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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도 꺼지지 않은 추모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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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에도 꺼지지 않은 추모열기
  • 김경숙
  • 승인 2009.05.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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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구청 분향소 첫날 조문 2700여명
구로구청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는 조문객들은 밤12시가 넘은 심야에도 계속 이어졌다.
평소 같으면 인적조차 끊겨 밤 11시이후 사람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구청 앞 사거리는 자녀들의 손을 잡은 가족들부터 직장인들로 적지 않았다.

25일 심야시각인 밤11시부터 새벽1시경까지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은 260여명. 구청분향소 설치후 25일 새벽7시부터 조문객을 받기 시작한지 하루만(밤12시 기준)에 약2700여명이 방문한 것이다. 이날 방문록만도 6권에 이르렀다.

조문행렬이 가장 많이 몰린 시간은 퇴근무렵 이후인 저녁7시30분경부터 밤 11시경. 분향소에서 안내하던 한 공무원은 “ 구청 현관앞 분향소부터 경찰서담까지 줄이 이어졌다고”고 말했다. 수백여 명이 조문을 위해 약150~200m의 긴 줄을 서서 기다린 것이다.

이날 추모를 위해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들중에는 이제 두세살 안팎의 어린아기부터 초등학생 자녀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선 맞벌이 주부, 퇴근 후 부모를 모시고 나선 30대 가장 , 디지털단지 등에서 근무하는 20,30대 직장인, 중국인 동포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세 살배기쯤 보이는 딸을 데려온 엄마는 어린 딸이 방명록에 자기이름을 스스로 쓰도록 하기도 해 눈길을 끌었다.

밤1시가 다 되가는 시각에도 직장동료와 함께 찾은 30대, 자전거를 타고 홀로 와 분향 후 안타까움을 서러운 소리로 토해내는 40대, 조문을 마친후 구청 주차장 한편으로 가서 서럽게 우는 30대 초반의 부부, 밤12시30분경에는 홀로 분향소를 찾아 영정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앉아 잠시동안 묵념후 상주격으로 서있는 공무원들에게 목례를 한 뒤 자리를 뜨는 초로의 노신사까지 애도의 물결은 짙은 어둠속에 구로구청광장으로 스며들었다.

지역적으로는 구청과 인접한 구로동 주민들이 많아 보였으며, 인접한 광명시 철산동에서도 가까운 분향소를 찾다가 구로구청 분향소를 찾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또 인근에 일이 있어서 왔다가 분향소가 있다는 것을 알고 찾는 지방사람들도 간혹 눈에 띄었다.

이에 비해 오류동이나 개봉동등 구로(갑)지역의 경우 교통편의 등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구청분향소를 많이 이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이와 관련 개봉역 북부역광장에 오늘부터 분향소가 설치돼 운영에 들어가, 오류동이나 개봉동 고척동일대 주민들의 이용이 다소 수월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구로(갑)지역위원회가 개봉역 광장에 설치한 분향소는 아침 8시부터 밤9시까지 영결식 전날인 28일(목)까지 3일 동안 운영된다.

주민들의 애도 물결
저녁7시30분경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구청분향소를 찾은 이연화(39,구로4동)씨는 “가난한사람을 많이 생각해주고 애써주시던 너무도 좋은 분이 돌아가셔서 아들에게 좋은 대통령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디지털단지에 있는 한 기업체에 근무한다는 최규덕(25)씨는 “ 한 나라의 대통령의 마지막이 안 좋아 마음이 착잡하고 아프다”다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주변비리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 것 같은데 대한민국 비리문제는 근절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북 영주에서 교육을 받으러 왔다가 친구와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며 조문차례를 기다리던 오모(43)씨는 “마지막으로 뵙고 싶어서 왔다”며 “마음의 고통을 받고 가셨는데 내 책임인것같다”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밤 7시30분경 직장에 다녀와 부친, 부인등과 함께 온 것으로 보이는 한 30대 아버지는 조문을 위해 늘어선 줄사이로 빠져나가려는 두세 살 남짓으로 보이는 아들을 안아올리며 분향소 앞에 놓인 노 전 대통령의 사진을 가리키며 조용한 어조로 한마디 했다.
“ 대통령할아버지야. 잘 봐. 역사가 심판할거야....”

밤12시10분경 직장에서 귀가해 엄마를 기다리던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분향소를 찾은 심선순(48)씨는 “(바위에서)떨어질 때 어땠을지 가슴아프다”며 눈물을 글썽이면서 “너무나 안타깝고 천국에 가서 좋은 시간, 행복한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다”고 마음을 표현했다.

안타까움과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들은 방명록에도 이어졌다.
10여명씩 자신들의 이름을 빽빽이 적어놓은 주민들은 이름 옆에 때로는 안타까움을, 영면을, 역사적 아픔을, 우리의 책임 이라는 글들을 담아냈다.
한 조문객은 방명록에 “생전에 지지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이제 온 나라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이 나라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마음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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