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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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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는 뭔가 특별한게 있다"
  • 구로타임즈
  • 승인 2004.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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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기획 가족탐방> 오류1동 임태순씨 가족
"그 집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
언제부터인가 오류1동에서 들려오던 주민들의 소곤거림. 도대체 뭐가 그리 특별한 집이어서? 지난 9일 마을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떠돌던 미담의 주인공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그 집󰡑을 찾았다.

오류1동 양지서점. 오류초등학교 초입에 자리한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작디작은 서점이 바로 󰡐그 집󰡑식구들의 삶터이자 일터다.
󰡐
가는 날이 장날󰡑인 경우는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터. 어버이날을 끼고 다가온 주말 덕에 지난 9일 일요일 강원도 원주에 사는 큰아들 내외가 고향을 방문, 뜻하지 않게 4대를 한 지붕 아래서 만났다. 네 식구만 있던 조용한 집에 멀리서 온 네 식구까지 합쳐지니 집안은 곧 시장바닥마냥 활기차진다.

- 80대 할머니부터 증손주까지
- 4대가 함께 엮어가는 가족애
- 깨소금같은 ‘행복’ 소문자자

입소문 자자한 󰡐그 집󰡑 안주인 김동분(67)씨에게 소문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뭐 자랑할 게 있어야지. 44년 열심히 벌어 집 지은 게 자랑인가? 아니지. 자랑할 것 많지. 싹싹하고 곰살가운 우리 며느리. 잘해. 얼마나 잘하는데."󰡓

시어머니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며느리 박혜경(41)씨가 가만 있을리 없다. "보기 드문 분들이에요. 마음이 그렇게 밝고 후덕할 수 없어요. 검소하시고 부지런하시고 나눌 줄 아시고. 늘 배우고 존경합니다"

며느리 말마따나 보기 드문 광경이다. 고부간에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대화를 끊고 살아온 얘기를 청했다.

󰡒"시집을 오니 시댁식구가 무려 열넷이야. 뒷바라지 다 했지. 불행하다 생각하면 불행한 거고. 행복하다 여기고 행복 만들다 보면 늘 행복한 법이지. 모든 게 다 내 도리고 내 책임이라 여겼는데 힘들게 뭐 있겠어"
󰡓
과거사를 얘기할 때 보통 사람들은 목소리가 잠기기 마련이지만 김동분씨는 오히려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6.25동란이 터지기 전 북에서 피난 내려와 오류1동에 먼저 둥지를 턴 남편 임태순(68)씨를 만나 인연을 맺은 게 벌써 44년 전 얘기. 올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임 씨는 미8군 수도관리부에서 45년을 근속했을 만큼 부지런함과 성실이 몸에 밴 가장이다.

김 씨는 말없지만 다정다감한 남편과 함께 오류초등학교 앞에서 44년간 서점을 운영하고, 때로는 솜털집도 꾸리면서 시댁식구와 아이들 뒷바라지를 󰡒행복하게󰡓 해냈다.

슬하에 2남 1녀. 큰아들 임병호(42)씨 내외는 결혼 후 10년을 부모님과 함께 살다 2년전 다니던 직장을 접고 간호사인 아내 박혜경씨와 아이들과 함께 대안적 삶을 일구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갔다. 임씨 부부는 귀농하는 큰아들 내외를 두고 그저 한마디 󰡒너희를 믿는다󰡓고 말했다.

시집간 딸 임은정(39)씨는 1년전 몸져누운 시댁어른들을 돌봐야 한다며 영등포 신길동 시댁으로 자처해서 들어갔다. 인터넷방면 일을 하는 막내아들 임남훈(34)씨가 다행히 오류동에 남아 노부부의 적적함을 달래준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은 따로 있다. 한달전 친척집을 왕래하던 차에 그만 몸을 삐끗해 몸져누우신 기옥희(86)할머니. 고령인데다 병환중이지만 단아하고 고운 자태는 여전하시다.

시어머니 병수발이 보통 일은 아닐 것. 하지만 이 또한 김동분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으로 답한다.
󰡒"항상 받으면서 살수야 있나. 주다보면 그게 또 내 복으로 돌아오더라고. 솔직히 병수발은 우리 작은 아들이 다해. 할머니 몸도 씻겨주지, 위급할 때 쓰라고 벨도 달아줬지. 오히려 내가 심통을 부리면 󰡐할머니한테 그러면 안 돼󰡑라고 호통을 치니 내가 얼마나 무섭게?" 여전히 공은 주변사람들에게 다 떠넘기는 김 씨다.

주변 이웃에 회자되는 말들에 대해 며느리 박 씨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설명해 준다.
󰡒"검소하고 지혜롭고 인정 많은 할머니에, 그 밑에서 배우고 자란 아버님에, 낙천적인 어머님에, 또 우리 남편에, 꼬맹이들까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큰아들도 거든다. "살면서 얼굴 붉히는 부모님을 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힘든 가운데도 늘 이웃에게 퍼다 주지 못해서 안달하셨죠.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평범하신 분들은 아닌 것 같네요"󰡓

이 집 참 특별하다. 몸은 떨어져 있되 마음은 한 데 모여 있다.
따뜻한 시선과 관심, 배려 모두 서로를 향해 있되 애써 표내지 않는다. 그래서 유난히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게 행복해하며 살아간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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