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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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은빛극단

 '느티나무은빛극단'은 지역 어르신들의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다. 2008년, (재)구로문화재단에서 매년 개최하는 어르신 대상 문화예술교육에 참여했다가 연극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아예 동아리를 만든 것. 그리고 지난 15일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 무대에 올린 '구노(九老)이야기'가 이들의 4번째 공연이었다.


 이번 공연은 프로 작가의 창작 연극이 아니다. 1940년대 후반에 태어나 지금까지 겪어온 어르신들의 삶의 단편을 끄집어내 펼쳤다. 자식에 대한 서운함, 퇴직 후 반복적인 일상, 젊은 시절 이루지 못한 꿈, 고된 시집살이, 첫사랑, 건망증, 이루지 지 못한 꿈, 질병과 죽음 등 자신의 삶에서 가장 털어놓고 싶은 부분을 재구성했다. 이렇게 14명 어르신의 이야기가 릴레이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공연되었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


 함께 참여한 이필연 씨(63)는 어려서 어머니 병간호 때문에 학업을 다 마치지 못한 이야기를 담아냈다. "이번 공연의 취지를 들었을 때 온 몸에 전율이 흘렀어요. 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거든요. 어머니를 돌볼 때 주변에선 '네가 어머니를 살렸다'며 칭찬을 했지만 정작 저는 꿈을 접어야 했던 아픈 추억이거든요. 그리고 밤마다 한 여학생이 울고 있는 꿈을 30년 넘게 꾸었어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날개를 잃었던 제 자신이란 걸 몰랐어요." 하지만 연극을 하면서 오래된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됐다. 요즘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배우고, 봉사하는 일로 스케줄이 꽉 차 있어 슬플 틈이 없는 이필연 씨. 이제는 30년 넘는 악몽을 다시 꾸지 않는다.


 갈수록 건망증이 심해진다는 양화신 씨(70)는 신기하게도 연극의 대사나 동작은 잊은 적이 없다. "연극이 기억력 훈련에 참 좋아요. 처음 무대에 섰을 땐 떨리고 쑥스러웠지만 지금은 연극의 참 맛을 느끼고 있죠. 이런 기회가 노인들에게 많이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이변이 없는 한 앞으로도 계속 활동할 거예요. 호호."


 임절자 씨(70)는 15년째 독거노인을 위한 봉사를 해오며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극에 녹여냈다. 봉사 다니는 어르신들에게 보여드리기 위해 연극을 배우기 시작한 임절자 씨는 "봉사도 봉사지만 연극을 하면 항상 소녀 같은 마음을 느낀다. 여기만 오면 웃을 일이 많아지고, 실수도 흉이 되지 않는다"고 조근조근 이야기했다.


 그 외에도 남편의 첫사랑 여인을 찾아주는 임영순 씨(64), 35년 만에 우연히 만난 첫사랑이지만 설렘보다는 오래 간직한 환상이 깨졌다고 고백하는 김명숙 씨(74) 등의 이야기가 재미있게 각색되었다.


 극단 '올리브와 찐콩'은 느티나무은빛극단을 3년째 지도해왔다. 연출을 맡은 이영숙 대표(40)는 "어르신들이 첫 공연엔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연극에 임했다면, 두 번째 공연은 실제 관객을 전제로 했고, 이번 공연은 자신의 것을 풀어내고자 하는 어르신들의 욕구에 초점을 두었다. 이 공연은 어르신들 이야기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언제 어디서든 자신의 이야기를 해줄 준비가 되어있는 분들이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공연은 전래동화가 아닌 정말 살아있는 인물들의 옛이야기, 후세가 들어야 할 이야기를 당사자에 의해 들려준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단순한 수다나 푸념이 아닌 연극이라는 예술형식 안에 담아내어 더 의미와 가치가 있다.


 이정란 회장(71)은 "회원들이 연극을 통해 삶의 기쁨을 느낀다. 자기만의 소외감과 고독감에서 탈피해 자신감과 당당함을 표출시키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물관이나 공연, 좋은 강의를 함께 다니며 마음 속 깊은 이야기를 흉허물 없이 나누는 회원들은 '우아하고, 멋있고, 겸손하자'라는 극훈에 걸맞는 아름다운 황금노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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