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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장승이 사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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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든 장승이 사라졌어요
  • 서인식 시민기자
  • 승인 2010.07.26 17: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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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공원 실개천공사 위해 철거 … 새 것만 능사 아니다

 

지난 7월 3일 후배로부터 온 문자. "형! 장승을 철거하라고 현수막이 붙어있네!" 일주일 후 거리공원(구로5동 소재)을 찾아보니, 공원 동쪽 끝단에 있던 두 가지 시설물이 사라졌다.


 그중 하나는 구로지역 문예단체가 10여 년간 심어놓았던 장승 17기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 분수가 만들어진 곳에 있던 구로구를 상징하는 9개 지팡이 조각품이다. 시공사가 내건 현수막에는 '장승이 가로공원에 불필요하니 7월 31일까지 설치한 사람이 철거하라'고 적혀있었다.

 왜 장승이 철거되었는지 궁금해 공사안내판을 살펴보니 거리공원 실개천 조성공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사 조감도를 보다보니 굳이 장승이나 지팡이 조각품을 철거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생겼다.

 거리공원의 장승들은 주민들이 전통문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구로구의 마을입구 성격을 갖는 거리공원에 자발적으로 세운 것이다. 재작년 '어린이큰잔치' 때는 아이들과 함께 세운 장승도 있었다. 즉, 거리공원에 세워진 자생적 문화의 상징물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장승이 철거된 이유를 듣기위해 구로구 관계자를 만나봤다. 현수막에 써놓은 기한보다 훨씬 앞서 철거한 이유에 대해 "애초 6월 15일까지 철거하라는 현수막을 걸었는데 연락이 없어 7월 31일까지 철거기한을 연기했고 공사 일정상 7월10일 즈음해서 철거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승을 굳이 철거해야 하는가라고 묻자, 구로구 관계자는 "장승에 새겨진 문구(노동해방, 통일대장군, 천하대장군, 구로대장군 등 다양함)가 논란(?)의 여지가 있고, 잘 만든 것 같지 않고, 게다가 아래 부분은 많이 썩어서..." 라고 한다.

 하지만 지역의 특성상 노동자의 염원을 담은 '노동해방', 나라의 통일을 염원하는 '통일대장군', 마을을 지켜주는 '구로대장군', 아이들의 소망을 담은 '웃어요, 씨익!' 등, 구로주민이면 대부분 동감할 수 있는 글귀라고 본다.

 공원의 위치가 영등포와 구로의 경계선에 위치하고 있어 장승이 갖는 전통적 의미도 있다. 원래 장승은 썩을 때까지 20년 ~ 30년 세워두는 것이 전통이었고, 세월이 흐를수록 장승의 멋은 더욱 커진다. 게다가 새롭게 조성하려 한다는 '실개천'이란 말은 장승이 자연스럽게 세워져 있는 고향의 실개천을 염두에 둔 작명이라 여겨진다. 장승과 어우러진 실개천이 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장승과 지팡이 조각품을 철거한 이유에 대해, 구로구청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거리공원 서쪽 끝에도 지팡이 조각품이 있고, 장승과 동쪽 지팡이 조각품이 분수대 자리와 겹치고, 새롭게 단장하는 공원 조경을 가로막는다고 판단해 철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나름 거리공원의 상징이던 장승이나 지팡이조각품이 없어져야 할 만큼 실개천조성공사가 절실했는지도 더욱 궁금해졌다.

 서울시에 따르면 실개천공사는 "버려지는 지하수를 활용하여 도심 내 쾌적한 친수공간을 조성하는 공사"라고 한다. 하지만, 자연물길이 아니다 보니 지속적인 관리비용 투입, 안전사고, 수질오염 등의 문제점이 다른 지역에서도 지적되고 있다.

 실제 남산 실개천의 경우는 유지관리비용이 1년에 8,500만원이 투입된다고 하며, 산속에 굳이 인공 물길을 내야하는가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학로 실개천의 경우는 잦은 보행자 사고로 인해 강화유리로 실개천을 덮은 해프닝까지 벌어졌다.

 서울시가 60%를 부담하는 사업이기에 서울시의 디자인심의, 기술심의는 거쳤다고 한다. 하지만, 구로의 세부적인 문화와 역사와 전통을 서울시에서 모두 알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본다.

 즉, 거리공원에 실개천이 필요하고, 긴급한지? 거리공원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은 어떠한지? 거리공원 보수공사가 필요하다고 주민들은 생각하는지? 이런 내용에 대해 주민들의 의견을 더 많이 모아본 후 거리공원 보수공사를 해도 전혀 늦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문화는 생명체와 같다. 구로의 문화는 주민들의 관심과 생활이란 피와 살로 이루어지고, 세월이라는 옷이 입혀지고 꾸며져서 만들어진다.

 예전부터 있던 오래된 지팡이 조각품이나 장승 등을 살리고 유지하면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조금씩 추가하면서 만들어 가는 거리공원이 보다 더 주민의 숨결과 생활과 문화가 어우러진 구로를 대표하는 명소로 거듭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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