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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76] 햄버거를 먹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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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일기 76] 햄버거를 먹일 권리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05.02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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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이 참 좋습니다. 사무실 사람들과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아이스크림 먹읍시다." 밥을 먹고 나온 동료 중 한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먹잡니다. 5명이 우루루 근처 패스트푸드점에 갔습니다. 이런 날은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쩝쩝 핥아먹는 게 꽤 재밌습니다.


 패스트푸드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데 문 바로 옆 자리에 3살도 안됐을 법한 아이가 앉아 있습니다. 엄마는 계산대에서 햄버거 두 개와 감자튀김을 가지고 와 막 앉습니다.

 안쪽으로 자리를 잡고 다시 계산대 쪽으로 가는 길. 엄마는 햄버거 하나를 개봉하더니 아이 입에 가져다 댑니다. 햄버거가 아이 얼굴 만합니다. 아이가 약간 당황하는 눈을 하자 엄마는 "자 이게 양상추고, 이건 고기야." 그 다음에 또 뭐라고 말을 하긴 했는데 지나치면서 듣느라 더는 못 들었습니다.

 계산대에서 자리 쪽으로 가면서 다시 아이를 쳐다봤습니다. 아이는 자기 얼굴만한 햄버거의 한 쪽 귀퉁이를 입으로 뜯습니다.

 "아니, 애한테 그렇게 햄버거, 감자튀김 같은 거 먹이면 대체 어떡해요?" 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싸움 나니까 속으로만 말했습니다. 자리로 오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듭니다. 정말 아무 생각 없는 엄마구나 싶습니다. 가만. 그게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아이 한참 키울 때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너무 힘들어서 그냥 한 일들이 있습니다. 혹시 그 엄마도 그런 처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아이스크림이 나왔습니다. 한 여름은 아니지만 따뜻해진 날씨에 맛이 괜찮습니다. "상구씨 쟤 봤어? 애한테 햄버거를 먹인다. 글쎄." 또 다른 동료가 말합니다. 7살 짜리 아이의 엄마입니다. "그러게 말이예요. 근데 저 엄마 되게 힘든가봐. 그러니까 애한테 햄버거 먹이죠." 말을 하면서 보니까 이 엄마도 예전에 보면 아이한테 자장면 막 먹이고 그랬습니다. 자장면 같이 맛이 강렬한 음식을 어릴 때 먹이면 아이가 편식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강한 맛에 길들여져서 순한 맛의 음식들이 맛이 없어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근데 아이한테 자장면 먹인다고 탓할 일은 아닙니다. 그 아이 키우느라고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제가 알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먹이는 엄마는 오늘 같은 봄 날 집에서 애만 보는 게 너무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벚꽃도 보고, 개나리도 구경하고 싶은데 애를 데리고 나오면 어디 멀리 가기도 힘듭니다. 또 이런 날 밥 챙겨 먹이려고 집에 들어가는 건 즐겁지도 않습니다. 어떤 책 제목처럼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합니다. 화창한 봄날 엄마는 아이에게 햄버거를 먹일 권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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