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기획 가족탐방> 오류1동 임태순씨 가족
"그 집에는 뭔가 특별한 게 있다"언제부터인가 오류1동에서 들려오던 주민들의 소곤거림. 도대체 뭐가 그리 특별한 집이어서? 지난 9일 마을 주민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떠돌던 미담의 주인공을 수소문한 끝에 결국 그 집을 찾았다.
오류1동 양지서점. 오류초등학교 초입에 자리한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작디작은 서점이 바로 그 집식구들의 삶터이자 일터다.
가는 날이 장날인 경우는 바로 이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일 터. 어버이날을 끼고 다가온 주말 덕에 지난 9일 일요일 강원도 원주에 사는 큰아들 내외가 고향을 방문, 뜻하지 않게 4대를 한 지붕 아래서 만났다. 네 식구만 있던 조용한 집에 멀리서 온 네 식구까지 합쳐지니 집안은 곧 시장바닥마냥 활기차진다.
- 80대 할머니부터 증손주까지
- 4대가 함께 엮어가는 가족애
- 깨소금같은 ‘행복’ 소문자자
입소문 자자한 그 집 안주인 김동분(67)씨에게 소문에 대해 물었다.
"우리가 뭐 자랑할 게 있어야지. 44년 열심히 벌어 집 지은 게 자랑인가? 아니지. 자랑할 것 많지. 싹싹하고 곰살가운 우리 며느리. 잘해. 얼마나 잘하는데."
시어머니로부터 공을 넘겨받은 며느리 박혜경(41)씨가 가만 있을리 없다. "보기 드문 분들이에요. 마음이 그렇게 밝고 후덕할 수 없어요. 검소하시고 부지런하시고 나눌 줄 아시고. 늘 배우고 존경합니다"
며느리 말마따나 보기 드문 광경이다. 고부간에 칭찬이 끊이지 않는다. 부득이하게 대화를 끊고 살아온 얘기를 청했다.
"시집을 오니 시댁식구가 무려 열넷이야. 뒷바라지 다 했지. 불행하다 생각하면 불행한 거고. 행복하다 여기고 행복 만들다 보면 늘 행복한 법이지. 모든 게 다 내 도리고 내 책임이라 여겼는데 힘들게 뭐 있겠어"
과거사를 얘기할 때 보통 사람들은 목소리가 잠기기 마련이지만 김동분씨는 오히려 톤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6.25동란이 터지기 전 북에서 피난 내려와 오류1동에 먼저 둥지를 턴 남편 임태순(68)씨를 만나 인연을 맺은 게 벌써 44년 전 얘기. 올 8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는 임 씨는 미8군 수도관리부에서 45년을 근속했을 만큼 부지런함과 성실이 몸에 밴 가장이다.
김 씨는 말없지만 다정다감한 남편과 함께 오류초등학교 앞에서 44년간 서점을 운영하고, 때로는 솜털집도 꾸리면서 시댁식구와 아이들 뒷바라지를 행복하게 해냈다.
슬하에 2남 1녀. 큰아들 임병호(42)씨 내외는 결혼 후 10년을 부모님과 함께 살다 2년전 다니던 직장을 접고 간호사인 아내 박혜경씨와 아이들과 함께 대안적 삶을 일구기 위해 농촌으로 내려갔다. 임씨 부부는 귀농하는 큰아들 내외를 두고 그저 한마디 너희를 믿는다고 말했다.
시집간 딸 임은정(39)씨는 1년전 몸져누운 시댁어른들을 돌봐야 한다며 영등포 신길동 시댁으로 자처해서 들어갔다. 인터넷방면 일을 하는 막내아들 임남훈(34)씨가 다행히 오류동에 남아 노부부의 적적함을 달래준다.
이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은 따로 있다. 한달전 친척집을 왕래하던 차에 그만 몸을 삐끗해 몸져누우신 기옥희(86)할머니. 고령인데다 병환중이지만 단아하고 고운 자태는 여전하시다.
시어머니 병수발이 보통 일은 아닐 것. 하지만 이 또한 김동분씨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음으로 답한다.
"항상 받으면서 살수야 있나. 주다보면 그게 또 내 복으로 돌아오더라고. 솔직히 병수발은 우리 작은 아들이 다해. 할머니 몸도 씻겨주지, 위급할 때 쓰라고 벨도 달아줬지. 오히려 내가 심통을 부리면 할머니한테 그러면 안 돼라고 호통을 치니 내가 얼마나 무섭게?" 여전히 공은 주변사람들에게 다 떠넘기는 김 씨다.
주변 이웃에 회자되는 말들에 대해 며느리 박 씨가 나름의 해석을 덧붙여 설명해 준다.
"검소하고 지혜롭고 인정 많은 할머니에, 그 밑에서 배우고 자란 아버님에, 낙천적인 어머님에, 또 우리 남편에, 꼬맹이들까지.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가풍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옆에서 큰아들도 거든다. "살면서 얼굴 붉히는 부모님을 뵌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힘든 가운데도 늘 이웃에게 퍼다 주지 못해서 안달하셨죠. 특별하게 생각해본 적 없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평범하신 분들은 아닌 것 같네요"
이 집 참 특별하다. 몸은 떨어져 있되 마음은 한 데 모여 있다.
따뜻한 시선과 관심, 배려 모두 서로를 향해 있되 애써 표내지 않는다. 그래서 유난히 평범하고 대수롭지 않게 행복해하며 살아간다. <송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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