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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79] "한번만 들으면 아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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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79] "한번만 들으면 아는 구나"
  • 강상구시민기자
  • 승인 2011.05.23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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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파에 기대앉은 아이 엄마가 아이에게 묻습니다.
 "미루야~ 스탠드 업이 뭐야?"
 "응, 일어나는 거"
 "그럼 싯 다운은?"
 "앉는 거."


 벌써부터 영어를 가르치는 게 좋은 건 아니지만 어린이집에서 영어 놀이 시간이 있어서 미루가 몇 개를 배운 모양입니다.


 "우와~ 우리 미루는 한 번 들었는데 딱 아는 구나! 멋져! 훌륭해!" 칭찬을 퍼붓습니다.
 며칠 후 아침,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는 차 안에서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칭찬할 게 생겨서 미루한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야~ 미루야, 넌 어쩜 그렇게 한 번 딱 들으면 다 알아?"
 제 얘기를 듣고 미루 엄마가 미루한테 말을 합니다.
 "미루야, 근데 너 한 번에 알아야 한다는 말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었어?"
 미루가 고개를 끄덕입니다.
 미루 엄마의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엊그제 미루한테 또 물어봤거든? 싯 다운이랑 스탠드 업 물어봤는데···" 둘이 같이 있다가 싯 다운이 뭔지, 스탠드 업이 뭔지를 또 물었는데 미루가 괴로운 얼굴을 하면서 "엄마 나 그거 몰라"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이랬답니다.


 "나 그런 거 한 번에 알아야 하는 데 한 번에 몰라."
 미루에게 물었습니다.
 "미루야, 너 그 말 때문에 스트레스 받았어?"
 "응."


 엄마 아빠가 칭찬하면서 자기한테 한 번만 들으면 다 할 줄 안다고 했는데 막상 자기는 그게 아니니까 힘들었나 봅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 번에 따라 하고, 한 번만 보면 기억하고, 한 번만 들으면 똑같이 얘기할 줄 아는 건 사실 어른이건 아이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칭찬을 그렇게 해놨으니 한 번만 듣고 다 기억할 수 없는 아이가 자기는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미루 엄마는 미루 들으라고 저에게 큰 소리로 다시 말합니다.
 "아빠! 스탠드 업, 싯 다운 이런 거 여러 번 해야 아는 거지요? 한 번 들어서는 알 수 없는 거지요?"
 "그럼요, 그런 건 여러 번 들어야 알 수 있는 거예요"라고 맞장구 쳐줬습니다.
 미루가 상심하지 않도록 열심히 과장된 연기를 합니다. 미루 엄마의 얘기가 계속 됩니다.
 "스탠드 업, 싯 다운, 월화수목금토일, 이런 것 다 여러 번 해야 알 수 있는 거죠?"
 "맞아요. 그런 걸 한 번에 듣고 기억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걸요?"
 가만히 듣고 있던 미루가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엄마, 월화수목금토일은 그렇게 여러 번 안 해도 알아."
 "그래? 오늘이 무슨 요일인데?" "금요일." "··· 아는구나."


 어쨌든 칭찬을 잘못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뭘 잘 한다는 식으로 추켜세우기보다는 열심히 하는 모습, 노력하는 모습 자체를 칭찬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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