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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고택 사람온기 '모락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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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년 고택 사람온기 '모락모락'
  • 송희정 기자
  • 승인 2010.03.29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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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기획 - 구로를 걷다 3 항동 첫 번째 이야기

 

 

 

   꽃샘추위와 황사에 쫓겨 걸음을 재촉한 날, 인기척 없는 마을은 동네 강아지들이 주인이다. 낯선 이의 걸음에 소스라치듯 짖어대는데 한 집이 컹컹 대면 건너 집이 맞받아 컹컹 대는 꼴이 흡사 저들끼리 환담이라도 나누는 듯하다. 굴봉산(窟峰山)과 건지산(乾芝山)이 올려다 뵈는 마을 야산에는 쑥과 냉이 등 겨울을 땅 속에서 난 봄나물들이 지천이다. 사람 귀한 마을에 소리 소문 없이 봄이 내려앉았다.
 
   항동. 옛 지명 '항곡(航谷)'에서 알 수 있듯 지세가 배 모양의 골짝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부터 참외 산지로 이름 높았고 서울의 허파라 불릴 만큼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춘 곳. 최근 수목원과 레일바이크로 유명세를 탄 오류2동 관할의 법정동이다. '서울에 이런 곳이 또 있을까' 남들 다하는 생각을 하며 마을 이쪽저쪽을 기웃하는데 척 보기에도 고색이 창연한 집에서 경쾌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온다.
 
   "차 한 잔 들어요. 여기가 항동카페에요, 항동카페."
낯선 손을 잡아끄는 이철순(69·여)씨의 품새가 평소에 늘 그래왔다는 듯 자연스럽다. 할아버지 때부터 대대로 살아온 150년 된 고택의 안주인이다.


 "이 언니네 부엌은 항동카페고, 앞마당은 마을 마당이에요. 여기서 애고 어른이고 할 것 없이 자치기, 윷놀이 하며 놀았죠.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고, 서울에 이만한 동네가 없어요. 고물상들만 나가주면 더할 나위 없겠는데…."

 

 

▲ 항동카페에 주민들이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친정에 들렀다 친한 언니들을 만나러 '항동카페'에 들른 김미자(62·여·수서) 씨가 마을자랑 끝에 살짝 불만을 털어놓는다. 마을초입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불편한 마음들이 여기서 다시 확인된다.
 
   350년 역사를 지닌 항동마을에는 전통 흙집과 현대식 빌라 그리고 쓰레기폐기물처리업체가 공존한다. 싼 땅과 한갓진 동네를 찾아 이곳에 들어온 쓰레기폐기물처리업체들은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 속에 비집고 들어앉아 마치 '이물'처럼 존재하고 있다.


 6년 전에는 더 한 것도 들어올 뻔했다. 당시 정부는 이곳 마을을 싹 들어내는 국민임대주택단지 건설 계획을 추진했었다. 마을에 집성촌을 이룬 김해김씨 경사파 찬판공 일가를 중심으로 마을주민 전체가 들고 일어났고, 다행히 구로구도 반대했다. 정부는 항동 택지개발 계획 접고 대신 구가 제시한 천왕동에 임대주택단지를 추진했다.


 도시민들이 잠시잠깐 둘러보곤 "좋다", "아름답다"를 연발하는 사이 정부의 대규모 그린벨트 개발 사업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구로의 자연촌락들을 옮겨 다니며 때론 저울질하고, 때론 밀어붙이기식으로 깡그리 파헤치며 자연과 주민들의 생존기반을 위협해댔다.

 

 ☞ 도 움 말
       김영봉(78) 항동노인회장              유재억(63) 26통 통장                이철순(69·여) 주민
       우옥자(72·여) 주민                         나봉섭(69·여) 주민                    김미자(62·여) 주민

 

 

 

◈ 이 기사는 2010년 3월 22일자 구로타임즈 신문 34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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