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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의 꿈과 한숨이 피어나던 그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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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의 꿈과 한숨이 피어나던 그 곳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0.03.15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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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로를 걷다 ① 옛 구로3동 판자촌 (현 한신휴플러스· 두산위브 아파트단지) 첫 번째 이야기

 구로타임즈가 이번 호부터 구로의 길을 따라 떠납니다.


 창간 10주년을 맞아 새롭게 시작하는 기획시리즈 '구로를 걷다'는 동네 골목 곳곳에 묻혀 있는 우리지역의 역사와 문화, 삶의 애환 등을 현장 속에서 보다 생생한 증언 등을 통해 촘촘하게 담아내려는 '지역기록'의 또 다른 시도입니다.


 그 첫 걸음을 구로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60,70년대 구로공단 진입로, 구로3동길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편집자 주>

 

 

▲ 2004년 2월 철거되기 직전 촬영한 판자촌 전경<좌>과 지난 3월 2일 두산아파트에서 촬영한 아파트단지 전경.

▲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고마운 길라잡이가 되어준 김병묵 한신휴플러스 노인회장

 

 

 

 추억으로의 시간여행


 코끝이 맵다. 구로3동과 4동 일대가 한 눈에 내려다뵈는 두산아파트 23층 난간. 구로의 하늘을 휘감는 겨울 끝자락의 찬바람은 실체 없는 공간을 찾아 나선 이의 가슴까지 휑하니 비워낸다.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해묵은 기억을 끄집어내면 저 만치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숲 사이사이로 손에 잡힐 듯 옛 마을이 되살아난다.


 처마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 앉은 판잣집들, 그 사이사이로 사람 하나 겨우 비켜갈 좁은 골목길, 21세기 초까지 분명 우리 곁에 실존했던 가난한 이들의 집단거주지. 구로3동 판자촌에 이르는 길은 과거 그곳에서 삶을 영위했던 주민들의 아련한 추억을 되짚는 시간여행이 될 것이다.

 
 뜨거운 양철지붕 아래 12가족


  "여서 기다려봐. 내 그려볼 터이니. 말로 해서 알아먹겠어?"


 노인정 건너 방에서 종이 한 장을 가져온 김병묵(74) 한신휴플러스 노인회장은 40여 년 전 그 자신이 살았던 삶의 풍경을 펜 끝 하나로 오롯이 되살려낸다. "여기 봐봐, 외벽은 브로꾸(블럭:큰시멘트벽돌)를 쌓아서 길쭉하니 네모지게 만들어. 그리고는 땅에 멍석을 깔고 양철로 된 함석지붕을 얹지. 브로꾸 홑벽에 양철지붕이면 겨울엔 춥고 여름엔 지글지글 끓어서 못살아. 그래도 우린 견디고들 살았거든. 칸막이도 없는 30평 남짓 공간에서 자그마치 열두 세대가 함께."


 1960년대 초 박정희 군사정권의 서울도심 재개발정책은 대규모 철거민들을 양성해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당시 미나리꽝, 무, 배추밭 위에 옹색하게 앉혀진 구로3동 판자촌으로 강제이주 당했다. 하지만 이곳의 환경은 김 회장의 말마따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엔 너무나 모질고 혹독했다. 당시 청계천 쪽에서 이주해 온 철거민 상당수는 집을 배당받은 직후 홀연히 이곳을 떠났다. 대신 이곳은 권리금 조의 돈을 지불하고 거주권을 양도받은 지방인들의 삶의 터전이 됐다.


 멍석바닥을 연탄구들로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터를 개선하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하고 연대했다.


   우선 열두 세대가 부대끼며 살던 한 칸 집을 8칸 쪽방들로 나눠 처음으로 가족만의 사적 공간을 만들었다. 세대 당 3~5평 정도인 쪽방은 다시 부엌 한 칸, 방 한 칸으로 쓰임을 나눴고 수도, 전기시설 일부를 들여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얼추 가정집의 모양새를 갖췄다. 비만 오면 물이 스며들어 철퍼덕거렸던 멍석바닥은 브로꾸와 송판을 깐 장판바닥으로 개선했고 이후 연탄구들을 앉혀 겨울 추위 걱정을 덜었다.


   삶의 억척스러움은 때론 이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특이한 생활상을 만들기도 했다. 환기와 한줌 햇볕이 절실했던 주민들은 지붕 일부를 'ㄷ'자 모양으로 뜯고 장대를 받쳐 간이 천창(지붕에 낸 창) 냈다. 비바람 몰아치는 밤이면 천창 들썩이는 소리에 온 식구가 잠을 못 이루고 뒤척였다. 일부 주민들은 1평 남짓한 좁은 부엌 위에 다락을 앉혀 구로공단노동자 등에게 세를 놓았다.  <다음호에 계속> 

  ☞ 도 움 말 :
 김병묵 한신휴플러스 노인회장
 한인구 구로3동경로당 회장
 류한욱 파주부동산 대표

 

 

 

◈ 이 기사는 2010년 3월 8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39·340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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