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17 11:24 (금)
훈육과 방임의 차이
상태바
훈육과 방임의 차이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3.05.27 13: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요일 밤 결국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다급히 문자를 보내 나를 찾았다. 인근 중학교 형이 핸드폰을 잠시 쓰자고 해서 빌려준 일이 탈이 난 것이다.

형들끼리 다툼이 있었던지 아이의 핸드폰으로 연락을 받았던 형들이 전화를 건 형들을 찾아오라고 다그쳐서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아이는 겁에 질렸다.

형들에게 처음부터 핸드폰을 빌려준 것은 아니었다. 안 주고는 버틸 도리가 없이 형들이 멋대로 빼앗아 쓴 것이다. 그렇게 전화를 했으니 통화를 한 형들은 아이의 전화번호를 알게 됐다. 그러나 핸드폰 주인이 누구인지는 상관없다는 게 형들 사정이다. 힘없는 후배나 동생이라면 "OOO이 데리고 와라, 안 데려오면 가만 안 둔다"라든지 "너 빨리 OOO 앞으로 나와, 안 나오면 죽여 버린다"라는 협박이 고스란히 먹혀들어 가는 것이다.

아이들끼리 알 수 없는 갈등이 있었을 것이나, 죽을 맛인 것은 가운데 끼인 아이도 입장이다. 이쪽을 잡아 올 수도, 저 쪽을 피할 수도 없을 것 같은 위협감 속에 아이는 피가 마를 지경이다.

아이들은 동네의 고만고만한 곳들을 맴돌이 할 뿐이다. 그러니 서로 부딪힐 가능성이 많고, 그런 일들이 몇 번 반복되다보면 마치 덫에 걸린 짐승 같은 심정이 되고 만다. 형들을 피할 도리가 없고, 골목 어디쯤 불쑥 튀어나와 당장 멱살을 잡아챌 것 같은 공포에 오금이 저릴 수 있다.

그날 아이는 다급히 문자를 보냈다. 가까이 보이는 슈퍼에 들어가서 그 집 번호를 알려주면 데리러 가겠다고 하고 집을 나섰다. 도착해보니 아이는 물건을 쌓아두는 슈퍼 한 귀퉁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주인아주머니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셨다. 아이를 데리고 아이 집으로 향했다. 전화기를 끄고 연락을 받지 말라고 해놓고 이 정도 일은 충분히 책임 있게 처리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다독거렸다. 겁을 먹은 아이는 걷는 것조차 힘들어했다.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고 돌아가는 길에 형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보겠다고 약속을 했다.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그 사이 핸드폰을 켰다가 문제의 전화를 다시 받게 됐다. 아이는 아버지에게 대신 전화를 받아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귀찮은 짓을 한다고 집을 나가라는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겨우 다독거려 집으로 들여보냈는데 집에서 쫓겨나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던가 보다.

아이를 내쫓으며 아버지는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라"고 말한 것 같다. 자기 문제를 자기가 알아서 해결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 문제나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개입하기 힘들다고, 귀찮다고 아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를 "네가 그랬으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떠미는 일은 옳지 않다. 그것은 훈육이 아닌 명백한 방임이다.

다음 날 아이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아동방임으로 신고를 했다. 더 이상 부모와 아이의 변화를 기다리는 것이 무의미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와 보호자 모두 아직 그렇게 살고 있다.

법이 개정되어 부모에 대한 상담과 교육이 강제화 될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요원한 일이다. 그 사이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않고, 고모할머니 집과 아버지 집 사이를 전전하며 지내고 있다. 아이는 여름캠프를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냉혹한 기다림의 날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