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편집 : 2024-05-14 18:32 (화)
골목 누비며 펴는 사랑의 의술
상태바
골목 누비며 펴는 사랑의 의술
  • 공지애
  • 승인 2001.04.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 신체장애환자나 저소득층 독거노인가정 방문

친구나 가족처럼 진료...때로는 말벗 되기도



어렵게 모은 귤 내놓을 땐 가슴 찡하기도

이번호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주인공은 구로보건소의 김미연씨(33, 방문전담진료의사)와 김형순씨(42, 간호사)다. 이들은 구로구의 골목골목을 누비며 방문진료를 다닌다. 구로구 내에 방문진료 대상자는 40-60명 정도이고 주로 보건소에 직접 나와 진료를 받지 못하는 신체장애 환자나 저소득층 독거노인 등 만성질환 환자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화창한 3월의 봄날, 기자는 이들 방문진료 길에 동행취재했다.

"누구여?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10년째 방문 밖을 나선 적이 없다는 김복호(63,구로동)씨는 나이탓인지 한 번에 방문진료팀을 알아보지 못했다. 김씨는 중풍으로 쓰러진 뒤 바로 치료를 받지 못해 이제는 일어나지도 못하게 되었단다. 김미연씨가 혈압체크 등 간단한 진료를 마치면 김형순씨는 보름치 약 봉투를 꺼내며 약 먹는 시간을 꼼꼼히 챙겨준다. 관절약, 변비약, 기관지약 등 약봉투만도 한보따리다. 금새 일어서는 것이 아쉬운지 김씨의 눈가에 촉촉이 눈물이 고인다.

"대부분이 혼자 계시는 노인분들이예요. 저희가 방문하는 것이 그나마 유일한 낙인 셈이죠. 그러니 얼마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겠어요. 그렇게 말벗이 돼드리면 너무너무 좋아하세요. 하지만 하루에 방문해야 할 가정이 정해져 있잖아요.."

그럴때마다 손이라도 한 번 더 만져드리고 온다는 김형순씨는 오래 못 있어드리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고 한다.

개봉동에 사는 이상호(가명,50)씨는 교통사고로 몇 년째 휠체어 신세를 지고 있었다. 이씨는 환경미화원으로 근무 중 뺑소니차에 치어 보상도 받지 못한 데다 부인과 자식들마저 뿔뿔이 떠난 상태다. 김미연씨는 이씨를 진료하며 오래 누워있어 떨어지지 않던 욕창이 거의 다 나았다고 자신의 일보다 더 기뻐했다. 언제나 환자의 입장에서 스스럼없이 대하기 때문에 의사라기보다 그저 편한 이웃 아줌마 같다.

"방문 대상자는 보름에 한번 가정진료를 받게 되요. 전신마비 등으로 2-3일에 한 번은 간호활동이 필요한 분이 많지만 현실여건상 그렇게 해드리지 못하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그래도 저희들이 찾아가면 안드시고 모아두었던 야쿠르트나 귤을 내놓으실 땐 가슴이 찡해져요.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지만 그 분들에게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겨요."

김씨는 오히려 그들을 통해 '사람 사는 정'을 느끼게 된단다.

짧은 시간의 동행이었지만, 의사와 간호사로서가 아니라 때로는 친구처럼 또 부모님 뵈러 가는 자식처럼 가정진료를 다니는 김미연, 김형순씨의 모습이 기자에게 긴 여운으로 남은 하루였다.



공지애 객원기자

homekong@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