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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53] 불량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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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구 시민기자의 육아일기 53] 불량과자
  • 강상구 시민기자
  • 승인 2010.09.18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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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루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시중에서 파는 과자를 거의 먹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제가 알기로는 그랬습니다. 가끔 슈퍼에서 파는 과자를 맛없다면서 안 먹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저는 생활협동조합에서 나온 유기농 과자의 맛에 익숙해져서 맛이 강한 일반 과자 제품에는 별 관심이 없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입니다. 사무실 사람들과 맥주 한 잔 하는 자리에 미루를 데려갔습니다. 미루는 이 사람 저 사람과 한참 섞여서 놀았는데, 걔 중 한 명이 제 옆에 오더니 주변에 앉은 사람에게 이럽니다. "미루가 뭐랬는지 알아요?"

 미루가 사람들에게 한 얘기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아빠가 어릴 때부터 자꾸 생활협동조합 과자만 줘서 자기는 그 과자가 맛이 없지만 참고 먹었다는 겁니다. "미루 아빠는 어릴 때부터 미루가 생협과자만 먹어서 다른 자극적인 건 안 먹는다더니 그건 그냥 아빠 생각이었어. 하하하." 회사 동료는 그러면서 이 어린 꼬마가 아빠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 먹고 싶은 과자를 안 먹고 얼마나 참았을까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진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물었습니다. "미루야 생협과자 참으면서 먹었어?" "응" 그러더니 갑자기 울먹입니다. "생협과자는 맛이 없었어." "그럼 뭘 먹고 싶은데?" "난 아빠가 불량과자 안 사줘서 속상했단 말이야." "푸하하. 불량과자? 미루야 너 그게 무슨 뜻인지 알아?" "응, 알아. 병균 많은 과자." "근데 그런 걸 먹겠다고?" "응. 맛있단 말이야." "병균 많은 과자 먹어서 키 안 크면 어떡할건데?" "이OO은 맨날 불량과자만 먹는데도 키 쑥쑥 큰단 말이야."

 예전에 아는 사람 중에 어릴 때 군용 헬리콥터 장난감을 정성들여 조립해놨는데 군사문화를 끔찍이도 싫어하는 아버지가 그걸 갖다가 쓰레기통에 확 처박아 버리셔서 굉장히 스트레스 받았다는 얘기를 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꼴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아이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 문제가 되겠구나 싶습니다.

 "미루야, 아빠가 내일 불량과자 사줄게." "정말? 우와 신난다." 온갖 식품 첨가물이 들어간 시중의 과자가 아이들에게 안 좋은 건 틀림없지만, 그 전에 전 아이에게 권위적인 아빠가 되고 싶진 않습니다.

 내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미루의 의견을 또한 충분히 들어서 뭔가 타협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아빠가 불량과자를 사준다는 말에 미루는 희희낙락하면서 "문어 과자 사줘." 합니다. 약속을 꼭 지키고 미루와의 소통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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