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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같은 이웃_11]한글로 햇살을 선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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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같은 이웃_11]한글로 햇살을 선사해요
  • 공지애
  • 승인 2008.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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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가르치는 김순희씨(고척동)
▲ 김순희 씨
“자, 지난 시간에 배운 낱말 받아쓰기 합니다. 세찬, 쏟아, 갸웃, 조심스레... ”

교실 안에는 10명이 조금 넘는 할머니 학생들이 초등학교 국어책과 공책을 놓고 땀을 뻘뻘 흘린다. 배울 때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막상 직접 써보려니 여간 헷갈리는 것이 아니다. 친절한 선생님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최대한의 힌트를 주려고 애쓰신다. 수업이 끝나자 머리카락이 희끗한 학생들이 딸이나 동생뻘 되는 선생님에게 깍듯이 차렷 경례를 하고 교실을 나선다.

김순희 씨(58, 고척동)는 올해로 8년째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지도해왔다. 전쟁으로, 가정 형편 때문에, 먹고 살기 바빠,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학교문턱은 커녕 한글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평생을 지내온 이들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주었다.

“그동안 초등학교 1~6학년 국어책을 모두 떼고 졸업한 어르신들이 많아요. 처음엔 전혀 은행업무도 볼 줄 모르던 분이 한글을 배우고 나서 자신의 손으로 직접 돈을 맡기고 찾을 수 있게 되었다고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면 저도 함께 기뻐요.”

김순희씨에게 한글을 배우러 오는 학생 대부분은 50~70대이지만, 30~40대 학생도 더러 있다. 어르신들의 평생 한이 뭔지 알기에 결강 없이 매주 열심히 지도한다. 현재 고척도서관에서 학생들에게 천자문을 가르치고 있는 김순희씨는 한글반을 졸업한 어르신들에게 필수 한문까지 가르쳐주고 싶은 바람이 있다.

“어르신 학생 중에는 한글반 졸업 후 독학으로 중등검정고시에 합격해 고등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분도 계세요. 만학에도 불구하고 배움의 깊이가 깊어가는 분들을 보면서 큰 보람을 느껴요.”

궁동종합복지관 한글반 박순엽씨(74)는 “교회를 다니는데 도통 성경책을 읽을 수가 없어서 성경 좀 또박또박 읽고 싶어 한글을 배우러 왔다. 선생님이 꼼꼼하게 잘 가르쳐 한글공부시간이 재밌다. 일주일에 2번, 하루 2시간 수업인데 점심 먹고 오후에 또 배우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김순희 씨는 국어를 전공해 복지관과 도서관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음악에 관심이 많아 합창단원으로도 활동할 만큼 에너지와 열정이 넘친다. 김순희 씨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자 한글을 통해 그녀의 큰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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