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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복지상 대상 수상자 김용순씨(개봉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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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복지상 대상 수상자 김용순씨(개봉2동)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0.09.18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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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 돌봐준 복지시설에 33년간 기부

  전쟁 고아였던 자신을 따뜻하게 품어준 복지시설을 33년 동안 남모르게 후원해온 독지가가 있어 화제다.


 개봉2동 현대아이파크아파트에 거주하는 김용순(68) 씨. 서울시는 자신이 받은 혜택을 나눔으로 선순환 시킨 김 씨의 아름다운 행적을 기려 지난 9월 10일 '제11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 때 서울시복지상 '대상'을 수여했다.


 "다른 이들에 비하면 이런 건 기사감도 안돼요. 어머니 살아계신다 생각하고 매달 용돈 정도 드렸을 뿐인데…."

 전화통화에서 인터뷰를 사양하다 집 근처까지 찾아온 기자를 차마 내치지 못하고 아파트 벤치에 마주 앉은 김용순 씨는 "남이 알면 부끄러운 일"이라며 한사코 몸을 낮췄다. 그녀가 말한 '어머니'란 친정어머니가 아닌 연세사회복지관(오류2동, 옛 기독교언더우드절제소녀관)의 제3대 관장을 역임했던 고 이경화 관장을 일컫는다.

 김 씨 5남매는 6.25전쟁으로 부모를 잃었다. 
당시 오빠 둘은 어린 여동생 셋을 위해 신문팔이, 구두닦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는데 1957년 장마로 벌이가 뚝 끊기자 무작정 파출소로 찾아가 도움을 호소했다고.

당시 이 일은 조선일보 기자에 의해 신문지상에 소개됐고, 이를 계기로 5남매를 찾아온 이가 바로 고 이경화 관장이었다. 김 씨를 비롯한 세 자매는 57년부터 63년까지 소년관에서 의식주 걱정 없이 공부에 매진했고, 오빠 둘은 동생들 걱정 없이 학업과 일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 씨는 66년 그토록 바랐던 교사가 됐다.

 
 "따스하면서도 엄격한 분이셨어요. 진짜 어머니 같으셔서 늘 어머니, 어머니, 라고 부르며 따랐죠. 첫 교사월급을 받았을 때 친정엄마가 살아계셨으면 그랬겠다싶어 매달 용돈을 보내드렸죠. 69년 이경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는 그 분께 받은 은혜를 죽을 때까지 되돌려 드려야겠다 싶어 계속 후원하게 됐고요."

 "어머니께 용돈 드리는 마음으로"

 그녀가 지난 33년간 후원한 금액은 총 7,200여만 원에 달한다. 매달 20~30만원 씩 꾸준히 기부한 돈이 오랜 세월 쌓이고 쌓이면서 이토록 큰 액수로 불어난 것. 한 번에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을 쾌척한 독지가의 미담이 화제가 되는 요즘 비록 소액이지만 정기적으로 30년 넘게 기부해 종국에는 큰 나눔을 이룬 그녀의 이야기는 단연 빛을 발한다.

 개봉동에 거주한 지 올해로 36년째. 그녀는 영서·세곡·개봉초등학교를 거쳐 지난 2004년 구로초를 마지막으로 교직정년퇴임을 한 뒤 제2의 인생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구로관내 어린이집과 복지시설 등에서 다문화 교사와 웃음치료 강사로 활동하는 등 어찌 보면 교사일 때보다 더 바쁘고 활기찬 삶을 이어가고 있다. 웃음치료사 1급, 요양보호사 1급, 사회복지사 2급 등 정년퇴임 후 그녀가 취득한 자격증만 6개에 달한다.

 "제 삶의 철학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게 살자'입니다. 전 가만히 있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라 방방 뛰어다니며 살아야 신이 납니다. 봉사 일이 너무 많아 생활이 좀 걱정되긴 하지만 어쩝니까. 그쪽 자격증만 딱 골라서 따낸 걸요. 이게 다 기쁘고 감사히 살라는 하나님 뜻 아니겠습니까. 호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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