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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생계와 국가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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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생계와 국가의 숙제
  • 구로타임즈
  • 승인 2009.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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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칼럼 72 _ 개인파산 ④ 근로빈곤층 워킹 푸어(Working Poor)
 오래 전부터 파산법이 존재했다고는 하지만, 채무자들이 법원에 파산신청을 해서 면책을 받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도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동안 파산신청서 양식은 몇 차례의 보완이 있었는데, 2007년 중반부터 파산신청서 속에는 채무자가 파산신청에 이르게 된 사정을 표기하는 항목이 새로 생겨, 크게 생활비 부족, 주택구입자금 차용, 낭비, 사업 경영의 파탄, 타인의 보증, 사기 피해 등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두 가지 이상 선택이 가능하다.

 채무자가 파산에 이르게 되는 이유들이야 속속들이 들여다보면 다들 다르겠지만 그래도 크게 나눠지는 유형들을 분석한 결과일 것인데, 파산신청에 이르게 된 사정으로 '생활비 부족'을 선택해야하는 채무자들을 보면, 대부분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으며 월 평균수입이 60~80만원 정도이다.

 이런 이유를 드는 사람들을 보며, "적게 벌면 아껴 쓰면 되지, 왜 그러냐"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수도 있는데,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월 787,930원이었고, 이런 최저임금 수준을 버는 노동자가 전체 노동자의 13.1%나 되며, 최저임금 미만을 버는 노동자도 200만 2천명에 이른다.

 현재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비율은 53%로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이며, 경비원, 건물 청소원, 용역회사 직원, 택배원, 편의점 아르바이트생, 식당 아주머니 등으로 우리들 가족 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파산신청 후 지난 2월에 면책을 받은 정모(39) 씨는 막노동하는 아버지 밑에서 장녀로 태어나 겨우 중학교만 졸업하고 봉제공장에서 미싱사로 일하며, 같은 공장에서 일하던 재단사였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외환위기 후 다니던 봉제공장이 갑자기 문을 닫게 되면서, 남편과 함께 둘이서 작은 모자 하청공장을 운영하다가 7천만 원 정도의 물품대금을 떼이게 되면서 큰 손해를 입은 후 공장 문을 닫고, 다시 정 씨는 봉제공장 미싱사로 남편은 택시운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나갔지만, 정 씨가 열심히 미싱을 밟아 벌 수 있는 돈은 한달에 80만원이 채 안되었으며, 이마저도 체불되기 일쑤였다.

 영업용 택시운전사인 정 씨 남편의 2007년 급여대장을 보면, 1년 동안 수령한 급여가 5,797,007원밖에 되지를 않았다. 고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 둘과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30만원 하는 반지하방에 사는 정 씨 부부에게 사실 월세를 내는 것도 버거운 형편이었으며,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거나 하는 일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지금의 추세라면 우리나라의 비정규직 숫자는 해마다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저임금 근로자들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다.

 고물가시대, 생계의 벼랑 끝에 서서 일을 해도 늘 가난한 '워킹 푸어'의 문제는 단순히 한 개인의 문제를 넘어서서 국가가 풀어야 할 숙제이다.

■ 송병춘 변호사 (법무법인 이산)





◈ 이 기사는 2009년 4월 6일자 295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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