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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18]오류동 주막거리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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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이야기 18]오류동 주막거리객사
  • 김윤영
  • 승인 2006.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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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으로 쫓겨난 대원군 귀국중 머무르던 곳
▲ 주막거리 객사는 현재 인근 주민이 만든 미니어처 주막(사진)만이 남아 옛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옛날부터 지리적으로 서울과 인천을 연결해주는 통로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나가고 있는 오류동. 하지만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옛 오류동 주막거리의 분주함은 사라지고 옛 명성을 담은 표석만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봇짐을 지고, 말을 타고 많은 이들이 분주히 왕래하고 길옆에는 많은 주막들이 지나가는 이들의 쉼터가 돼주고 있다.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도 들려오고. 개항이후에는 제물포와 서울을 왕래하는 외국인, 청군, 일본군도 눈에 띈다.

주막거리 중에서도 지금의 오류동 120번지 일대. 청일전쟁 이전까지 청나라인들의 왕래가 잦아 고위관리가 쉬어가던 원으로 추정되는 주막거리 객사라는 기와집이 한 채 있다.

흥선대원군도 임오군란(1882년 6월 일본식 군제 도입과 민씨 정권에 대한 반항으로 일어난 구식군대의 군변)에 관여한 관계로 청나라로 쫓겨났다가 고종 22년(1885년)에 풀려나 인천을 통해 귀국하던 중 이 객사에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또 일제시대에는 1930년대까지 고미네라는 일본인이 살았다고 한다. 일본인이 거주한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객사 마당에 고목인 목련나무 한그루가 있어서 목련나무집이라고도 불렀는데 봄이면 기왓장 사이로 이상한 약초가 자랐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이 기왓장에 올라 약초를 캐갔다는 얘기가 매스컴에도 보도된 적이 있다고.

경북 문경시 신현리에 최근 조선시대 주막거리가 조성돼 우리 역사를 돌아볼 발자취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오류동의 주막거리 객사, 주막거리야 말로 관리만 잘 됐다면 문경시보다 더 좋은 사례로 많은 이들이 찾을 수 있는 위치. 하지만 지금 구로구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주막거리 객사는 물론이고 그 터조차 남아있지 않으며 도로 명으로만 역사속 기억의 끝자락만을 붙잡고 있을 뿐이다. 구로에도 객사가 없어지기 전에 구 차원에서 그 땅을 매입해서 복원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들이 지역에 관심있는 이들사이에 남아있다.

* 참고서적
조상들의 품에서 살아온 사람들(문화관광부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2000년)
* 도움말
향토사수탄 저자 김정진(60, 개봉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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