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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85]아빠, 왜 나한테 화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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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85]아빠, 왜 나한테 화났어?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07.26 0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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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정이 생겨서 아이를 데리고 밤늦게 하는 회의에 갔습니다. 아이가 지루한 시간을 한 시간쯤 견뎌야 해서 색칠책도 한 권 사고, 과자도 챙기고, 팽이도 가져갔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런 복잡한 일이 생기고 미루가 회의자리에 와서 자꾸 시끄럽게 하는 데다 혼자 울기까지 하면서 제가 순간 이성을 잃었습니다.


 미루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엄청나게 화를 내버렸습니다. 미루는 평소처럼 아빠에게 위로를 받을 줄 알았을 텐데, 아빠가 너무 너무 크게 화를 내니 당황했습니다. 눈물을 펑펑 쏟다가 막 빌면서 "아빠 잘못했어요" 합니다.


 화가 풀리지 않은 저는 미루한테 사준 색칠책을 북북 찢어버리고, 과자도 팽이도 다 쓰레기통에 버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너 아빠한테 처음으로 한 번 맞아야겠다고까지 했습니다. 결국 아이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손을 위로 번쩍 치켜들면서 "이 놈이 정말" 이랬습니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를 때리는 것이 아무한테도 도움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까지 잘 지켜왔습니다. 아이를 때리면 맞는 순간만큼은 아픔 때문에 잘못했다고 빌지만 사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아이를 때리게 되면 아이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기는 나쁜 아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자존감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미루를 강압적으로 조용히 앉아 있게 만든 다음 다시 회의장에 가서 회의를 했습니다. 마음이 편할 리가 없습니다. 회의가 다 끝나고, 미루가 있는 방에 갔습니다. 20분 넘게 혼자 울먹이며 앉아 있던 미루는 아빠가 들어가자 다시 울음을 터뜨립니다.


 "너 또 왜 울어?" 눈을 부릅뜨고 무서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어릴 때 저 같으면 이럴 때 "잘못했어요. 안 울게요"라고 했을 텐데, 미루는 손사래를 치면서 "갑자기 아까 아빠한테 혼나던 생각이 확 나서 눈물이 또 나왔어"라고 말합니다. 무서운 순간에도 자기감정을 들여다 볼 줄 아는구나 싶어 또 안심이 됩니다.


 그 후로 30분 넘게 아까 아빠가 화를 냈던 상황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열 번쯤 사과했습니다. 근데, 설명을 하다 보니 미루로서는 굉장히 황당했겠다 싶습니다. 사과를 하고 화해도 한 다음에 마음이 다 풀렸는지 미루가 이럽니다. "아빠, 근데 아까 왜 나한테 화냈어? 내가 잘못한 게 없는데?"


 화를 낼 때 내더라도 아이와 아빠가 이런 사이라는 게 참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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