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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육아일기 75] 대한민국의 쓸만한 제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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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의 육아일기 75] 대한민국의 쓸만한 제도 하나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1.04.18 10: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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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에서 미루 건강검진을 받아오라고 한 지가 꽤 지날 때까지 병원을 못 갔습니다. 미루 엄마나 저나 너무 바빠서 시간을 못 냈기 때문인데 그러다가 오늘 드디어 병원엘 갔습니다.


 키, 몸무게, 머리 둘레 이런 것들을 쟀습니다. 매년 한 번씩 하는 것이지만 재미있나 봅니다. 미루 얼굴에 미소가 번져 있습니다.


 이번엔 시력을 잽니다.
 "자, 한쪽 눈 손으로 가리고... 이게 뭐예요?"
 간호사 선생님이 가리키는 데로 미루가 얘기를 하는데 좀 이상합니다. 시력 0.3 이라고 적혀 있는 라인에 그려져 있는 비행기를 도룡뇽이라고 합니다. 그 옆의 우산도 고개를 기웃기웃 하더니 가만히 있습니다.
 "잘 모르겠어요?"
 "네."


 이번엔 오른 쪽 눈. 0.3에 걸쳐 있는 그림들은 다 맞춥니다. 한 칸 더 아래로 내려가서 0.4라인. 하나도 못 맞춥니다.
 "숫자로 해볼게요."
 역시 왼쪽 눈은 0.3라인에 적혀 있는 3이며 4를 못 알아봅니다. 오른쪽 눈도 아까와 마찬가지였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은 미루가 6살인데 시력은 3살 정도 밖에 안 된다고 하시면서 곧바로 안과에 가보라고 권하셨습니다.


 안과에 가서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시력을 재는 기계에 턱과 이마를 대고 있는 미루가 조금 안쓰럽습니다.
 렌즈를 갈아 끼워 시력을 맞출 수 있게 되어 있는 안경을 쓰고 이 렌즈, 저 렌즈 갈아 끼우면서 또 다시 시력 검사를 하는데 미루 얼굴이 곤혹스러운 표정 반, 당황하는 표정 반입니다. 안 보이는 걸 자꾸 물어보니까 얼굴이 찌푸려집니다.


 "이야~미루 너 좋겠다. 그런 기계에도 앉아보고"
 "우와. 그 안경은 진짜 신기하다."
 이런 맞장구를 쳐주면서 기운을 북돋워졌습니다. 의사선생님 말로는 미루가 원시가 있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력이 발달하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보다는 안 보이는 편이기 때문에 6개월 쯤 후에 안경을 쓸지 여부를 판단하자고 하셨습니다.


 안 보이는 상태에서 그냥 계속 생활하다 보면 뇌가 그 상태를 정상으로 인식해버리면서 시력이 더 이상 좋아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약시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미루야, 너 안경 쓰게 생겼다."
 병원에서 나와 시장길을 걸으면서 미루는 아무 말이 없습니다.
 "너 아빠처럼 안경 쓸지도 몰라. 좋겠다."
 "난 싫어."
 저 어릴 때는 안경 쓰는 게 왠지 특별해 보여서 좋았는데 의외입니다.
 "왜?" "......"
 마음이 짠합니다.
 "너 왜 대답 안 해?"
 "응. 내가 좋아하는 딸기랑 사과가 보여서."
 바로 옆에 과일 가게가 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건 잘만 봅니다.


 이렇게라도 일 년에 한 번씩 건강검진을 할 수 있으니까 좋습니다. 사람 건강은 자기가 챙겨야 하지만 사회가 같이 챙기는 게 훨씬 좋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 건강 검진을 정기적으로 하도록 되어 있는 건 별로 마음에 드는 게 없는 대한민국에서 꽤 쓸 만 한 제도입니다.


 눈에 좋은 음식이 뭐가 있나 찾아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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