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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82] "이것 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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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82] "이것 참 문제입니다"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06.27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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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 모니터링제도

 어린이집에서 급식 모니터링 제도라는 걸 해서 한참 전에 제가 모니터링단으로 뽑혔습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말고 다른 어린이집에 가서 급식과 관련한 여러 가지 사항을 살펴보고 체크하는 일을 한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그냥 우리 아이 다니는 어린이집의 급식을 모니터링하게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어린이집에 들어가니 미루보다 어린 아이들이 한참 점심을 먹고 있습니다.
 "어서오세요, 미루 아버님."


 조그만 아이들이 숟가락을 들고 밥과 반찬을 여기 저기 묻히고 흘려가면서 먹는 게 너무 예쁩니다.
 미루는 대낮에 아빠가 오니까 좋은지 눈이 왕방울처럼 커지고, 입도 커졌습니다. 아이들이 함께 밥 먹는 거실 옆의 작은 방에 앉아 있는데 미루가 저한테 뛰어 와서 안겼다가 다른 곳으로 뛰어갔다 하는 게 들판에 풀어 놓은 망아지 같습니다.


 "여기 이거 보시면 체크 항목이 죽 있는데요, 식사하시고 여기에 이렇게 체크하시면 돼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함께 급식 모니터링을 하러 온 다른 부모님 한 분과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하는 도중에 조리사 선생님이 오셨습니다. 제가 점검항목을 유심히 살펴보니까 좀 긴장하셨습니다. 식재료가 언제 들어왔는지 등을 다 적어서 게시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이 점에 대해서 여쭤보니까 이것저것 대답해 주셨습니다. 역시 계속 긴장 중이십니다.


 "미루야, 아빠는 여기서 밥 먹을 테니까. 미루는 미루 자리에 가서 밥 먹어. 알았지?"
 들판을 한참 뛰어 놀던 망아지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달려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참 모니터링을 하다 보니 상황이 좀 그렇습니다. 우리 어린이집은 모든 걸 제대로 잘 하는 곳이라서 그럴 일은 없지만 만약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그걸 지적하기가 매우 껄끄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기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아니라 다른 어린이집에 가게 되면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이니까 급식 모니터링을 객관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서로 아는 사이에는 잘못된 게 보여도 그걸 도저히 잘못 됐다고 쓸 수가 없을 게 분명합니다.


 조리사 선생님은 제가 만약 체크 항목 중에 하나라도 '잘못됐다'는 쪽에 표시를 하면 금세 낙담하실 것 같은 표정으로 옆에 서 계시다가 자꾸 왔다갔다하시면서 불안해 하셨습니다.


 결국 저도, 다른 어머니도 모든 게 다 좋았다고 체크를 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는 건 별로 실효성이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선생님하고 대화를 해보니 어린이집마다 급식 시스템이 다 다르다고 합니다. 어떤 곳은 어린이집 자체에서 조리를 하지 않는 곳도 있을 정도로 점검사항을 위반하는 곳이 꽤 있다고 합니다.


 만약 이게 사실이면 급식 모니터링을 왜 자기 아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하라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아마도 문제가 드러나길 꺼려하는 어린이집들이 다른 부모가 오는 걸 반대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이것 참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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