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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같은 이웃 45 ]국과 반찬 더 준비하는 이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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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같은 이웃 45 ]국과 반찬 더 준비하는 이유요?
  • 공지애
  • 승인 2009.09.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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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자 씨 (궁동)
 궁동에 사는 한경자 씨(67)는 동네 독거 어르신 두 분에게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간다.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 때면 으레 2~3인분 더 넉넉히 준비한다. 음식을 싸들고 어르신을 방문하면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뭘 도와드릴까 여기저기 들여다보고 도와드린다. 궁동노인정의 중풍어르신의 외출도우미로도 봉사하고 있는 한경자 씨는 어르신들 생신엔 떡과 과일로 생일상을 차려드린다.

 한경자 씨는 천왕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할 때도 형편이 어려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남몰래 쌀을 가져가 드리곤 했다. 한 번은 부천에 사는 어르신 한 분이 길을 잃어 천왕동까지 함께 온 적이 있었다. 그 때 한경자 씨는 저녁을 대접하고 한 숨 주무시게 한 뒤 파출소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렸다.

 1970년대, 새마을지도자로 활동하면서 새벽이면 아이들 도시락을 싸놓고 동네마다 청소를 다녔고, 천왕동 부녀회장으로 마을 대소사를 챙기던 시절도 있었다. 당장 내 밥이 없어도 남 어려운 사정 보면 연탄을 사주고 올 정도였고,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는 '큰 누나'로 통했다.

 "모르겠어요. 저는 이제까지 남 돕는 게 제일 좋은 일인 줄 알고 살아왔으니까요."

 1998년 벽제지역에 물난리가 났을 때 대위로 근무하던 한경자 씨 아들은 부하직원이 떠내려간다는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수해지역으로 구하러가다 그만 물길에 휩쓸리고 말았다. 그 뒤 부모님도 돌아가시고, 3년 전 남편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한경자 씨는 어르신 돌보는 일에 더욱 마음을 쏟는다.

 해마다 된장을 직접 담그는 한경자 씨는 된장을 풀어 배추국, 우거지국을 끓이거나 곰국을 한 솥 끓여 나른다. 입맛이 별로 없는 어르신은 국 한 가지만 있어도 그나마 식사를 좀 하시기 때문이다. 한경자 씨는 수지침을 가방에 가지고 다니며 비상시 응급처치를 해주기도 한다.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나는 가야한다'고 말씀하는 걸 들으면 나도 더 나이 먹으면 저렇게 되려나 걱정이 되기도 해요. 그래도 아직은 봉사 받을 때가 아니라 봉사할 때라는 게 감사하죠."

 사진을 찍으려니 부끄럽다며 수줍게 웃는 한경자 씨의 미소는 꽃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 이 기사는 2009년 9월 14일자 317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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