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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56] 분홍색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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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56] 분홍색 자전거
  • 강상구시민기자
  • 승인 2010.10.25 11: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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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구 국공립어린이집 연합체육대회에 갔다 왔는데, 행사 말미에 경품 추첨에서 일이 터졌습니다. 미루가 자꾸 "아빠 우리 무대 올라가자."라고 말해서 왜 그러냐고 물으니 "우리도 상 받자~" 이러는 겁니다.

 결국 경품을 하나도 못 받은 저는 엉엉 우는 미루를 달래면서 참았던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아빠가 자전거 사줄게!"

 집 근처 자전거 가게에 갔습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미루는 오른쪽 위에 다 낡은 빨간색 중고자전거를 가리키며 "이거 살래." 합니다. 정말 기특한 녀석입니다. 아빠가 돈이 별로 없다는 걸 알고 중고자전거를 고른 겁니다. 사실 그건 아니고 아마도 자전거 색깔이 빨간 색이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건 안 파는 거예요."

 새것 중에서 다시 살만한 자전거를 고르는데 미루가 고르는 건 번번이 분홍색 자전거입니다. "너는 남자니까 이 파란색 자전거 사라." 자전거 가게 아저씨가 거의 강권하다시피 파란색 자전거를 앞쪽으로 내밀었지만 미루는 꿋꿋합니다. 분홍색 자전거를 계속 만지작만지작 하고, 또 그 위에 올라가 앉아 봅니다. "그래, 미루야 니가 좋아하는 분홍색 자전거 사라."

 이렇게 해서 미루는 어디 하나 빠진 곳 없이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분홍색인 자전거를 샀습니다. 이 자전거를 끌고 동네 놀이터에 갔습니다. 비슷한 또래의 남자 아이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겁니다.

 "너 이 자전거 니꺼 아니지?"
 "아니야 이거 내 자전거야." 분홍색 자전거를 타는 남자애의 모습이 생소한지 아이들이 계속 말을 겁니다.
 "이거 진짜 니꺼야? 아니지?"
 "아냐, 내꺼 맞아."
 또 다른 아이는 이렇게 묻습니다.
 "너 이거 니네 누나꺼지?"
 "아냐, 내꺼야."

 이번엔 또 다른 아이가 와서 말을 겁니다.
 "너 왜 여자 자전거를 타고 다녀?" 그러자 그 옆에 있던 그 아이의 엄마도 한 마디 합니다. "여자친구 꺼 빌렸나 보다."

 놀이터에 모여서 놀던 대여섯 명의 남자아이들 거의 대부분이 미루 자전거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관심사는 오직 한 가지 '왜 남자가 분홍색 자전거를 타는가.'입니다. 이런 질문이 지겹기도 했을 텐데 미루는 꿋꿋합니다. "나는 분홍색 좋아한단 말이야!"

 그런데 좀 있다 보니까 미루 또래의 남자 아이가 검정색 바탕에 흰색 물방울 무늬가 그려진, 딱 봐도 아주 세련된 자전거를 타고 나타났습니다. 제 머리 속에는 '검정색 자전거하고 비교해보니까 미루 자전거는 좀 없어 보인다'는 생각이 순간 스쳤습니다.

 하지만 미루는 전혀 기죽지 않고 놀이터에서 한 시간 넘게 자전거를 타고 놀았습니다. 남이 뭐라고 하든, 자기 취향에 당당한 아이가 꽤 멋져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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