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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좌불안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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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좌불안석
  • 성태숙 시민기자
  • 승인 2012.08.13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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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 아침 아이를 데리고 공장이 있는 지방까지 다녀왔다. 아이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와 동생도 동행한 길이다. 생전에 손주들을 떼놓고 살아본 경험이 없으신 할머니는 벌써 며칠째 아이를 보낼 생각에 좌불안석이시다. 그러고 보면 이젠 그도 아이란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고3이니 어엿한 성년이 맞다. 그러니 '그'라고 칭하는 것도 온당한 일이다.


 그를 만난 것은 초등학교 2학년 때 동생과 함께 공부방에 다니던 무렵이었다. 단칸집에서 할머님과 함께 살던 시절이었다.


 할머님의 걱정은 바로 그 두 손주였다. 두 손주가 생각대로 기대만큼 자라주지 못했던 것이다. 할머님은 아이들의 모친이 좀 그랬다는 말씀을 하시기도 하지만 정확한 이유를 알 수는 없다. 다만 다른 사람들보다 인지발달의 속도가 느리고 제한적인 두 아이를 보면서 때로는 그 실망감을 감추기 어렵고 그로 인해 울화가 치미시는 듯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 정도 모르고 자란 두 손주는 할머님에게 더없이 가여운 아이들이었다. 당신의 몸뚱어리가 꿈적거릴 수 있는 동안은 두 아이들을 건사하고 당신이 세상에 없더라도 두 아이가 무탈하게 잘 살 수 있기만을 바라는 하나의 심정으로 당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준비해놓고 떠나시고 싶은 것이 할머님의 유일한 소망이시다.


 할머님과 아이들은 지역사회의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며 최소한의 삶의 질을 힘겹게 이어갔다. 그러나 고3이 되고 막상 한 사람의 떳떳한 사회인으로 서야 할 시점이 되자 자립과 자활의 길을 찾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특히 할머님은 아이들이 가진 어려움을 지역민들이 알게 될까 매우 두려워하셨다. 혹시나 아이들에게 필요할까 싶어 '등록'을 시켜놓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뿐이고, 할머님에게는 적지 않은 상처였던 것 같다.


 아이에게 취업의 문을 열어주기 위해 지역아동센터도 나름대로 애를 써왔다. 백방으로 노력을 한 것이지만 지금 소개한 공장이 막상 아이에게 맞을지 확신은 없다. 게다가 출근 첫 날밤 전화 통화를 해보니 생전 힘든 일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아이는 벌써 힘들어서 못할 것 같다고 반은 포기한 소리를 하고 있으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들기는 한다. 할머님의 신신당부로 절대 지역아동센터가 아닌 학교소개로 번듯하게 취업한 것으로 하기로 입도 맞추었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소비의 도시 한가운데 살다가 공장과 기숙사 외에는 딱히 갈 곳도 없는 외진 지방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것이 아이로서도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노동과 노동을 위한 잠깐의 육체적 휴식만으로 구조화되어있는 공장의 단출한 모습에 나 역시 위축되는 기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이미 굳건한 신체 노동으로 단련된 공장 관계자는 모두가 그의 노력에 달렸을 뿐이라는 말로 나를 더욱 위축되게 하였다.


 그에게 특별한 어려움이 있으니 그를 좀 더 배려해 주었으면 나의 바람이 얼마나 낭만적인이기만 했는지를 깨달은 것은 앞으로 할 업무를 설명하는 간단한 말들 속에서다. '잘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 무겁게 뒤를 따른다. 오늘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면 그 모두는 공장의 노동을 허투루 본 나의 무지몽매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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